[낙동정맥 : 4구간] 02운봉산~천성산 원효암 입구

2017.1.27

by 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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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멀리서 겁을 먹게 했던 "죽음의 각도"를 마주하게 되었다.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은 나무도 없다. 마치 바리깡으로 고속도로를 낸 것처럼(우리 또래 학창시절을 보낸 남자들은 이게 뭔 말인지 알것이다^^) 오르막 직전에 표지판은 백패커의 자존심을 건드린다.


너무 힘들지? 그냥 옆길로 빠져도 되는데...
법기쪽은 수원지 보호구역이니까 안되고, 반대쪽 명곡마을로 가면 하산길은 짧아서 괜찮을 꺼야~






여행기간 : 2017.1.26~1.27
작성일 : 2017.10.17
동행 : 없음. 독고다이~
여행컨셉 : 텐트 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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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올랐을까?
길 끝은 아직이다. 몸은 이미 다 젖었고, 다리는 경련 직전...
지금까지의 오르막은 여기 비하면 다 조무래기 수준이었다.

이런 심리를 어떻게 알고, 중간에 이정표가 다시 출현^^.
이 고통의 가장 빠른 탈출구인 다람쥐캠프장까지의 거리표시 숫자로 유혹한다. 거긴 차도가 있거든...
'사람을 뭘로 보고...' 오기를 생기게 할 목적이었다면 100%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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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리고 뭔가 다 와 가는 듯한 느낌같은 느낌...
일 뿐이었다. 고비의 끝이라 생각하고 올랐더니 앞 길이 구만리다 ㅜㅜ

중간에 하나씩 웃통을 벗어버리고 저 사진을 찍을 때쯤 내복만 입고 있다. 뭐 어때 지나는 사람도 없는데, 있으면 또 뭐~ 막 그런 심정이다.
산행에서 아무리 새벽에 추웠더라도 반드시 내의는 벗고 트레킹을 시작해야만 한다. 심지어 저때 솜바지를 입었지 싶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금 생각하면 얼척도 없는 시추에이션이다.

모든 것에는 끝이 있기 마련. 제 아무리 높아서 하늘 아래긴 했다. 그렇게 '바리깡 고속도로'를 완주하고 한참을 쉬었던 것 같다. 비상 간식을 모두 동내면서 말이다.
체온 조절만 좀 할 수 있는 복장이었더라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텐데... 땀을 너무 쏟으니 또 물을 많이 먹게 되고 그러니 늘 몇 리터씩 지고 다녀야 하고, 무게가 나가니 땀은 더 많이 나고...
이때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법은 바로 "반팔 + 반바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새벽 추위는 잠시다. 겨울 산행이라도 반바지는 필수품이구나 싶다.

천성산 중심부에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증거 1 : 표지판


그 오르막을 오른 이후 본격적으로 천성산의 중심부로 들어온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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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아니라 바로 실증해주는 표지판을 만난다.
그건 천성산 정상에 박정희시절부터 무단으로 점거하고 있던 미사일기지에 다가가고 있음을 뜻하는 거기도 하다. 덕분에 인근엔 죄다 지뢰밭이다. 최근에 이전을 하면서 수거를 했다고 하는데 아직 30% 정도가 미수거 상태... 비가와서 흙이 떠내려가서 이동하기도 했으니 찾기가 난망이란다.
예전엔 낙동정맥 종주를 하고 싶어도 천성산은 오를 수 없어서 돌아가거나 끊어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곳이었다. 이젠 민간에 개방되었지만, 이 미수거 지뢰 때문에 또 둘러서 다녀야 한다.
그 미사일 이름이 "나이스"였다나 뭐라나...

천성산 중심부에 들어왔음을 알려주는 증거 2 : 축축한 땅


천성산은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세계적으로 드문 산정 습지가 있는 산이다. 정상 부근이 솥단지 모양으로 오목(또는 최소한 평편)한 상태에서 수많은 세월 낙엽이 쌓이면, 자체 무게때문에 눌려져서 아래쪽 낙엽들은 공기를 만나지 못해 썩지 않고 그대로 이탄층이라는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이 놈은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는데 그 두께가 점점 두꺼워지면 천천히 지하수를 형성하는 거대한 물 저장소가 산 꼭대기에 생기게 되는 것.
실제 무제치늪이니 대성늪이니 화엄늪이니 하는 이름들이 천성산 정상 인근에 붙어있고, 여기 땅들은 다른 곳과 달리 시커멓고 축축하다. 더러는 물이 베어 올라와서 흐르기도 하는데 뻘이 산 꼭대기에 있는 기이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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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천성산은 물이 풍부하다. 산 정상에서 조금씩 땅으로 스민 지하수가 새어 나와서 물줄기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낙엽 아래로 흘러서 육안으로 안 보일때도 있지만 갈피를 헤쳐보면 축축하고 부드러운 검은 흙을 만나기는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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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겨울에는 그렇게 새어나온 지하수가 얼어서 곳곳에 뜬금없이 얼음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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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 그런 물줄기가 모일 수 있는 낮은 곳에는 제법 굵직한 얼음판이 형성되고 있으며, 그게 따뜻한 양지라면 그 위로 계속 물이 흘러서 밤사이 또 얼고 다시 흐르고 얼고를 반복해서 자꾸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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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뢰 위험지대를 알리는 표지판에 철조망까지 동원되어 마루금길 통행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그렇게 상당한 시간을 철조망 아래로 둘어서 가야한다. 그러다가 대석마을에서 천성산으로 올라오는 도로와 맞딱뜨린다.
대석이면 천성상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물론 거리는 멀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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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에 군부대가 있던 시절 통신을 위해 세워진 낡은 나무 전봇대가 일정 간격으로 정상까지 나 있는 모습을 기점으로 삼아 등산을 하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농장 표지판에서 길이 획 꺾이면 전봇대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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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석마을 반대쪽 산 줄기 아래에는 법기수원지가 있다. 마루금 길은 양안을 번갈아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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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두고 계속 마루금길을 찾아 숲에 들어가 헤매다 코 앞에 펼쳐진 천성산을 만났다.
듬성듬성 늘푸른 나무들 사이로 낙엽까지 다 떨군 관목들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전부 철쭉이라 보면 될 듯... 천성에 철쭉 피는 시기는 그야말로 장관이다.

