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22
병마용은 서안의 동쪽, 화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다.
진시황릉은 서안시와 병마용 사이에 있고.
묘를 둘러싼 이중의 성벽 길이만 12km에 달할 것으로 짐작되고 있는 등, 방대한 규모는 모두 땅 속에서 아직 잠자고 있다.
동양의 장례 풍습을 보면 시신은 북쪽에 머리를 두고 남쪽을 향하기 마련인데, 진시황은 서를 베고 동을 주시하는 모양새라 한다. 이는 고향인 서쪽 보다, 잔혹하게 6개국을 멸하고 통일한 동쪽 땅을 죽어서도 응시해야 할 필요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남쪽으로 '리산'을 시작으로 거대한 진령산맥이 있고, 북으로는 대초원이었으니 실제 동쪽 방비만 잘하면 죽은자를 위한 도시 안에서 또한 영생이 가능했으리라.
여행기간 : 2017.9.20~23
작성일 : 2018.3.22
동행 : with 'J' & '곡s'
여행컨셉 : 워크숍 및 촬영 인스펙션
병마용은 진시황릉으로부터 1.5km 동쪽에 떨어져 있다. 병마용박물관에서 운행중인 셔틀을 타고도 5분 정도의 거리.
중국 최초로 통일을 이룬 위대한 절대 군주이지만 그러자면 또한 얼마나 많은 죽음을 초래해야 했겠는가. 당연히 장예모의 영화 "영웅"에서 처럼 적들이 한 둘이 아닐테고... 죽어서도 동쪽의 적들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했을... 병마용 8,000기로 동쪽을 호위하지 않고서야 누워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을 거다.
최초로 발견된 1호갱의 위용은 실로 놀라웠다. 호위군의 주력부대라 할 만한 규모.
도합 6,000명의 보병 및 궁수부대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으니...
우리가 다음으로 찾은 곳은 제 3호갱.
1, 2, 3호갱 중에서 가장 작은 규모.
보병 외의 병과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갱이다.
직사각의 방대한 1호갱을 보고나니, 다소 초라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갱의 크기가 작고 직사각형이 아니라 T자형으로 되어 있다.
1호갱의 군세와 확연하게 다른 느낌은 전략부대 혹은 전술 장교들이 모인 지휘부대를 연상케 한다는 것.
1호갱 보병부대와 달리 바닥면도 잘 다듬어진 벽돌이 깔려있다.
여기 또한 미 발굴 상태의 토용 조각들이 널부러진 채 발굴팀의 손길 대기 중.
목 없는 병용들을 보면 이들이 몸통과 따로 만들어져서 조립형으로 제작된 것임을 잘 알 수 있다.
2호갱도 갱 주위에 2층 난간을 두어서 돌면서 관람할 수 있도록 했는데, 건물의 벽면에는 발굴 당시의 사진을 통해 병용 하나하나의 정교함과 채색을 소개한다.
지난 포스팅에서 말했듯이, 애초 발굴단이 확인한 화려한 채색의 토용들은 공기와의 접촉으로 산화반응을 일으켜 탈색이 되어 버리고 말았단다. 지금은 탈색을 막을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해서 발굴하고 있다고 하지만 방대한 양의 토용들은 이미 다 흙빛 상태로 끄집어 올려진 이후라고...
손가락, 특히 손톱까지 정교하게 표현한 것 좀 봐라...
눈동자나 콧수염과 곱게 빗질한 머리카락까지, 테라코타를 이렇게 정밀하게... 35년 건설 공사 기간 동안 장인들은 인생을 바친 예술혼을 투영한 거겠지.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
3호갱은 이런 사진을 즉석에서 제작, 판매하고 있다.
관람객의 얼굴과 병마용을 합성해서...
클린턴과 푸틴이 사이좋게... 냉전은 끝났군^^
이런 곳에서 이런 모습의 노통을 만나다니...
살찍 희화화된 것 같은... 가신 이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좀 내려줬으면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아크릴 공예로도 만들어 준다. 중국의 유명 배우얼굴. 출연하는 영화는 몇 편 봤는데 이름은 잘^^
한 쪽 벽에 유명인의 얼굴이 든 아크릴 토막이 잔뜩 전시되어 있다.
2호갱이다.
1호갱 > 3호갱 > 2호갱은 시계방향으로 관람하게 되는데, 1호갱보다는 작고 3호갱보다는 훨씬 넓다.
