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지리산 2_중산리 코스

2014.2.15

by 조운

여행기간 : 2014.2.14 - 2.15
작성일 : 2014.2.20
동행 : 사무실 후배들과
여행컨셉 : 백패킹






전전반측하다가 아마 2시쯤 어스름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가끔 옆에서 자던 후배놈의 인기척과 반대쪽 청년의 인기척, 그리고 내 자리 천장 바로 위에서 여자 후배들이 전전반측하면서 삐걱대는 마루판 소리로, 다들 고통스럽구나 하는 동질감을 확인하면서. 왜 이런데서는 코에 증기기관을 이식하신 분들이 꼭 한명씩 있는 걸까.
산장의 모든 사람과 함께 밤새 코를 골았던 아저씨도 힘들었으리라.

누군가 깨웠다.


"4신데요. 행님"


image_1888801651477874675414.jpg?type=w773

정신을 차리는데 수분이 걸리긴 했지만, 다들 제법 빠르게 움직여서 식당에서는 벌써 코펠에 물이 끓기 시작했다.
밤새 코 골던 아저씨와 아내분은 우리보다 먼저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는 다시 자러 들어갔다.
“어두븐데 일찍 올라가면 뭐하노?”
어차피 천왕봉에서 일출보기는 하늘의 별따기니 환할 때 눈요기라도 하며 올라가자는 심산이었겠지만, 밤새 대피소 25명을 뜬 눈으로 지새게 한 사람의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는 말과 행동에 약간 부아가 치민 건 나만이 아니었으리라.
종주 중이라던 총각의 싸늘한 눈빛은 아저씨 대신 내가 봤는데, 아저씨가 안보길 잘했다. 아저씨의 코골이야 미필적 고의 정도로 여기면 될 터. 부아가 인 건 잠깐이고, 금새 새로운 날이 줄 설레임과 기대에 맘을 다 뺏겼다.


IMG_8004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IMG_8005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산에서 마시면 취하지 않는다는 이상한 진리(100% 경험)는 단지 마음 가짐의 문제인지, 실제 산기운을 받아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간밤에 마신 술로 인한 숙취는 전혀 없었다.
원래 계획은 간단하게 소세지를 데우고 꿀차를 나눠마시고 난 뒤 4시 30분 정도에는 바로 출발하려고 했는데, 어제 마셨던 "달빛 커피"의 향이 잊히지가 않아서, 커피를 내려서는 보온병에 한 가득 담고, 소세지에다가 저녁밥 남은 것도 누룽지탕처럼 끓였다.
기온이 하도 차니, 물이 끓는데 시간 소비가 많았다. 덕분에 5시가 약간 넘어서 출발할 수 있었지만 배는 든든했다.


IMG_8010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image_230190651477874485998.jpg?type=w773

사위는 아직 완연한 밤.
어젯밤 소주잔에 들어간, 진주시 위로 떠올랐던 보름달이 반대쪽 산에 거의 닿을 듯 걸려있고 동쪽에서는 효성이 너무도 또렷하게 방향을 지시해 주고 있어서, 꼭두새벽임에도 구름 한 점 없다는 것을 알게 했다.


image_6209799011477874462259.jpg?type=w773


'이러다 정말 일출을 만나는 거 아냐?'


지리산에서 칠선계곡 다음으로 험하다는 로타리산장부터 천왕봉코스는 기온도 차고 지난 번 왔을 때보다 눈도 조금 더 쌓여서 온통 하얬다.
어제 중산리~로타리 코스와는 사뭇 달랐다.
그곳은 설경속에서도 등산로만은 흙탕으로 질척였는데, 여기는 눈밭에 앞사람들이 낸 흰 발자국만 어지러히 패여 있었고 바위나 돌밭에는 그 흔적도 안보여서 자칫 길을 잃지는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천왕봉까지의 길은 외길이라 그나마 다행.

바람 한 점 없는 곳에서 몰아쉬는 우리들의 숨소리나 눈위에서 등산화가 만들어 내는 “뽀드득” 소리 외에는 정적막 고요.
밀도 높은 고요속으로 한걸음씩 들어갔다.



#3. 내 빛이 너무 밝으면, 주위가 안보인다.

