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지리산 2 : 천왕봉~장터목~중산리

2014.1.12

by 조운

여행기간 : 2014.1.11 - 1.12
작성일 : 2016.10.13
동행 : 수영동호회 회원들과
여행컨셉 : 백패킹



거의 새벽이 다 되어서 잠깐 잠들었지, 고통스런 밤을 보내야 했다.
어련히 수십 명이 자는 이런 곳에서는 꼭 한 두분 코를 심하게 고는 분이 있기 마련인데, 하필 바로 옆에서 자는 아저씨였다. 다락 형식으로 된 위층에서도 한 분이 골긴 했지만, 가까이 있는 분에 비하면야...
그 분 숨이 넘어가지 않게 숨쉬는 간격과 정도를 바이탈 체크하듯 밤새 남몰래 간호를 하다가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친절 행님이 깨웠다.
새벽 4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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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리에서의 조식으로 염두해 둔 꿀차와 함께 누군가 핫바를 꺼내어서 제법 든든하게, 그러면서 빠르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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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고도 1,400m 조금 못되는 이곳의 새벽은 추웠다.
그나마 지리산의 남쪽 사면에 해당하는 이곳은 지리산이 겨울 바람을 막아주고 있었지만, 천왕봉으로 갈수록 바람이 강할 것이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았다. 괜히 일찍 도착해서 강추위에 체온만 저하되는 것보다는 일출 시간에 맞춰서 체온 조절해 가면서 오르는 게 낫다는 산행 대장의 판단에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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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을 시작하고도 어두워서 그렇지 바람도 없고, 눈도 날리지 않았다. 대신 로타리 산장을 벗어나자마자 온 바닥은 전부 눈으로 덮여있었다. 같은 색깔로 통일된, 더구나 그 앞에 지나갔을 어제의 등산팀 흔적도 희미해진 곳에서부터는 자칫 길이라도 잃을까 걱정도 되었다. 랜턴으로 비출 수 있는 범위로는 지형을 다 파악할 수 없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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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폰이 달리 빙벽화까지 갖춘 우리의 산행대장.
실제 신발 무게만도 후덜덜인데, 100리터 배낭엔 남은 음식물에 뭐에... 공동의 짐까지 거진 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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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이 오는 게 아니라, 워낙 기온이 낮은 곳이라 나무에 앉아서는 녹지 못하고 있던 눈가루가 작은 바람에도 휘날리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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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대. 크게 발달하진 않았지만, 상고대로 추정된다.
아마도 생긴 지 제법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나 매마른 고지대에서 1월에 볼 수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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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증기를 발생하는 곳이라면 상고대는 다 생긴다^^. 머리카락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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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썹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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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샘에 이르기 한참 전, 매서운 삭풍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대장은 진행을 멈추고 시계를 보면서 그나마 바람이 일지 않는 마지노 선인 이곳에 길게 늘어서서 비상식량도 좀 먹고 따뜻한 커피도 마시게 하면서 시간을 보내도록 했다. 그에게 의지하고 있는 모두는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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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확연하게 주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대장은 다시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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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바로 아래 너덜 바위군을 지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단단한 돌로만 이루어진 곳, 미끄러움도 그렇고, 무엇보다 그 경사도가 사람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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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


로프가 안내하는 마지막 급경사 끝에 더 오를 곳이 없는 바위들이 보였다. 천왕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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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정상을 밟아야만 산을 오르는 것은 아닐테지만, 남사면과 북사면의 온도차이나 기후 차이를 불과 몇 미터를 두고 느껴볼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위해서라도 천왕봉을 꼭 올라 보길 권한다.
촌스럽지만 봉우리 명이 적힌 비석에서 한 컷!
주위에 가스로 가득해서 일출은 못 봤다. 가시거리라고는 겨우 30m 정도 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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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에서 장터목 방향의 내리막은 오르막과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 일단 바람 세기가 장난이 아니다. 그 바람에 바위에 내려앉은 눈들은 날아가 버리고 맨 바위에 얇게 코팅된 아주 미끄러운 얼음이 일행의 걸음을 굼벵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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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봉과 거리가 좀 멀어지자 가시 거리도 좀 길어졌고, 바람도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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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이 모두 백색인 공간에서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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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대학 때처럼 아무것도 보이진 않는 능선길을 따라 갔다. 여름과 달리 눈은 원없이 밟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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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 평원이 나타났다. 장터목에 거의 다 왔다는 뜻이다. 주위에 온통 고사목들이다.
너덜 바위들은 눈에 덮여 오르막과 달리 그렇게 무릎에 무리가 오진 않았다.

장터목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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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목은 로타리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능선 위에 세워져 있다. 방사한 반달곰에 주의해라는 안내 문구도 있는 것이 전체 지리산의 중심으로 훌쩍 들어온 느낌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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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천천히 움직였더니 아침 식사 시간을 훨씬 넘겨서 장터목에 도착해 버렸나 보다. 취사장은 벌써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일행이 모두 들어가는 건 무리였다. 밥조만 우선 들어가서 식사 준비를 하고 사람들이 한 둘 나올 때마다 그 자리에 끼어들어야만 했다.
다시 또 참깨라면, 대장님의 라면 취향에 따라 구수한 그 맛에 다들 중독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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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내려왔나보다. 유암폭포에서 땀도 좀 닦고 다들 멋진 포즈로 사진도 좀 찍을 여유가 생겼는데, 아쉽게도 하산길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법천골 마른 계곡을 가로지르는 데크 다리 위에서 전체가 아쉬움을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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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마 기약(정말 곧 다시 오게 되었지만)하고 짧은 지리산행, 짧은 20년 전 기억과의 조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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