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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 Mar 22. 2019

발리-대만 대가족 여행 23> 마린파크2_위대한 왕

2018.1.9


발리에는 몇 개의 동물원이 있다고 들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최근 개장했고, 사파리가 잘 되어 있다고 평가받는 '마린파크'.

지난 포스팅에서도 말했지만, 마린파크는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시간과 공연을 하는 시간을 잘 살펴보고 동선을 구상하면 좋다.

사실 스케줄을 잘 몰라도 상관은 없다. 메인 공연들이 어차피 이런 탐방객들의 이동시간을 고려해서 분산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첫번째 '애니멀쇼'를 마치고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면 되니까.


사파리가 메인이겠지만, 머시마 둘과 함께 하는 우리가족들에겐 "호랑이쇼"가 어쩌면 하이라이트~










여행기간 : 2018.1.4~1.13

작성일 : 2019.3.17

동행 : 대가족 3대, 11명

여행컨셉 : 가족 여행








정말 그 많은 애니멀쇼 관객들이 마치 단체 관광이라도 온 것처럼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우리도 그저 따라간다.

그렇게 가다보면 갑자기 정체구간이 생기는데, 갑자기 좁아지는 길가 물웅덩이 안에서 귀여운 어린 코끼리가 사람들의 걸음을 멈추게 한다.


하루종일 먹어야만 한다는 초식동물 코끼리...

바나나 한 손을 들고 하나씩 뜯어서 주는 아줌마가 참 얄미운듯^^




거대한 야생동물을 한꺼번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가 동물원이라는 산업을 만들어 냈으리라...

그들이 고향에서 자유롭게 사는 게 제일 좋겠지만, 동물원을 일시에 없앨 수야 있겠나. 가능하면 여기서도 고향에서처럼 스트레스 없이 살 수 있게 최선을 다해주는 것 정도가 박애주의.

덕분에 우리 애들은 생활공간에선 결코 만날 길 난망한 거대 야생동물을 원 없이 만난다. 더구나 애기코끼리...




자, 드디어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이곳에는 가장 좋은 자리를 피해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알고보니 저 노란 시트는 약간 가격이 높은 티켓을 구매한 사람들을 위한 좌석이라고... 음...

아쉽지만... 뭐^^




발리는 사시사철 참 덥다. 1월의 한겨울도 마찬가지. 객석에는 띄엄띄엄 거대한 선풍기가 쉴 새없이 돌아간다.




공연장이라기 보다는 그냥 어느 리조트 앞마당 같은 느낌이다. 잔디가 쭉 깔려있고 가운데 풀이 있다. 풀 전면은 유리로 되어있어 호랑이가 수영을 하면 그 모습을 다 볼수 있도록 해 두었다는...




이번엔 전통 복장은 입는 분이 또 한번 유창한 영어로만^^ 인사를 건네며 쇼가 시작된다.




잔디밭 뒤쪽 절벽과 폭포로 꾸며놓은 곳에서 왕족의 행렬이 시작된다.

말하자면 아까 동물쇼와는 달리 "사극"이다. 역사적 배경이 있고, 극적 스토리가 나름 탄탄하다는 뜻 ㅋㅋㅋ




그러니까 '롱롱 타임 어고~'로 시작하는...




시대적 설명이 끝나고, 당시 신성시한  숲속의 호랑이를 정성스레 돌봤었다는...




여튼 스토리는 몰라도 우리 꼬맹이들은 저 멋진 뱅골호랑이와 친하게 지내는 아저씨를 마냥 부러워하는...




호랑이들이 여기저기서 등퇴장을 한다.


고등학교 국어선생님 중에  별명이 "대뽀법"이라는 분이 계셨다. 문학적 수사법 중에서 한창 비유, 은유, 상징, 광장 등을 외우고 있을 때였는데, 이 분이 완전 이야기꾼이다. 과장의 대가라는 말. 부산 사투리로 '대뽀'를 워낙 잘 쳐서 별명 조차... 서울 태생인 샘이 당신의 별명이 무슨 뜻인지를 알았을 때 그닥 부정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10대의 끝을 잡고, 나름 세상 다 안다 생각하는 50명의 머시마들이 숨소리도 못내게 혼을 쫙 빨아들이던 이야기들...