IMG_5263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IMG_5267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얼만 지나지 않아, 순간적으로 현기증이 일었다.
헤드랜턴이 비추는 눈밭의 잔상이 눈에 심하게 박히면서 너무 밝게 느껴지더니, 상대적으로 주위가 오히려 캄캄해지고 발 디디는 느낌마저 아득해지고 있었다. 어제 배낭보다는 좀 가벼워진 것 같은데, 갑자기 천근만근이다. 굽이를 돌때마다 한 쪽은 낭떠러진데, 순간 정신을 잃으면…
아찔했다. 이대로라면 중심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IMG_5284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랜턴을 껐다. 검기만 했던 하늘 동쪽이 다른 곳보다 조금 밝아보이기도 했고, 달빛과 흰 눈으로 그렇게 시야가 어둡지는 않았고 현기증 증세도 좀 가라앉았다. 그래도 한참동안 랜턴의 잔상이 괴롭혔다. 괜히 맨 뒤에 쳐져있는 후배 핑계를 대고 좀 쉬었다.
그렇게 자주 몇 번을 쉬고 나니까 몸이 좀 돌아왔다. 애들 앞에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내 빛이 너무 밝아 주위가 안보인다.’

당연하지만 놓치고 사는 진리를 이 먼 곳에서 경험하다니.
가끔 독단과 독선 속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어쩌면 내 빛이 정말 가장 밝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빛때문에 주위를 못 본다.
결국 난 내 빛 때문에 한걸음도 갈 수 없게 되고 만다.
오히려 내 빛을 꺼버리면서 주위에 약하지만 빛들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그 빛들이 만들어 보여주는 길 덕분에 내 상황을 돌아보게 만든다. 오히려 그 약한 빛이 내 갈 길을 보여준다.
어쩌면 내 입장에서 내 빛이 가장 밝아 보일 뿐, 주의의 그 빛들은 결코 약하거나 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혹시 후배들에게 난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IMG_2828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좀 쉬었다 가요."

생각과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딛을 안전한 위치에만 집중하던 ‘자신으로의 여행’이 다시 ‘밖’으로의 여행으로 이어지게 해 주는 날카로운 외침이 들렸다.




#4. 개천

IMG_2827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그렇게 끝이 없을 것 같은 계단들을 몇 차례 오르고 굽이를 넘고 넘다보니 어느덧 개천문이다. 여기까지는 속계고 이제부터는 선계라는 일종의 관문이라 했다.
거대한 촛대 바위 두 개가 일주문 기둥처럼 나란히 서서는 한 명씩만 지날 수 있는 길목을 만들고 있다.
해발 1,670미터 지점. 중산리 출발점에서 수직으로 1,000미터나 올라 온 곳이다. 최소한 속계를 벗어나려면 이정도는 올라야 한다는 뜻 같다.
어지럼증과 함께 갑자기 눈이 어두워진 것은 내게 탈속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깨닭게 해 준 걸까?
이런 고통을 준다해도 탈속이 힘들여 걷기만 해도 가능하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선계로 들어서서도 우리는, 아니 나는 마음속의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이번에는 정말 일출을 보고 싶다는 강한 욕심. 그래도 최소한 온전히 내 몸의 힘으로 정직하게 한 걸음씩 옮길 수 밖에 없는 욕심이기에 선계로 들어서는 것이 미안하거나 부끄럽지만은 않았다.


IMG_2835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이제 2~300미터 정도의 고도만 오르면 정상이다.
근데 정말 마지막은 기어올라야 할 정도였다.
우리 식구들의 간격도 점점 벌어졌다. 속도를 조절하면서 처지는 사람이 없도록 가야했다.
그렇게 뒤를 돌아볼 때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동쪽 하늘은 시시각각 새롭게 장관을 만들고 있었다.


IMG_2837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어쩔때 그 장관을 등에 지고 힘겨운 걸음을 옮기는 후배들 4명의 실루엣이 커다란 칵테일 잔에 담긴 상큼한 과일 같아 보였다. 하늘은 현란한 빛을 뿜었다. 어떻게 저런 색이 가능하지 싶은 색이 일대에 막힐 것도 없이 넓은 화각으로 눈에 박혔다.
박히는 대로 그대로 두고 싶은 욕구와 천왕봉에서 일출의 순간을 맞이하고 싶다는 욕구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행복한 순간이었다.