1호갱의 감동을 생각하면 그 뒤는 조금 시시할 수도 있다. 그래도 갱마다 중점적으로 봐야 할 부분들이 있어서 놓칠 수는 없다. 입장료도 비싼데...^^
2호갱은 미발굴 상태로 표시만 된 섹터들이 그대로 공개되어 있다.
다른 갱들과 달리 전차가 많다고...
장기에서 포와 차가 가진 위력이 얼마나 막강하면 '차 떼고 포 떼고'라는 말이 있겠나.
당시 전차부대는 도저히 다른 병과가 대적할 수 없는 최고의 작전 수행 능력을 자랑했으리라.
어쩌면 진의 전국 통일 최고의 수훈은 바로 이 전차일 터.
1호갱의 발굴로 채색이 홀라당 날아가버린 우를 범한 뒤, 외부에서 원격탐사로 최대한 정보를 파악했으리라. 저 안에 묻혀 있는 전차의 마구가 나무로 된 것들이 있단다. 지금 기술로 2,000년 전 나무로 제작된 것들을 발굴해봐야 모두 먼지가 되어 버릴 터. 인류의 고고학이 마구 등의 나무 부자재를 고스란히 드러낼 기술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계속 저 상태로 둘 계획이란다.
3호갱보다는 규모가 훨씬 크지만 다 덮여있으니 뭐... 별로 볼 게 없다^^
벽돌로 만든 격벽과 격벽 사이 파도 무늬는, 서까래 역할의 나무통들이 화석화되어서 만들고 내고 있는 문양이라고... 결국 1호갱은 나무 무시하고 파 냈다는... ㅠㅠ
2호갱에 있는 저 부스는 1호갱의 막강한 보병부대를 배경에 두고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다. 물론 유료... 심지어 그냥 저 배경 병마용만 쌀짝 찍으려 해도 불허... 쳇~
2호갱의 한쪽은 소규모의 박물관처럼 꾸며 놓았다. 거대한 터의 병마용박물관에 '박물관'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한 동 따로 있건만 다시 2호갱 한켠에 전시물을 둔.
아마 이 아재 때문이리라.
8,000여 기의 토용 중에서 부서짐없이 온전하게 완전체로 발굴된 유일한 아재란다.
그래서 교과서고 어디고 이 아재 사진이 제일 많다^^
굳이 설명이 없어도 딱 보니 노궁수.
8,000 : 1의 경쟁을 뚫고 2,000년의 시간을 지나 다른 아재들과는 조금 다른 특별 대우를 받고 계신 중이다.
옷에 주름이나 살짝 돌아간 어깨선, 진짜 사람 몸에 회를 발라서 산채로 구워버린 게 아닐까 싶은 신체 비율까지,
광대뻐나 수염, 손가락 자세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바 없는 놀라운 재현이다.
손금, 신발 밑창, 갑옷과 머리 모양까지... 완전체 제대로 감상할 수 있도록 조명 빠방하게 켜 두었다.
그리고 완전체 노궁수 아재보다 지휘가 높은 관계로다가 동급 예우를 받고 있는 장수와 군사(軍師).
전체 전시물 중에서 내가 뽑은 최고의 작품은 바로 이 아재다.
상하 몸 전체를 방어하는 완벽한 대련 자세. 갑옷이 없는 걸로 봐서는 무술 교관이 아니었을까 싶다.^^
말과 마부의 모습도 사실적이긴 마찬가지.
청동 재료가 주축이었던 당시, 베는 무기는 부러지기 일쑤라, 전장에선 주로 찌르기 위주의 무기가 유용했단다. 그래서 일반 사병들은 주로 장창(長槍)이나 극(戟), 부(斧)를 사용.
이 칼이 그 유명한 크롬 도금 장검.
2,000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칼날이 그대로 살아있다. 방문하면 반드시 측면에서 그 예리함을 봐야한다.
출구로 나오기 전, 무더기로 흩어진 조각들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기록하는 박물관측 직원들을 볼 수 있다.
우리에겐 관광지이지만 그들에겐 직장... 일터가 하필 세계가 주목하는 곳이라는 게 좀 남다르지만.
오로지 관심을 진시황의 의도 파악과 2,000년 전 장인들의 작품세계에만 두고 있는 사람들.
중국 최초로 천자를 자칭했던 오랜 전 한 남자는 책들을 불태우고 엄격한 법과 제도, 군사력로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는 그 모든 걸 죽은 이후까지 가져가려고 했는데...
지금 그 덕분에 가족을 부양하는 수많은 후손들이, 어쩌면 철천지 원수의 후손들까지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