그 중에서 압권은 바로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만주 호랑이와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공생에 대한 독특한 시각 '위대한 왕' (생각해보면 인본주의가 아닌 좀 다른 세계관, 내가 가진 아나키한 사고방식은 이때부터 성장한 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백두산 호랑이에게 아버지를 잃은 호랑이사냥꾼의 이야기...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겨?'


어린 시절 우리들의 궁금증 1, 2번에 속했던...  

선생님은 호랑이와 사자가 만날 일이 없어서 그렇지 호랑이는 사자를 적으로도 생각하지 않을 거라고 단언했다.

호랑이는 사자와 비교되는 것 조차 자존심 상하는 존재다.

먹고 살기 위해 노동(사냥)하는, 혼자서는 잘 안돼서 집단으로 사냥하는, 그것도 수컷들은 탱자탱자하면서 암컷들이 벌어다 주는 것만 독식하는 사자와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라는 것.


호랑이는 철저하게 독고다이다. 적어도 만주호랑이는.

그들은 단순히 생명연장을 위해 오늘도 먹이를 찾는 게 아니다. 인간을 비롯 다른 동물들은 호랑이가 가진 가공할 힘과 잔인함에 벌벌 떨지만, 그가 책임지고 자신의 땅을 관리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세계 속에서 삶을 영위하기도 한다. 자신이 세운 질서를 파괴하는 걸 용납하지 않을 뿐, 그리고 그 형벌은 무자비하다.

어느날 갑자기 철도가 부설되고 해괴하게 생긴, 그것도 아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속도를 내는 쇠로 된 거대 짐승은 자신이 목숨처럼 여기는 질서를 훼손하는 존재. 호랑이들이 달리는 열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천상천하 지존이 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선택지라는 것.

웅크린 상태에서 십 여 미터를 점프해서 덮칠 수 있는 탄력과 그랜드 피아노도 한 손으로 내리쳐 주저앉히는 가공할 파워.

소설 속에서, 쿨리 하나가 죄를 지어 벌로 밧줄에 묶여 나무에 걸린 건, 왕이 집행해 주길 바라는 처형법이다.

사자들은 여럿이 달려 들어 먹이감을 물고 과출혈로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왕은 쿨리를 점프로 덮친다. 압사다. 내리치는 발에 내장이 파열되어 버린다.

'위대한 왕'에서 주인공 격인 존경받은 쿨리 노인은 어느날 숲을 걷다 왕과 마추친 적이 있다. 왕과 오랜시간 눈을 마주친 그는 왕의 눈에서 살기가 가실 때까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산에서 왕을 만난다는 건, 살면서 지은 죄를 더 이상 묵과하지 않겠다는 왕이 재판을 치르는 과정이다. 마치 내면을 꿰뚫어보는 듯한 그의 눈은 이 인간을 처벌해야 할 대상인지, 못 본 척해야 할 대상인지를 살핀 후 유유히 사라져 버린다.



한편, 호랑이 가죽을 팔아 생계를 꾸리는 호랑이 사냥꾼들이 쓰던 총은 단발식이다. 한 번 실패하면 죽음. 최상의 가죽은 몸에 총알구멍이 없어야 한다. 최고의 사냥꾼은 이마에 단 하나의 구멍만 만들어 낸다.

호랑이는 모습을 쉬 드러내지 않지만, 어느날 밤 눈내리는 숲에서 저 멀리 호랑이와 눈이 마주칠 때가 있다. 총을 어깨에 걸친 사냥꾼은 숨도 쉬지 않고 시선도 피할 수 없다.