#5. 신비로운 천왕샘

IMG_5302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어느덧 천왕샘.
울릉도의 성인봉 바로 아래 성인샘처럼, 천성산 바로 아래 법기샘처럼 정상 바로 아래의 샘이다.
신기하기만 하다. 아마도 용천수이리라.
이 겨울 천왕샘엔 꽁꽁 얼어붙은 거대한 고드름만 있었지만, 이런 화강암으로만 이뤄진 산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신비로운 샘물들이 우리 산하의 특징이고, 우리땅 자연이 가진 놀라움이라 여기며, 새삼 선민의식같은 것도 생겼다.
늘 보던 산하라 익숙하지만, 실상 낙동강처럼 넓은 모래강은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현상이다. 화강암이 풍화를 겪고 흘러흘러 강모래가 되어 해운대까지...
지금 이 바위들은 그 낙동강 줄기인 남강으로 가기 전의 생애를 정상 인근에서 보내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

이제 멀리 준봉들이 모두 발 아래 보인다.
지리산은 산자락이 겹겹이 이루어진 독특한 모양새의 산이다. 안개가 낀 날에는 GPS가 없으면 도대체 내가 지구상에서, 한반도에서, 지리산에서 어디쯤 있는 건지 조차 파악하기 힘들 정도다.
그러니 빨치산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 테고, 백제와 신라의 영토분쟁에서 그나마 비켜갈 수 있던 곳 아니었을까?
애들한테는 산세가 만개한 장미꽃잎 같다고 했지만, 실은 어머니 자궁 속 같았다. 산을 어머니에 비유하고, 산세 좋은 최고의 명당 자리에 적멸보궁이라 이름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유 아닐까?
아마도 자궁의 ‘궁’도 '궁궐 궁'자겠지? 산의 주름들을 법계사를 둘러싼 어머니 자궁의 주름에 견주고 법계사를 적멸보궁이라 칭한 것도 그런 이유이리라.


IMG_5303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마지막 너덜바위 구간이 나타났다.
완전 까꾸막인데 동쪽 하늘에서는 언제라도 해가 쑥 올라 올 것같은 임계 상황이다. 혹시 이러다가 제주도 성산일출봉에서처럼 정작 일출의 순간을 또 놓치는 건 아닐까 하는, 이게 혹시 에스테반에 이은 또 다른 징크스가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나도 죽을 것 같았지만, 계속 ‘화이팅’을 외쳤다.
계속 맨 뒤로 쳐졌던 후배 녀석은 힘들어하는 표정을 지을 근육도 움직이지 않는지, 멍한 얼굴로 서서 자꾸 가야할 정상 쪽만 쳐다본다.




#6. 지리산에서 귤빛 첫 해를 만나다

"가자~아!"


저 앞에 천왕봉 표지석이 보인다.
사실 표지석은 사람들에 가려서 잘 안보이고 마치 남극 팽귄들처럼 오글오글 모여서 동쪽 하늘만 바라기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추위와 바람에 떨고 있었다.
천왕봉 전까지는 거의 바람이 없다가 딱 천왕봉에 오르면 북풍을 온 몸으로 받아야 해서 서 있기조차 힘들 수 있다 했다.
산의 변화무상함이 바다의 그것보다 더 할 수 있음이다.
‘인자요산'은 산의 수많은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책상물림이 남긴 고사성어가 아닐까? 물론 산의 범주를 흙이 있는 땅에만 둘 건지, 그 위의 공기와 기운까지 둘 건지에 따라 다르겠지만…

천왕봉 표지석을 10미터 정도 앞에 두고 휙 돌아보았다. 아직 햇님이 보이지는 않는다.
순간 예의 그 팽귄 중 한 분이 “뜬다”하고 소리쳤다.


IMG_8027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IMG_2839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IMG_2838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일제히 핸드폰을 눌러대고… 팽귄 사회에 일대 파란이 일었다.
순간적으로 돌아 본 동쪽 하늘 가장 먼 곳에서 일자로 쫙 찢어진 붉은 기운 중심에서 손톱 자국 같은 밝은 점이 보인다.
“얘들아 뜬다.”
그 손톱 자국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다.


IMG_8028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IMG_8036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맨 뒤에 오르던 후배는 이제 막 마지막 철계단을 오르는 중이고 다른 놈들은 이미 손가락질 하는 곳으로 고개가 돌아간 상태다.


