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9.22
2,000년 한 사내의 욕망이 낳은 거대한 흔적들을 쭉 거닐다가 밖으로 나오면 전혀 현실이 현실적이지 않다. 마치 대하사극 영화 한편을 보고 나와 극장 출구에서 만나는 현실 같은...
왜 어느 도시를 가나 우리 일정은 이렇게 빡빡하게 잡아놓는 걸까?
기왕 촬영팀이 왔으니 있는 거 없는 거 짧은 시간에 몽땅 찍어대길 바라는 거? 그렇겠지.
3,000년 동안 수많은 왕조의 부침과 영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서안을 고작 이틀간 주마간산 할 수 밖에 없는 우리들도 불쌍하고...
이제 박물관 건물로 우리의 병마용 대면식을 마무리 한다.
여행기간 : 2017.9.20~23
작성일 : 2018.3.22
동행 : with 'J' & '곡s'
여행컨셉 : 워크숍 및 촬영 인스펙션
가이드 분은 우리에게 들어가서 계단을 내려서 좌로 한 번 우로 한 번... 코너를 돌아서 딱 청동마차만 보고 다시 나오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래서 또 줄을 선다.
어딜가나 줄... 그나마 이건 줄 서는 것도 아니라고, 복 받은 날이라는 위로를 듣긴 했지만...
박물관 로비는 약간 지하로 내려가도록 길게 계단으로 이어진다.
우리 또 착하게 가이드 말대로 딱 보라는 것만 보러 간다.
헉!
조도를 상당히 떨어뜨려 놓은 거대한 방 중간에 홀로 조명을 받고 있는 저게 마차지 싶다. 근데 사람들이 벽을 만들어서 어디 볼 수가...
중국에서 발견된 청동으로 된 유물중에서 가장 크고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고 하는 청동마차.
진시황이 중원을 통일하고 이제 모두 자신의 땅이 된 곳을 이걸 타고 순시를 했단다.
발굴 당시의 모습을 벽면에 거대하게 사진으로 담아놓았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서 순간 이렇게 눈으로 확인하고 다시 빠져 나와야 했다.
군데군데 확성기로 설명도 하고 북새통이지만 천천히 감상할 여건은 사실 아니라는...
박물관 출구 앞엔 어련히 기념품샵^^
아빠들에게 출장은 늘 집에서 기다리는 토끼새끼들에게 작은 거라도 뭔가 사들고 가야하는 강박을 준다는...
진시황을 캐릭터로 한 팬시제품들이 좀 있어서 여기서 숙제를 끝내보려 한다.
캐릭터 인형이 좋을까?
정확한 축적비까지 박혀있는 전차나 토용이 좋을까?
병마용박물관 티켓에는 진시황릉 입장권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처럼 차를 가지고 온 사람은 물론 황릉과 병마용 사이를 오가는 버스가 수시로 다닌다.
우리도 가 볼까 생각했는데, 가이드 분이 말린다.
"그냥 빈 터예요. 발 밑에 진시황 묘실이 있구나... 그게 끝인데요 뭐"
만약 어제 화산을 타지 않았다면,
밤에 서봉주를 그렇게 맛나게 마시지 않았다면...
어쩌면 우겨서라도 갔을 지 모른다.
결론은 안갔다는 거.
우리 대에 가능할 지 아닐 지는 몰라도 고고학 발국 기술의 일대 진전이 생기고, 진시황릉 발굴이 결정되고 나면 그때 오자... 는 핑계로 못 이기는 척 가이드 말을 따른다.
대신 우리는 병마용박물관에 들어갔던 입구 쪽 말고 다른 쪽으로 나온다.
여긴 익숙한 패스트푸드점 등 편의시설들이 쭉 이어져 있는 곳.
"제발 커피 한 잔만..."
아침부터 노래를 했더니 이리로 데리고 온다.
아직 서안에와서 커피를 먹어보지 못했다. 참 구하기 힘든 음료다 여기서 커피는.
