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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May 28. 2018

중국 서안 13_화청지(華淸池, 华清池)와 양귀비

2017.9.22

서안 여행은 시대여행이다.
오전에 진나라 시대의 부침을 둘러봤고, 이번엔 당나라로...
당 현종과 양귀비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노래한 <장한가>의 배경이 되는 "화청지"로 간다.


 




여행기간 : 2017.9.20~23
작성일 : 2018.3.23
동행 : with 'J' & '곡s'
여행컨셉 : 워크숍 및 촬영 인스펙션





화청지는 병마용에서 다시 서안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병마용, 진시황릉, 화청지가 모두 시대를 초월해 리산의 북쪽 자락에 세워져 있다는 게 재밌다. 뭔가 풍수지리상의 큰 잇점이 있는 게 아닐까 싶은...
 

화청지의 입구.
두 마리 해태 석상이 지키고 있는데 실제 관람객들은 이리로 출입을 하지는 않는다.
 

대문 앞은 넓은 광장이고, 사서삼경과 가무까지 겸비했던 경국지색의 양귀비, 그리고 시어머니가 죽자 며느리를 그 자리로 데려온 대담한 사랑쟁이 당 현종이 아닐까 싶은 현란한 동상이 있다.
실은 화청지는 오전에 봤던 병마용보다 더 이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거지만,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가 너무 강렬해서 그 시대의 건물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화청궁이라 불리기 전부터 3,000년의 세월을 이어온 온천장이었다는...
 

해태는 약간 산화된 느낌의 흰색 대리석 재질인데, 발등만 사람들의 손기름에 반질반질^^
 

각각의 해태 뒤, 문 앞에는 화청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화청궁 전경도"가 안내를 대신한다.

당나라 시기, 서안은 이미 서역과 중원의 모든 물류, 정보가 교류하던 말그대로 국제도시였고, 
화청궁은 그 이전부터 각광받던 온천욕장이었다. 
당시 목욕을 즐길 수 있는 계급은 왕후장상. 씨가 따로 있던 사람들^^
당시기 화청궁은 그들을 위한 최고의 위락시설 중 하나였으리라. 당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이야기가 고스란히 서려있는 화청궁 스토리는 결국 양귀비가 "경국지색"이 된 연유이기도 하다.

중국의 4대미인이라는 양귀비는 현종의 며느리로 입궁한다.
아들과의 결혼을 허락했던 시어머니(그러니까 현종의 후궁)가 죽고, 외로웠던 현종이 양귀비의 미모에 반하게 된 곳이 바로 화청궁.
실제로는 작은키에 약간 통통한 글래머 스타일이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전통적인 중원의 미인이라기 보다는 약간 국제적인 미적 기준이 적용된 당나라 시대의 미인상이었다고 그런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리 이뻐도 그렇지, 시어머니가 죽자, 며느리를 자신의 부인으로 맞다니...

당시 도덕적 허용 범위가 지금과 다르다거나 뭐 그렇진 않아 보인다. 
비록 황제가 하는 일이라 하더라도 그녀를 아내로 맞는데 10년 짜리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운다.
우선 그녀를 억지로 도교에 탈속시켜 일단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를 청산한다. 그리고 화산의 도관으로 보냈다가 몇 년을 몰래 만나고 난 후, 다시 궁에 도궁을 건설, 도교 여사제의 자격으로 재입궁^^
자연스레 양귀비를 궁내 도관으로 데려온 후 적당한 시기를 봐서 환속. 그러고나서 후궁으로... 

유교 윤리 필터 빼고 보면, 현종은 금지된 사랑에 빠진 낭만쟁이다. 
"모르겠고...우리 그냥 사랑하면 안돼?"
장삼이사라면야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야반도주해서 사랑을 완성할테지만, 궁궐을 떠날 수 없는 황제 신분이니, 10년 공을 들여 결국 사랑을 쟁취한... 그래서 이후 두 사람의 사랑이 변했냐하면 또 그렇진 않다. 
양귀비의 별명이 해어화(解語花)였단다. 
페미니스트들 들으면 기겁할 별명이지만, "말귀를 알아듣는 꽃"
입궁 전부터 사서삼경을 익혀 시문에 능하니 지적 대화 상대가 되었다는 것이고, 
가무와 기악에도 능해서 양귀비를 후궁으로 맞아들인 이후, 치세를 떨치던 현종은 종사를 외면하고 음악과 예술에 빠져 살았단다.
즉, 가무예약을 갖춘 미인이 세상에서 제일 위험하다는...ㅎㅎㅎ
  