IMG_5310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이럴수가.
3대가 덕을... 운운하는 것은 과하더라도 지리산의 일출은 1년에 몇 번 보기 힘든 광경이라는데, 맑은 얼굴 이렇게 또렷하게 보여주다니.
꼼짝않고 응시해도 하나도 눈이 아프지 않은 게, 마치 이제 처음 태어난 것 같은 아기 손가락 같은 해가 순식간에 형태를 갖추더니, 마지막 순간 땅끝에서 딱 튕겨 올라서서 공중으로 떠올라버렸다.
출산의 순간을 지켜보는 증인들처럼 모두가 그 순간 숨죽여 바라 본다. 이 엄청난 광경을 감히 글로 옮길 재간이 없다. 그냥 가슴이 벙글벙글할 뿐.


IMG_2839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추운 정상에서 1시간을 기다렸거나 우리처럼 도착 순간에 일출을 맞이 했거나, 그 자리에 모였던 모두에게 이날의 기억은 잊혀지지 않을거다. 정확한 얼굴로 기억되지는 않더라도 평생 잊히지 않을 마음 속 사진에서 각자가 각자에게 보조출연 정도는 하고 있으리라.
지금은 각지로 흩어져 일상으로 돌아간 그들의 뇌간 어디 쯤에 펭귄의 일부로, 같은 희열을 맛봤던, 첫 햇살의 붉은 기운을 받아 벌겋게 환하던, 그 얼굴로 기억되는 사람 중 하나로 존재하게 되는 거다. 생각으로도 마음이 밝아진다.


IMG_2841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7. 선경 속을 걷다

image_1606486811477874462263.jpg?type=w773


image_9603061061477874462264.jpg?type=w773

몇 장의 사진촬영을 하고 느닷없는 추위와 강풍으로 하산길을 재촉해야 했다.
온통 귤빛이다.
사진 속 후배들은 모두 귤빛 얼굴을 하고 있다.


IMG_2858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동쪽 하늘만 맑은 게 아니라 온통 구름 한 점 없다.
북쪽 백두대간으로 쭉 이어진 산자락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
왼쪽으로는 오르면서 보았던 준봉들과 진주시, 사천시가 저멀리 한 눈이었고, 오르쪽 첩첩 산들은 아마 백운산이리라.
소설 태백산맥에 나왔던 그 산자락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광경. 여기가 그 소설의 무대구나.
여기가 한때 뜨거운 가슴을 안고 살다 간 이들이 마지막으로 자신을 불 살랐던 곳이구나.


IMG_2854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IMG_5345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장터목까지는 거의 평이한 능선길이다.
말하자면 백두산에서 내려오는 준봉들의 긴 마루금 길의 끝부분이다.
고사목에 핀 상고대를 볼 수는 없어 아쉬웠지만, 구상나무에 그득그득 쌓인 눈들이 만들어 내는 장대한 설경은 원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북쪽으로는 가지를 만들지 않는 나무들, 능선의 낮은 구상나무 군락들.
주어진 환경을 탓하지 않고 이겨내고 적응하려는 생명들의 노력은 내 나약함에 심하게 자극을 준다.

다시 만나기 힘든 선경 속은 걸어도 걸어도 질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길이 처음도 아닌데 왜?
같은 곳도 올 때마다 다른 빛깔을 하고 있구나.
빛이 다르고 계절이 다르고, 같이 오르는 사람들이 다르구나.
무엇보다 그 동안의 내가 달라졌겠구나.

촬영시에 고려해야 할 윤리적인 책임들은 많다.
남의 아픔을 접해도 더 좋은 각도에서 잡아내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카메라들끼리의 경쟁같은 주제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담는 이 그림이 진실에 더 가까워야만 한다는 윤리의식은 늘 잊어서는 안된다.
최종적으로 그 샷이 주는 느낌은 빛의 각도나 포지션, 앵글, 샷의 크기 등 내가 주관적으로 취사 선택하는 것에 따라서 전혀 다른 인상을 줄 수도 있다.
무섭다.
그래서 안일하게 카메라를 들면 안된다.
몇 번이고 머리속으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정해야 한다. 같은 길을 가도 이렇게나 다른 느낌과 경관을 보여주는 대상들을 만날 때마다 촬영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육체의 피로나 정신적인 느슨함이 왔을 때 찍은 그림은 표가 난다.
더 프로패셔널한 카메라가 되려면 장비가 아니라 내가 늘 새것처럼 살아있어야 하겠다.