가죽을 얻기 위해 사냥꾼은 호랑이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속도로 어깨에서 총을 빼내 총구를 겨눈다. 이 모든 과정은 수 시간을 필요로 한단다.

(왜 별명이 '대뽀법'이겠나^^)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은 느리게 할 수 없다. 이때 초보들은 호랑이의 이마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지만, 그 손가락의 움직임과 동시에 점프해서 덮치는 호랑이. 총알이 복부나 다른 곳에 박히면 죽은 목숨이다. 무조건 두개골을 관통해야 한다. 고수들은 호랑이의 머리위 허공을 향해 쏜다. 그들이 점프해서 뛰어 오르는 것까지 계산한다는...

(대뽀도 이런 대뽀가...)

호랑이에게 아버지를 잃은 사냥꾼은 아버지를 잔인하게 앗아간 호랑이와의 밤샘 눈싸움을 끝내고 마침내 총구를 들이미는 동작까지 완료했다. 그리고 고수의 조언을 따라 허공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총구의 강한 반동, 순간 잠시 눈을 깜빡인 것도 같다. 없다. 시야에 호랑이가 없다.  

순간 뭔가 하늘에서 자신을 향해 덮쳐오는 검은 그림자.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초점없이 멍한 눈으로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이 산의 주인 머리, 몰아쉬는 가뿐 숨과 비릿한 피냄새가 그의 얼굴에 마꾸 뿌려진다. 뜨거운 콧김과 더 뜨거운 피가 눈으로도 들어온다. 겨우 육중한 털뭉치를 밀쳐내고 빠져나올 때쯤 총성을 듣고 뛰어오는 동료들의 발소리가 기억속으로 아련하게 흐려진다.


캬~. 군사문화가 야만을 만들던 시대, 짐승 같은 본능으로 똘똘 뭉친 사고뭉치 10대 고딩들에게...

문학이 어떤 존재일 수 있는지를 해설해주고 호랑이 팬덤 현상을 만들어 냈던 국어선생님은,

지금도 또 다른 10대들의 정서 속에 세계와 멋지게 교감하는 놀라운 방법을 설파하고 계실까? 이젠 벌써 은퇴하셨겠지?   


우리 애들이 더 어렸을 때, 한번은 선생님 흉내를 내며, 위의 얘길 들려준 적이 있다.

우리 셋이 꼭 야생의 호랑이를 만나러 가자는 약속을 했지만, 오늘은 이렇게 안전한 방법 정도로 만족하는 걸로 ㅋㅋㅋ




그래서일까?

저 호랑이가 먹이를 쫒아 보기좋게 물속으로 다이빙하는 쇼에서 비애를 느꼈다는...

내 마음 속 위대한 왕이 돈벌이를 위해 저렇게까지 전락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는...

동물원이라는 시설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더 근본적인 비애다.


우린 어쩌다가 존엄성이 말살되고 전설이 파괴되고 상징이 무너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대뽀법'은 우리들에게 마음속에 상징과 레전드와 존엄을 가지고 살길 바라셨던 것 같다.

고작 "보이스, 비 앱비셔스" 따위가 아니라...




그래 어쩌면 뱅골호랑이의 삶의 환경과 만주의 환경은 다르니까.

여긴 존엄하기엔 너무 날씨가 좋아^^, 어쩌면 먹을 것도 더 쉽게 구할 수 있고. 난 다시 우리 애들에게 존엄성과 상징의 시대가 아직 건재함을 얘길해 줘야할 의무가 있으니까...




조용한 마을과 호랑이가 평화롭게 살기위해




신이 어떤 축복을 내렸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르겠지만,

그들도 신을 통해 계속해서 존엄성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그래도 다행인 건, 마린파크가 이 꼬맹들에게 꽤나 인상 깊었나 보나.

큰 놈은 저 티켓을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 한 달이 넘도록 달고 살았다는...

다 해져서 녹색조차 잘 보이지 않을때까지...

뭔가를 잃지는 않았을 지 걱정하는 것도 어른의 쓸데없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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