화청지로 들어가는 입구

여튼 그 이전부터 온천장으로 유명했던 화청지가 서안에서 유명한 관광지가 되도록 한 건, 이 둘의 죽고 못 사는 사랑이야기 덕분이리라.
원래는 훨씬 큰 규모였는데, 현종을 몰아낸 '안록산의 난' 때, 대부분이 불타버리고 청대에 와서 축소 복원한 것이 지금의 화청지다.
안록산한테는 양귀비가 당나라를 기울게 하고, 종사를 어지럽힌 장본인이어야만 자신의 난이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기에, 양귀비와 관련된 것들을 태우거나 없애야만 했던 게 아닐까?
 

큰 연못을 중심으로 아름드리 나무와 건물이 아기자기한 맛을 주는,
중국의 궁이나 건축물들이 남성적이고 장쾌한 맛이 많은데 비해, 아기자기하고 섬세한 느낌이 크다.
 


물에서 좀 떨어진 곳은 거대한 석류나무, 물가엔 능수버들이 운치를 더한다.
 

연못 뒤쪽 그러니까 케이블카가 설치된(중국엔 케이블카가 참 많은 듯^^) 리산을 뒤로 두고 본격적인 목욕탕 시설들이 모여있다.
그 중앙 광장에 갓 목욕을 하고 현종을 한 눈에 반하게 만들었을 자태가 이렇지 않았을까... 하는 하얀색 양귀비 조각상이 거대하게 자리한다.
 

그럼 황제나 황궁 식구들의 목욕탕 구경 한 번 가보자.
 남의 집 욕실 구경이라니 참...^^
 

탕은 요즘처럼 물을 가두는 벽을 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땅을 좀 파내고 용천 온천수가 자연스레 스며들게 하는 방식으로 지어졌다. 그래서인지 각각의 탕으로 들어가는 건물은 전부 계단을 올라 평지보다 살짝 높게 입구가 있다.
 


남의 집 욕실 구경 삼매에 든 사람들^^
 

해당탕은 현종과 양귀비가 함께 목욕을 즐겼던 탕이란다.
 

하나의 탕을 들어갔다 다른 출구로 나오면 다시 또 다른 탕의 입구를 만나는... 
한 바퀴 탕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풀코스 사우나 방식이지 않았겠나 짐작해본다.^^
 


연화탕

규모가 남다른데, 현종의 전용 욕탕으로 쓰였단다.
여러 탕 중에서 유일하게 물이 채워져 있는데, 자연스레 관람객들이 동전을 던져 넣어서 바닥이 반짝거린다.
 

연결된 듯한 해당탕과 연화탕에서 나와 성진탕으로 가는 길목, 온통 담쟁이로 뒤덮인 망루같은 곳이 보인다.
양귀비가 저기서 머리를 빗고 손질했다 한다. 고혹적인 매력을 굳이 모두가 볼 수 있는 저런 장소에서 발산한다? 
미남, 미녀들은 다들 지가 이쁜지 스스로도 안다고 봐야지^^
 


성진탕

모습이 가장 대중탕에 가까운...
하지만 이곳은 당태종의 전용탕으로 지어졌다 한다.
 

상식탕.
황족 외에 궁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사용한 그야말로 대중탕.
 

성진탕 반대편 출구로 나서면 이렇게 해당탕과 연화탕을 배경으로 세워진 양귀비석상의 뒤편이 보인다.
 

양대 건물 사이, 야외에 있는 건 태자탕이다. 
 

규모로 보나, 야외라는 위치로 보나, 황실의 어린 태자들의 물놀이 풀장이 아니었을까?
 

이 외에도 화청지의 온천이 샘솟는 원류라든지, 
양귀비의 거처 인근에 마련한 간이 욕실(그녀는 목욕만 했단 말인가?) 등도 모두 복원되어 있다.

사실 양귀비가 역사에 미친 영향때문에 "요녀" 취급 당하는데... 좀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쁜 게 죄는 아니지않나?
시아버지가 어느날, 아내가 되어 달라는 말도 안되는 요구를 했지만, 거절하면 삼족이 무사하겠는가?
낼모레 육순의 황제를 보필하는 것 외에 인생의 무슨 낙이 있었겠나, 하지만 자신 덕에 집안이 복권에 당첨되었는데 중간에 도망칠 수는 없었을 것 아닌가? 그리고 정말 당 현종을 나이를 뛰어 넘어 사랑했을지도 모르고...
평생 남편의 사랑속에서, 좋아하는 가무 속에서 살기만 했는데... 황제가 치세를 펼칠 수 있게 채찍질하지 않은 죄? 그런 거 한다는 핑계로 역사상 수많은 후궁, 무후들이 정사를 쥐락펴락하지 않았나?