짧은 순간 머리 속에 떠오른 이 모든 생각들을 입으로 꺼냈다면, 난 정말 수다쟁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을 거다.


image_7175529941477874462266.jpg?type=w773

이런저런 생각과 사진찍기 놀이로 시간을 좀 지체하고 9시가 되어서야 장터목 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었다.


IMG_5355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예의 그 커피도 빠트리지 않고...


image_405046411477876654179.jpg?type=w773

장터목에서 내린 커피는 하산길 중간 중간 우리의 낭만에 정점을 찍어줬다.


IMG_2880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이제 6킬로의 내리막 길만 가면 이번 여행도 끝이다.
오를 때는 그렇게 힘겨워하던 예의 그 후배가 내리막에서는 날아다녔다.


IMG_2902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오히려 어제까지는 긴장 속에서 꿋꿋하던 여자 후배 한 놈은 과묵해졌고 시선은 가끔 초점을 잃기도 했다. 결국 뒤로 처지더니 자기 아이젠에 걸려 앞으로 넘어지기까지 하고… 다행이 다친데는 없었다.
대신 미끄러움에 대한 공포로 거의 엉덩이를 깔고 내려오긴 했다.


IMG_5376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IMG_2896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IMG_2904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첫 지리산 산행에서 그렇게 맑은 해와 끝없이 펼쳐진 능선을 오롯히 눈에 담을 수 있었던 행운아들은 사실 그냥 힘들어 죽을 것 같은 저질 체력의 소유자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데려 오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본인들은 처음이자 마지막 지리산행이라고 선언했지만. 난 그말을 믿지 않는다.


IMG_2914_Wide1080Watermark.jpg?type=w773


image_5984843891477874462273.jpg?type=w773

다시 발 밑이 질척거리기 시작하고 어느새 중산리 입구까지 와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산을 벗어나기 전에 중산리 계곡물에 발을 담궜다.


IMG_5397_%EB%B3%B4%EC%A0%95%EC%9B%90%EB%B3%B8_Wide1080_Watermark.jpg?type=w773


image_5991912501477877053031.jpg?type=w773


image_2915277561477877056169.jpg?type=w773

채 10초를 담글 수 없는 차가운 물로 지리산과의 이틀에 대한 석별의 정을 나눴다. 심신의 피로도 다 계곡물에 흘려보내고는 기다리는 일상으로 유턴.
백미러로 언뜻 보이는 하얀 천왕봉이 아쉬워하고 있었다. 분명했다.
‘걱정마라. 다시 오마’
우리끼리 뒷풀이도 못하고 헤어졌다. 분명 뒷풀이를 했다면 이런 얘길 했을 것 같다.

‘여행 가기 전의 나와 갔다 온 나는 같은 내가 아니다. 만약 같다면 여행 갈 이유가 없다.’





#8. 그대, 종주를 꿈꾸는가?

마눌님은 원순 아재 팬이다. 그래서 ‘희망을 걷다’라는 책을 빌려왔다.
난 그닥 눈여겨 보지 않다가 지리산에 갔다 온 당일 짐 정리를 하다가 식탁에 있는 책 표지를 보았다.
부재 ‘박원순의 백두대간 종주기’.
며칠째 들고 다닌다. 사무실이고 집이고 책 읽을 시간이 없는 내겐 출퇴근 지하철이 도서관이다.
책이 읽고 싶어서 빨리 지하철을 타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재밌다.
지금 원순씨는 경북 봉화군에 막 들어섰다. 몇 년 전 원순 아재가 갔던 연속 종주길에 내 맘도 완전히 동참하고 있다.


'백두대간 연속종주'
버켓리스트에 제법 상위 랭크되고 말았다.
어제는 마눌님한테 ‘백두대간 종주하고 싶다.’ 했더니 힐끗 내쪽을 보고는 무심한듯 한 마디 한다.

“그럴거라 생각했어."

뭐 당연한 거 아닌가?
늘 정부의 통제가 없는 세상, 국가라는 틀 너머의 사회에서 살기를 원했는데, 이런 아나키를 지향한 내가 태어난 곳이 이런 나라 같지도 않은 나라였다니.
신정국가라 칭할만한 나라에서 살면서도 나라의 정체성을 이제 조금 알게된 요즘 더욱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아니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무슨 낙으로 사나?
그나마 금수강산이라도 누리면서 살아야지. 산에 한 번 안가고 바다에 한 번 안 뛰어들거면서 여기 왜 살지?"




_끝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지리산 1_중산리 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