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타공인 난 참 역마살이 강한 편인데다가,
어차피 내 몸을 이루고 있는 대부분의 원소들은 지구 밖에서 들어온 것들이니, 내가 바로 우주인인데 굳이 한민족이니 한반도니 하는 틀에 가둘 필요가 있냐는 적극적인 아나키스트이기도 하고,
생명체는 어차피 노마드일 수 밖에 없다는 개똥철학의 소유자...
여튼 그래서 정착에 대한 강한 애착이 별로 없는 편이다.
이 나이 먹도록 한반도에 있는 한 도시에서만 정착해서 살아왔다는 거~^^
하이난이든 어디든 사실 장소는 중요한 게 아니다. 얼마나 거기에 적합하게 내 몸을 적응시키고, 내게 굳어진 라이프 스타일 중에서 남겨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에 대해 빠르게 필터링해서 맞춰나갈 것인가의 문제 밖에 없달까?
여행기간 : 2017.11.4~12.31 (2개월)
작성일 : 2018.6.17
동행 : 홀로
여행컨셉 : 해외 파견
뭐니뭐니해도 역시 먹는 게 제일 큰 문제다.
중국은 다양한 요리로 유명하지만, 짧게 겪어 본 바로는 재료가 다양하지 요리가 그렇게 다양하지는 않은 게 아닐까 싶기도...
어딜가나 꼭 들어가는 다양한 향신료들에 적응하는 문제가 제일 힘겨웠다.
하이난의 동생들도 멀리서 온 행님이, 중국 음식에 잘 적응하지 못할까봐, 노심초사...
점심시간에 뭘 먹으러 가도 한국인들도 무난히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그렇게 발견한 식당 중에는 아예 단골집도 생겼는데, 이건 다음에 한 번 쭉 정리를 해 보기로 하고...
오늘은 일단 중국의 대표적인 향신료, 이 노마드하고 아나키한 나를 힘겹게 한^^ 놈들을 한 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고수 (샹차이, 香菜)
누가 뭐래도 중국 요리 속에 들어간 대표적인 지뢰는, 바로 고수^^
중국에선 향 좋은 채소라고 이름도 샹차이다.
중국 뿐아니라 동남아 각국에서도 두루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향신료고 우리나라에서도 나긴하는데 요리에 쓰는 경우는 별로 없다.
향이 좋은 건 인정!
마치 향수나 여성 화장품같은...
근데 먹으면... 마치 화장품을 씹어 먹는 것 같다는... ㅋㅋㅋ
어쩌다 로션을 음식에 쏟은 거지?
샹차이는 정말 적응이 안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건 주로 고명처럼 요리 끝에 날 것을 살짝 올려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음식을 주문할 때, 미리 "뿌 야오 샹차이"라고 하면 되기도 하고, 만약 말하는 걸 깜빡 잊어서 그대로 요리에 올라가 있어도 살짝 이 놈들만 덜어내면 된다. 그렇게 덜어내려고 하면 동생들이 앞다퉈 지들이 시킨 요리에 홀라당 담아버리고^^
첨엔 한 테이블에서 다른 사람이 샹차이가 든 음식을 먹는 것도 냄새때문에 거부감이 들더니 나중에는 내 음식에만 들어가지 않으면 견딜 수 있게 되었다는 게, 두 달 동안의 발전이라면 발전^^
제피 (화지아오, 花椒)
이 녀석이야 뭐^^ 전혀 거부감이 없다. 어릴때부터 워낙에 즐기던 향신료라...
바로 경상도에선 즐겨 쓰는 제피다.
어릴때 시골 외가댁에서 할머니와 산을 헤매면서 제피 열매를 따던 기억이...
딸 때는 녹색의 열매지만 응달에 잘 말리면 사진처럼 붉은 색으로 변하면서 알아서 껍질이 터진다.
물론 중국에서 이걸 요리에 쓰는 방식에는 차이점이 있다.
경상도 사람들은 주로 이 작은 열매를 말려서 중간에 검은 씨앗은 따로 빼고 빻아서 기름을 모아서 호롱불 연료로 쓰거나 머릿기름으로 바르고(모기 쫒는데 도움이 된다^^), 붉은 색 껍질만 가루를 내어서 주로 쓴다.
주로 산초가루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 산초는 나무나 잎, 심지어 열매도 거의 제피와 비슷하지만 향이 없는 식물이고 먹지도 않는다. 그냥 기름만 낸다. 제피는 은행처럼 암그루, 숫그루가 따로 있는 나무인데, 암수 구분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냥 열매만 취하면 되니까, 시골 우리동네에선 집집마다 우물가나 마당에 제피나무 한 그루 정도는 심어놓고 있는 집들이 많았다.
주로 매운탕이나 추어탕처럼 생선 탕 요리에 쓰인다고 알고 있지만, 김장을 하거나 나물을 무칠 때 등 거의 대부분의 요리에 다 사용한다.
중국에선 제피가루를 쓰지 않고 그냥 열매를 통으로 사용한다. 훠궈나 마라탕에 들어간 작고 동글동글한 비비탄 같은 것들이 바로 제피!