마약을 구속하진 않잖아. 마약사범을 구속하는 거지...
양귀비, 클레오파트라, 패티 보이드에게 굳이 죄를 물을 수 있나?
 

규모가 축소되어 복원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넓은 규모를 자랑하는 화청지.

주나라부터 한나라, 당나라, 명청을 거쳐 민국 시기의 주요 사건에도 등장하는 역사적인 곳이지만, 
세상 천지 제일 인기있는 이야기가 사랑이야기니...
특히 나라를 기울게 한 비운의 미인이 겪은 사랑이야기에 모두 밀려...
'서울을 하나님께...'가 아니라 '화청지를 양귀비에게' 봉헌한 느낌 다분히 있긴하다.
 

구룡탕

아홉마리 용 상이 있다고 9룡이지 않을까 싶은데 세어보면 용이 훨씬 많다^^
탕이라기 보다는 못에 가깝고 아주 넓다.
 

탕 위에서는 이들의 사랑이야기를 노래한 백거이의 <장한가>와 같은 이름의 쇼를 연행한다.
하이난에서 중국 무대연출의 기묘한 맛을 본 이후, 왠만하면 대형 가무쇼는 놓치지 말자는 쪽인데...
저녁에만 한단다. 우리가 그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포기 ㅜㅜ

수면 아래 살짝 가라앉아 있는 무대장치들과 건물 지붕들 사이로 연결되어 있는 와이어들만 봐도 육해공 버라이어티한 쇼일 것 같은... 아쉬워야 또 오나?^^

아쉬운대로 우린 드론을 준비한다.
 


비상전

화청지에서 가장 규모있어 뵈는 건물 앞 연못과의 사이에 아주 넓은 광장이 있다.
아기자기한 맛을 연출하는 화청지를 담으려니 곳곳에 와이어가 있거나 나무가지가 늘어져 있어서... 여기가 그나마 이착륙이 용이한 곳 같아 보인다.
이런 국가 사적지에서 비행을 하는데도 통보만 하면 되는... 뭔가 좀 이상하지만 일단 허락을 받긴 했으니 바로 운행을 해 본다.

리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 라인도 있고 해서 화청지 일대와 인근 마을 전체를, 
리산은 좀 더 높은 곳에서 촬영을 해서 여러컷을 담았다. 
드론 운용시 제일 곤란한 게 한창 긴장해서 조종중인데 말 거는 사람들^^
여기선 중국어로 말을 걸어온다. 
못 알아듣지만... 보통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얼마예요?"^^ 이지 않을까...
 


구룡탕 옆으로 진짜 연못이 있다.
 

내 카메라 앞으로 그냥 막 걸어들어오시더니, 턱하니 자리 잡고 앉으신다. 
가끔 중국분들의 이런 행동 참 당황스럽다. 남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민폐"에 대한 감각이 둔하달까?
일본인들은 약간 "민폐 강박증"이 심한 듯한데, 정반대...
남편분이 내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내 카메라는 안 보이는 거지. 의도적인 게 아니라 무딘 게 맞는 것 같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만약 이 감각이 예민해지면 살기 참 피곤할 것 같다. 일종의 자기 보호 기제가 아닐까 이해해볼란다. ㅎㅎㅎ

한 컷 담고 "아름다우시다" 했더니, 그제서야 내 카메라를, 내가 촬영 중이라는 걸 인식한 것 같이 미안해 하신다.^^
선글라스라서 애매하긴 한데, 시선은 분명 내 렌즈를 보고 있는 것 같은데...^^
 


주마간산적 느낌 없잖지만, 이쯤에서 화청지를 떠나야 했다.
화청지가 있는 이 곳은, 서안에서 한참 외곽 지역인 곳이지만 위에서 바라본 시가지의 조밀함은 대도시 빰칠 정도였는데, 화청지가 온천장으로 3,000년을 이어왔으니, 당연한 일이지 싶다.
덕분에 서안와서 교통 정체라는 걸, 서안이 아닌 이곳에서 처음 경험했다. 가이드 분이 왜 자꾸 빨리 빨리를 재촉했는지 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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