딱 커피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 동안 엉덩이 좀 붙이고 있다가 다시 거리로 나선다.
사실 이곳은 거대하게 병마용박물관을 개관하면서 발생 수익을 주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조성한 관광타운이란다.
외부 업체들이 패스트푸드점 등을 열고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기념품샵, 식당 등은 현지 주민들이 운영을 하고 있다고...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일순간 땅을 잃게 되니(참고로 중국의 모든 땅은 국가 소유다. 70년씩 사용권을 국가와 계약하고 연장하지만, 국가가 필요로 할 때는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다고 한다.) 보상 개념으로 이런 곳을 마련했다고...
국가공원이라 으리빵빵하게 지어진 건물이 관리도 잘 되어 있는 깔끔한 타운인데, 동네 개들도 주인을 따라 마실 나와서 아무데나 벌러덩^^. 생경한 조합이 재밌다.
약간 더 내려가면 본격 식당가.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해결한다.
집밥 백선생은 아니지만, 여기도 선생님이 운영하는 유명한 중국 체인이란다.
중국에서 뭘 먹을 지 고민이 되면, 일단 우육면^^
어딜가나 평타는 치는 맛 보장이 되더라는...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가 생소한 글자를 만났다.
본토 발음이 '뼝'과 '뿅' 사이쯤 되는 소리가 나는 글자인데, 특정 면종류를 뜻하는 글자란다.
저렇게 딱 한 글자만, 그것도 흰바탕에 붉은 글씨로 걸어놓은 집들이 수시로 눈에 띄더라는...
반죽을 수타로 뽑는 라면의 일종이라는데, 수타시 나는 소리가 그대로 글자의 발음이고...
중국인들도 다들 읽을 줄은 아는데, 써 보라니 헷갈려한다.
이런 지뢰들이 발견될 때마다 중국어에 대한 열정이 팍 꺾이고 만다 ㅜㅜ
허걱!
여우목도리 좌판도 있다. 진짜 여우란다. 심지어 한국인들이 가격 저렴해서 많이들 사간단다. 무슨 인삼도 아니고 6년차부터 털에 윤이 잡히고 특유의 기름이 나와서 비나 눈도 막아주는데 여기서 파는 것들은 전부 3년이 안되는 아이들의 가죽이라 퍼석하고 가치가 없다고 절대 사지 말라는 가이드의 언질...
그런 거 별로 궁금하지 않는데...
인구가 너무 많아서 사람간 경쟁이 치열하다보면 염치나 배려가 돋아날 기회가 줄어든다. 중국에 올때마다 더러 느끼는 문화인데, 대신 식구나 꽌시 그룹에 소속이 되면 배타적인 호혜로 품어 안는 것도 중국인들의 특징이다. 각자도생하는 것보다는 그룹으로 "파워업"하는게 무한경쟁을 돌파하는데 유리하다는 생활의 경험 때문이라라. 이랬거나 저랬거나 동물이 사람들의 꽌시 그룹에 속할 기회 따위 없을 테고, 사람들간의 경쟁만으로도 힘든데 무슨 동물권까지...
모피를 국가공원 안에서 대놓고 팔고 있고, 그러기 위해서 공장식으로 사육되고 있을 게 불을 보듯 뻔하지만,
중국에서, 동물에게 지각과 인지 능력이 있니 없니, 고통과 감정을 느끼니 안느끼니 하는 논쟁이 들어올 자리를 쉽게 내어줄 수 있는 사회는 아닐 것 같다. 아직은...
다만, 문화다원주의에 대한 감각이 중국에서의 동물권만큼이나 일천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병마용박물관 잘 보고 나오면서 맨 마지막에 여우 가죽을 보면 딱 두 가지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걱정은 된다.
"와, 싸다. 하나 살까?"
아니면
"이런 거 여기서 팔아도 되나? 하여튼 중국놈들..."
레비스트로스... 레비스트로스...
주문을 외운다 또.
나부터라도, 가치평가나 동정 이전에 ,
오늘을 붙들고 열심히 생을 밀고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