저 원효봉 너머 화엄벌이 있는데, 모두가 원효의 전설이 남아있는 곳이다.
원효가 후학 양성을 위해 서라벌을 버리고 도를 닦은 곳이 이곳 천성산이다. 그가 화엄의 법문을 나무판에 적어 날렸더니 멀리 중국에 닿아 중국 각지에서 천명의 제자들이 몰려들어 이곳 화엄벌에서 매일같이 원효의 강론을 들었다고 전해진다. 그들 모두 득도하여 "천명의 성인"이 난 곳이라 천성이라 불린다는 설이 있다. 물론 천명의 남정네에게 몸을 허락하고 득도한 어느 여인의 이야기 버전 등 설은 다양하지만 일관되게 원효대사와 관련한 설이 쭉 이어지는 곳이 이곳 양산이다.
원효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은 요석공주가 아들을 데리고 찾아와 원효를 만나기를 기다리며 막을 쳤던 산자락 이름은 지금도 "산막"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원효는 산막에서 주구장창 기다리는 요석공주의 청을 외면하다가 어느날 찾아와서 아들의 얼굴을 한 번 쓱 보고는 매정하게 다시 산으로 가면서 아들 이름을 지어 남긴다. 그 이름이 "설총"이라...

여튼 올림픽 기록을 전부 갈아치울 정도의 투포환 실력의 소유자였으면서, 희대의 천재성에 난봉까지^^
그래서인지 천성산에 유독 절이 많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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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딱 대사의 이름을 딴 절, 원효암 입구의 간이 주차장까지만...
날은 아직 한창이지만, 얼른 집에 들어가서 본가로 갈 준비도 해야하거니와, 더 갔다가는 하산할 길이 망막하다.

내 맘대로 붙인 낙동정맥 북진방향 4구간, 즉 "양산-부산 지경고개 ~ 천성산 ~ 통도사 입구" 구간은 어설프게 1박 비박으로 종주할 수 있는 코스는 아니다. 누군가 차량으로 데려다 준다면야 구간을 나눠서 진행할 수도 있겠지만, 대중교통만 이용한다면 각별한 방법을 강구해야 할 듯.

천성산 종주 방법


당일치기 종주 : 도시락과 물만 갖고 초경량으로 움직인다면, 새벽 일찍 출발해야 저녁 쯤 도착 가능
1박 비박 :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출발하고 되도록 경량으로 움직인다면 가능할 것 같다.
2박 비박 : 중량으로 움직여야만 한다거나, 속보에 자신이 없다거나 하면 아예 2박을 예상하고 패킹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여튼 이렇게 전날 밤에 시작한 어설픈 1박으로는 천성산 1봉까지 가면 끝이다. 교통수단도 없다. 대석마을까지 터덜터덜 걸어서 1시간 넘게 내려온 것 같다.
다음에 다시 원효암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답도 없다. ㅜㅜ






설날같은 명절 연휴에 산에서 비박하는 건, 명절만 되면 시월드에 가는 마눌님의 부담과 명절만 되면 한시라도 빨리 오라는 부모님 모두에게 핑계거리를 줄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된다. 이건 결코 혼자만의 취미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 아니다.
보통 설 전날 부모님댁으로 가서 하루 자고, 부모님을 모시고 큰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간다. 그런데 오전에 건너오라는 부모님과 저녁에 가자는 마눌님이 내게 서로 압박을 해 대기 일쑤 ㅜㅜ
아예 내가 산행을 핑계로 저녁에 내려오는 게 속 편하다. 나를 태우고 가야하니까 마눌님과 꼬맹이들만 먼저 갈 수도 없는 상황을 만들어 버리는 것... 소심한 아들이자 남편의 궁여지책이랄까...
라고 해 놓고 보니 비박을 즐기기 위한 그냥 그럴듯한 합리화같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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