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 4구간] 03원효암~천성산~비로봉~내원사

2017.1.29

by 조운

곰곰히 생각해보니 다 끝내지 못하고 남은 4구간은 굳이 1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했고,
명절 내내 시달렸던 마눌님한테 자유 시간을 주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능선만 타고 움직이니 아들놈들 체력에도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뭔가 쓰고 보니 다 자의적인 해석같긴 하지만, 여튼 그런 이유로 초등 5학년과 3학년에게 천성산 3봉 종주라는 과업을 지시하고 동행을 시작했다. 물론 마눌님도 좋아라한다.
초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는 놈들과 하루쯤 떨어져서 시간 갖는 걸 너무너무 좋아한다. 그리고 체력이 방전되어서 집에 들어와서는 얌전히 씻고 골아떨어지는 것은 더 더 너무너무...^^




여행기간 : 2017.1.29
작성일 : 2017.10.17
동행 : 두 아들놈들과
여행컨셉 : 당일치기 트레킹



다시 네 가족이 차를 타고 이동한다. 사흘전 설 연휴 전날과 비슷하지만 이번엔 남자들은 전부 전투복장^^. 마눌님이 세 명을 내려준 곳은 딱 이틀 전 마무리한 마루금길에 있는 간이 주차장.

빤히 보이는 정상이지만 출발지점에서도 상당히 걸어야 천성산 꼭대기에 도착한다.
아니나 다를까, 막내는 걷기 시작한 지 얼마지나지 않아 벌써 묻기 시작한다.


다 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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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는 가스가 잔뜩 끼어 있다. 산을 처음 접하면 시각적 자극이 피로를 잊게 하고 재미를 선사하는 법인데, 이래서야 아들들과 꾸준히 산행을 즐기고 싶은 아빠의 때이른 욕심이, 산을 싫어하게만 만들까 내심 두렵다.
원효봉 입구에는 철문이 달렸다. 예전엔 여기가 갈라진 시멘트 길이고 바로 위에 군부대가 연병장으로 쓰던 넓은 터 였지만 부대 이전 이후 많은 게 바꼈다.
문에는 전에 없던, 수를 놓은 망사천이 걸려있다. 익숙한 글씨와 느낌. 스님이 쓰신 게 분명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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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얼마만에 보는.... <천성산의 친구들>^^
도롱뇽을 대신해서 개구리가...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땅 주인인 양산시에 다시 돌려주려고 할 때 문제가 생겼다. 예전 측량기술이 허접해서 군부대가 양산시 땅을 일부(연병장 자리) 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모두가 내원사의 땅이었던 것.
졸지에 내원사가 돌려받아야 하는데 양산시는 군부대 이전을 계기로 시소유 토지 위에 대규모 관광지 조성을 계획하고 있었다. 측량기술적 문제로 생기는 이런 일에는 실점유권을 인정해 주고 토지를 매매 또는 다른 토지와 맞교환하기도 한다는데, 양산시의 개발 계획이 알려지면서 내원사로서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 것.
덕분에 스님의 부름을 받고 드론까지 촬영도 하고... 그게 벌써 몇 해 전이군...
그때 부대 이전으로 비로봉에서 화엄벌로 이동할 수 있는 능선길이 열리면서 산악자전거들이 엄청나게 몰려드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산정습지는 스펀지(이탄층)이 생명력인데 등산객의 답압도 문제지만 그 보다 자전거 통행이 몇 배나 빨리 훼손을 초래한단다.

가뜩이나 연병장으로 쓰면서 화엄벌이 다져질 대로 다져진 상태인데 회복을 위해서는 통행하는 길을 좁히고 나머지는 휴식을 취하게 하는 수 밖에 없는 것. 하지만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분들은 없는 길을 내는 게 또한 맛이라고들 하니, 자전거가 많아 질수록 길도 많아지고 이탄층 면적도 같이 줄어들게 되는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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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말로만 설명을 해서야...
아직 아침 시간이지만 안개에, 처음 이렇게 장거리 운행을 하는 녀석들이 얼마나 버텨줄 지 걱정도 되고 해서 원효봉(천성산, 천성 1봉)은 건너뛰고 바로 비로봉(천성 2봉)으로 향한다.
비로봉까지는 한 참 멀었는데 데크길이 끝나자마자 바로 라면을 끓여 먹이고...