이렇게 하면, 가루로 쓰는 것 보다는 덜 매울 것 같지만... 아니다. 워낙 많이 넣기때문에 맵다. 맵다기보다는 얼얼하다는 게 정확하겠지? 입안을 마비시키는 듯한 맛을 낸다. 비린 음식맛을 싹 잡아주는 훌륭한 향신료... 물론 경상도 사람들에겐^^
팔각 (빠지아오, 八角)
아, 중국요리집?
국내에 있을 때도 중국요리집에서만 나는 특유의 향은 바로 이녀석이 내는 향이다.
열매의 생긴 모양이 8개의 뽀족한 첨단이 있는 별모양의 껍질속에 둥근 씨앗이 있어서 이름도 팔각.
숙소의 싱크대 위에 늘 놓여 있던 놈이다.
샹차이만큼은 아니지만 이 녀석도 적응이 쉽지는 않았다. 많이 사용하면 거부감도 큰데, 적당량(중국인들 기준이 아니라^^)만 쓰면 먹을 만하긴 하다.
주로 음식에서 거부감이 생기는 것보다는, 이걸 오랫동안 사용한 식당으로 들어가는데 거부감이 크다는...
식당 안에 켜켜이 베어있는 이 녀석의 향이 식당으로 들어가는 것 자체를 힘겹게 한다.
후각세포들은 금새 피로해져서 동일한 향이 반복되면 그걸 두뇌로 굳이 보내지 않는다는 인체의 신비~ 이게 없다면 정말 우리의 삶은 고통 그 자체일텐데... 참 고마운 거지^^
월계수 잎
몇 년째 집에서 아빠의 요리하면 어련히,
"알리오올리오 파스타"로 알고 있을 정도로 심취해 있다. 바짝 말린 이 녀석이 우리집에도 한 봉지 있다는 뜻^^
연애할 때 처음으로 이 녀석이 들어간 스파게티를 먹고는... 이런 맛이 뭐가 좋다고... 그냥 잔치국수나 먹으러 가지 했던 기억이 ㅋㅋㅋ
적응에 그렇게 힘들지 않은 향이라서 이제는 이걸 넣지 않은 파스타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익숙해 진 향이다.
하이난에 있는 동안 늘 동생들이 해 주는 요리들(자주는 아니지만 휴일에 한 번씩 진수성찬을 차려줬던 동생들. 오랜 자취의 경험으로 다들 한 요리 했었다^^)만 받아 먹기 미안해서 자신있는 알리오올리오를 한 번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중간에 잠시 집에 다녀오면서 파스타면을 사갔다.(면요리의 나라 중국에서 유독 파스타면 구하기는 어렵더라는...)
올리브유는 큰 마트에서도 팔았는데, 올리브잎은 식재료를 파는 어느 구멍가게라도 잔뜩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도 많이 사용하는 향신료다.
정말 맛있었는지, 그런 척 해준 건지는 모르지만 순식간에 동이 나버릴 정도로 알리오올리오가 인기가 좋기는 했다는...
황수자오(노란고추) / 뚜어라자오(빨간고추)
하이난에서 생긴 첫 번째 단골 식당에 늘 마련되어 있던 일종의 고추장
그렇다고 우리의 쌀고추장과는 전혀 다르다.
붉은 땡초를 잘게 썰거나 대충 빻아 재워두고, 살짝 발효를 시켜서 신맛이 같이 나도록 한 건데, 너무너무 매운 맛이지만 이게 금새 적응이 되고... 어느새 밥도둑이 되더라는... ㅋㅋㅋ
쌀국수에 넣어서 먹으면 그만인데, 통에 넣어서 파는 녀석들은 대부분 이렇지만, 식당에서 직접 담궈서 내 놓는 것들 중에는 고추를 굵직하게 썬 녀석도 있다. 노란색의 황수자오는 하이난에서 주로 먹는 하이난식 뚜어라자오란다.
대륙에선 노란 고추가 귀하다고... 두 가지의 맛 차이는 잘 모르겠지만^^
대표적으로 접한 이들 몇 가지 향신료 외에도 중국에서 사용하는 향신료의 종류는 정말 많다.
왜 그럴까?
기름진 걸 많이 즐기기도 하고, 물이 우리나라만큼 좋지 않기 때문에 재료 본연의 맛이나 그냥 담담한 국물맛보다는 그 모든 걸 덮어버릴 만큼 강한 향과 맛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담백하게 재료 특유의 맛과 향을 살리는 요리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보양식에 가까운 것들이고, 일반적으로 즐기는 요리들은 모두 강하다.
그래도 살아 볼꺼라고^^ 어떻게든 적응을 하거나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긴 한 듯.
그래 역시 난 노마드 체질인 거지^^
우주인이 이 정도의 식문화 차이 정도야 뭐... ㅋㅋㅋ
라고 하면서도 처음 며칠간은 설사와 복통으로 고생을 좀 했다는... 너무 매운 걸 먹으면 속도 탈이 나니까 짧은 중국여행시 탈수증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되도록 담담하게 요리를 즐기는 것도 방법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