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2.9
여행기간 : 2014.2.9
작성일 : 2016.10.31
동행 : 초등2학년 큰아들
여행컨셉 : 산책 수준
첫 경험이 어떤 느낌을 줬는가가 중요하다.
등산을 처음 했는데, 단지 힘들고 피곤한 일이었다는 기억으로 남았다면 다시는 등산을 즐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애들은 한라산을 첫 산행지로 삼았고, 즐겁고 거대한 놀이터로 인식하게 되어서 이제 산에 가자는 걸 재밌는 놀이터에 가자는 걸로 여기는 듯하다.
둘째 녀석은 열이 조금 있어서 안 될 것 같았고, 다음에 다같이 갈까 생각하다가 이번에는 첫째 녀석만 데리고 한 두 시간 산책만 하는 걸로 맘을 정했다.
어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금정산에 정말 자주 다녔다.
당시만 해도 수도 시설이 열악하고 수돗물에서 악취가 날 때도 많아서 우리는 금정산 삼밭골에 있는 약수터 물을 들통으로 지고 나르는 것을 일과로 삼았었다. 중학교때인가 짝사랑했던 국어선생님이 결혼하고 뉴욕으로 이주하셨는데, 그때 식수가 든 통을 슈퍼에서 사 먹는다는 말같지도 않은(?) 엽서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누구나 물을 사 먹지만 그때는 그게 참 어이없는 소리였으니...
우리 동네 대부분의 집에서는 그렇게 산에 약수를 떠 먹었고, 초등학교 2학년 정도만 되면 어른들 없이 우리끼리 배낭에 물통을 지고 다녀야 했다. 주중이든 주말이든 그건 우리가 최소한 해야할 가사 분담이었다. 그렇게 약수터에 이르면 먼저 온, 동네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고, 특히 방학중에는 오랜만에 못만났던 친구들과 교류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다.
그 시절이 시간 개념을 가지고 살 때는 아니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집을 나서서 다시 돌아오는데 족히 4~5시간은 걸렸던 것 같다. 그 길을 요즘은 등산화에 스틱까지 들고 다니고들 있지만, 우린 운동화나 슬리퍼 바람으로도 잘 다녔던 것 같다.
삼밭골 골짜기 위의 능선에는 고인돌처럼 생긴 바위가 있었는데, 거길 우리만의 은신처로 만들고 당시에는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왕구슬 같은 걸 묻어두기도 했는데... 지금 그 친구들은 모두 이 세상에 없다.
가장 친했던 삼총사 중에 어쩌다가 이제 나만 남았구나.
그게 일종의 가사일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제 우리는 산에서 민달팽이(민달팽이를 잡아 인근 한약방에 가져가면 당시 마리당 50원을 줬다)를 잡아 용돈을 만들기도 하고 개구리 도롱뇽으로 하루 놀이감으로 삼기도 한, 말그대로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이제 아빠의 놀이터를 아들에게 물려주려는데, 워낙에 놀이감이 차고 넘치는 요즘 과연 우리 애들이 이 거대한 놀이터를 받아들이려 할까? 시작은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금정산의 등산로가 그렇게 많다는 건 좀더 나이가 들고 알았다. 부산대학교 쪽 등산로야 어릴 때 그렇게 뻔질나게 올랐지만, 화명동 쪽으로 오르는 방법이나 멀리 어린이대공원 쪽에서 오르는 건 나이가 들어 실제 등산을 다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알게 된 코스였고, 결혼하고 양산에 둥지를 틀면서 고당봉이나 산성마을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정하면 빙빙 둘러 가느니 차라리 집 앞에서 출발해서 능선을 타고 장군봉을 거쳐 산길로 가기도 했다.
애들 엄마랑 연애할 때는 동문에서 출발해서 양산 다방동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내려오기도 했는데, 무리한 코스에도 짜증내지 않고 잘 따라와 준 마눌님은 사실 그닥 산을 좋아하진 않았다. 이날 같이 가자고 했으나, 애초에 나와 첫째만 보내려고 작정을 했고, 우리도 그러마 하고 출발했다.
다방동 등산로 진입 바로 전에 극동 아파트 상가에서 물하고 간식을 조금 사서는 출발.
멀리 장군봉에는 저렇게 눈이 쌓여있기도 했지만, 바람도 없고 신선한 공기만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오늘은 우리 집이 가장 잘 보이는 곳, 너른 바위까지만 가기로 했다.
산의 반대쪽 경사면에서는 멀리 바다도 볼 수 있지만, 이쪽 북서쪽 경사면은 대신 낙동강을 조망할 수 있다. 낙동강 너머는 김해땅이다. 산 아래부터 낙동강까지의 땅 이름은 물금이다. 양산의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근무하는 친한 선생님왈, 물금은 이두로 논을 뜻한다고 했는데, 양산천과 낙동강이 오봉산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거대한 삼각주가 바로 이 땅이다. 물금은 두 물줄기가 옮겨 놓은 비옥한 충적토로 예로부터 농사짓기 좋은 곳이었으리라.
논이던 자리가 지금은 이렇게 매워져 거대한 아파트들이 하나씩 들어서고 있지만.
그리고 우리도 그 아파트 중 한 곳에 살고 있다.
첫째 녀석이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와 보라고 했다. 전화기 너머로 서로 손을 흔들고... 엄마는 산 중턱 바위를 찾지 못해 헤맸지만, 우리는 작은 놈을 데리고 손 흔드는 애 엄마를 볼 수 있었다. 일상의 작은 재미.
하지만 지금은 이것도 불가능하다.
불과 2년 전인데... 사진 속 새롭게 건설중인 신도시의 모습도 이제 과거가 되어 버렸다. 지금은...
아파트 사이사이 비어있는 땅들 마저 모두 아파트가 들어서서 거대한 빌딩 숲이 되어 있다. 엄마가 전화기를 들고 나와서 우리를 발견하기도 어렵지만, 우리도 이제 엄마를 찾기 힘들게 되었다.
다시 한 번 두 아들 녀석들과 산책 삼아 여길 올라 사진을 담아봐야겠다.
우리 동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비교해 보게.
아마 맞은편 오봉산 아래 모두가 아파트이겠지만.
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