강토만 가지고 있던 등산화는 이제 작아서 강산이에게 줘 버렸다. 느닷없는 제안에 갑자기 등산화를 구할 수도, 운동화를 신자니 미끄러울 것 같기도 하고, 관절부상도 걱정이고. 하는 수 없이 릿지화같은 바닥창을 가진 겨울 부츠를 신겨서 왔다. 그리고 "Remember 20100416"이라 적힌 고무링 팔찌를 발목에 임시방편으로 끼우고... 그래도 좋단다. 고맙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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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들 얼어죽일까 싶어서 어찌나 옷을 많이 입혀서 보냈던지, 마눌님 덕에 내 배낭만 계속 무거워진다. 이제 더는 얼마나 남았냐고 묻지 않고 안개낀 산행을 즐기는 꼬맹이들이 대견하다.
등산 스틱이 필요없을 나이지만 질척한 산에서 혹시나 미끄러질까봐 중고로 구매한 싸구려 스틱을 한쌍씩 안겼더니, 그건 그냥 칼싸움 용도로만 쓰는 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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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천성2봉에 다달았다. 여기도 정말 오랜만이다.
흔히 섬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일출을 맨 먼저 볼 수 있는 곳이 영일만의 호미곶으로 알고 있는데, 천성산은 그 보다 약간 더 빨리 해돋이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높이가 있으니까...
그 만큼 동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구름이 처음으로 맞부딪혀 습기를 일부 떨구는 곳이라는 것. 그래서 연중 축축한 물기를 머금고 있고, 이것이 바로 바위산의 풍화를 촉진하는 장치가 된단다. 바위에 스며든 물이 겨울밤에 얼면서 팽창했다가 낮에 녹으면서 또 스며들고... 계속 반복하면 지 아무리 단단한 바위도 저렇게 결을 따라 주름이 깊어지고 결국은 잘게 부스러지고 만다.
비로봉은 한창 풍화가 일어나는 현장이고 훌륭한 지질공원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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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산 타는 게 아직은 마냥 즐거운 녀석들은 한때 거대한 바위의 일부였던 돌 조각이 깔린 길을 따라 봉우리를 향해 한 걸음씩 전진하면서 힘들지도 않은지 깔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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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빨간 꼬맹이들 사이 8자가 약간 지워졌지만 855m 정상 숫자를 담으려고 일부러 어려운 셀카를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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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안전하게 가는 방법도 있건만 굳이 칼같은 바위 능선을 넘어서 왔다. 한 쪽이 낭떠러지라 아찔하긴 하지만, 음.... 재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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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틱도 써 보고 둘이 서로 조언해 해주는 꼴이 보기 좋다.
혼자 올 때와 또 다른 재미로 내가 제일 신 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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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가 되어도 안개가 걷힐 생각을 않는다. 이대로 정족산을 지나 솥발산까지는 도저히 무리다. 나 혼자면 어떻게 해가 떠 있는 동안 움직일텐데, 벌써 체력이 소진되어 가는 아이들을 데리고 운행은 안될 듯.
정 안되면 비로봉에서 내원사로 내려가면 된다 생각했었는데, 바로 "정 안될" 시기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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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원사에서 거꾸로 비로봉으로 치고 올라올 때, 초 죽음이 될 정도로 가파른 오르막의 연속이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그 길로 이 아이들을 데리고 하산하자니, 안전 문제가 제일 걱정이 된다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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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르다. 이 놈들 계속 배고프다고 그러고... 하지만 먹을 거는 이미 바닥났다. 어르고 달랠 과자 부스러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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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쉬자고 그런다. 무작정 전진만 하다가는 사고가 날 것 같아서 하자는 대로 하는 척하면서 정말 잠깐씩만 쉬고 다시 제촉하기를 반복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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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날 것 같지 않던 각도가 마른 계곡을 만나면서 갑자기 완만해진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싶어 안도를 하지만, 그러고도 한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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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돌길을 끝냈다. 바로 앞이 내원사다. 생각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흘렀다. 내원사 방문객을 통제하는 시간을 훌쩍 넘겨 버린 탓에 유명한 사찰에 인적이라고는 없다.
내원사에서 내원사 매표소까지의 길도 한참이고, 다시 버스가 다니는 용연마을까지도 그 만큼을 더 가야한다. 이제 점점 컴컴해질텐데...
왠만하면 오늘 하루 마눌님 휴가를 주자 생각했지만 미루고 미루다 내원사에 다 내려와서야 마눌님께 데리러 와달라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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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사에 처음 온, 그것도 산을 넘어 온 기념으로 인증샷.
이때 관리하시는 분이 와서는 방문 시간이 지났으니 어서 내려가라고 한마디 하신다. 매표소까지만이라도 좀 데려다주시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스님께 전화를 드려 볼까 생각도 했지만 다 저녁에 심한 결례니 그냥 걸어서 내려가야지 뭐.

전화를 받고 출발한 엄마는 우리보다 약간 앞서서 매표소 입구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다.
고작 하루 떨어져 있었는데, 무슨 생이별한 이산가족 상봉 하듯 조용한 일주문 앞에서 강한 허그로 영화를 한 편 찍는다^^. 눈물없이 못 볼 영화... 어깨에 잔뜩 뽕이 들어간 아들놈들이 아침보다 훌쩍 커버린 것 같은 생각이 살짝 들었을 때,


도대체 지금이 몇 신데 아직까지 산에 있었단 말이고?
아빠라는 사람이 정신이 있나 없나?


내 감정선에 찬물을 끼얹는 마눌님의 잔소리가...

아, 다시 현실로 돌아왔구나~






그나저나 이렇게 비로봉에서 마침표를 찍으면 이제 못다 밟은 비로봉부터의 종주 코스는 어떡해야 하지? 괜한 제안으로 일만 크게 만들었지만 그깟 종주가 뭐라고, 아들들과의 산행이라는 더 큰 수확을 거둔 "인생하루"를 얻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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