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킹의 성지, 신불재 1

2014.9.27

by 조운

여행기간 : 2014.9.27 - 9.28
작성일 : 2016.11.20
동행 : 바다수영을 즐기는 행님들과
여행컨셉 : 백패킹






말로만 듣던 백패킹의 성지, 영남알프스에 첫 발을 디뎠다.

한때 유럽에 있는 진짜 알프스는 물론 암벽과 빙벽의 세계에 심취했던 동호회 행님이 산행 대장이 되어, 지리산에 이은 영남알프스 데뷔(전문용어로 '머리를 올린다'고 그러더라구)를 시켜주셨다.
겨울 한라산에 같이 다녀 온 실력파라 했더니, 우리 애들의 동행도 허락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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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2시쯤 출발했던 것 같다. 만나서 부식거리도 같이 사서 가천리까지 차로 이동.
길이 끝나는 곳에 주차를 했다. 가천이 신불재로 가는 가장 단거리 코스란다.
애들도 있고 산에서 캠핑만 즐기기로 해서, 우린 느즈막하게 출발했던 것.
주차장으로 다시 회귀해야 하니, 사실 '집'을 지고 잘 곳으로 가서 잠만 자고 다시 내려오는 코스라 보면 되겠다.
그렇다고 출발을 더 늦게 하면 안된단다. 신불재는 사시사철 비박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통에, 너무 늦으면 텐트 칠 자리를 구하지 못해 신불산 꼭대기까지 가야한다고. 신불산 꼭대기에도 데크가 있지만, 거긴 물도 없고 바람도 심하다.

형님 내외, 큰행님. 그리고 우리 세식구가 산행 멤버가 되어 올랐다. 어른들이 모든 짐을 다 지고, 애들은 맨몸으로 따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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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으로 오르는 길 초입. 평탕한 홁길이 끝나고 막 등산이 시작되는 곳에 이상한 그림 하나가 걸린 게시판을 만난다. 놀랍게도 바로 이곳에 살고 있는 신선같은 분이 그린 그림이며 자신의 집 영토(?)를 표시한 거란다. 혹시 이 코스 잡은 사람들은 그 분을 만나고 화득짝 놀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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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너덜 바위들이 나타났다.
가천 코스가 짧지만 쉽기만 한 코스는 아니었다. 배낭 가득 두툼한 애들 옷을 넣은 터라 더했다. 애들 엄마가 자식 새끼들 얼어죽을까봐, 잔뜩 집어넣어 주었기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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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몸은 역시 가볍구나. 펄펄 날라다닌다. 진짜 나비처럼 이리저리 나풀거리는 게... 어른들이 어릴때 날 더라 '부러울 때'라 했던 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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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만 보고 다니는 둘째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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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자꾸 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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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니 신기한 게 많았나보다. 특히 지천으로 떨어져 있는 도토리 줍는 재미가 솔솔.
양쪽 바지 주머니에 그득 넣고 더 안들어가니 손에도 저렇게 쥐고 있다. 조막손에 4개만 쥐어도 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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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놈도 합세. 아빠 소지품이 든 가방을 달라고 해서는 거길 도토리로 채운다.
산행대장 행님이 그 도토리들이 없으면 산에 사는 다람쥐가 겨울에 먹을 게 없다고 타이르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내일 내려오면서 다시 돌려주겠단다.

착한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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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하늘이 열리고 억새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갈대도 눈에 띄었다. 이 산속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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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이른 감은 있지만, 억새 구경에 안성마춤인 때에 잘 왔다. 억새들이 이제 만개하고 있었다. 이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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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국 군락도 완연한 가을을 천명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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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신불산과 간월산 쪽 능선이 펼쳐지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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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길이 나무 데크로 바꼈다.
데크 길을 조금만 가면, 신불재까지 완전히 오르기 전 산장이 하나 있다. 산장이라기 보다는 매점인데, 주인은 일찍 문을 닫고 가 버렸다. 그 앞에는 데크가 제법 넓은 곳인데 벌써 텐트가 두 동이나 쳐져서 자리가 없었다. 이곳은 식수를 얻을 수 있는 곳이라서 인기있는 비박 장소다. 좁아서 텐트 한 두 개면 끝이지만, 샘 앞에 있는 매점을 일컬어 사람들은 샘터산장이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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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으로 영취산에서 넘어오는 데크길도 눈에 들어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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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으로는 신불산으로 가는 데크길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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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면 샘터 산장 지붕 너머 능선과 함께 속세가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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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출발할 때부터 "얼마나 남았어?"를 쉼없이 물었고, 늘 하던 대답이었지만, 이번엔 진짜로





바로 코앞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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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산 정상으로 이어진 데크길.

우리가 온 길을 따라 직진하면 파래소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이렇게 사방으로 데크가 놓인 교차로가 오늘의 목적지 신불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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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는 중앙의 아주 큰 지도를 두고 넓게 터가 만들어져 있다. 신불재의 너른 데크 위에는 벌써 텐트들이 많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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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으로 해는 뉘엇뉘엇. 하늘에서 시작한 붉은 선동에 온 산의 억새들도 동조 가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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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에서 쉬면서 체온이 떨어질까봐 배낭에서 꺼낸 외투를 입혀 놓으니, 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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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꾸러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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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놈들이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이뻐보여 몇 장 남겼다. 나중에 커서 좋은 추억이 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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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애들 엄마한테 무사함을 알려야 했는데, 고도가 높고 통신기지가 없어서인지 통화가 원활하진 못했다. 살아 있음만 문자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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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트를 치자마자, 산행 대장 형님과 누님은 밥부터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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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저녁 준비로 바쁜 사이, 우리 애들은 데크 중앙에 커다랗게 영남알프스 지도가 있는 구조물 위에 올라서서 저러고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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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인 산행대장 덕에 늘 호사다. 애들은 춥다고 텐트에 걸쳐 앉고 영감님들은 밖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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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는 와중에 벌써 소등하는 텐트들도 있었다. 산행대장 행님이 들고 온 알프스(진짜 알프스) 설산을 누볐던 유서깊은(하지만 여기저기 부러진^^) 텐트는 나와 애들이 차지하고 형님들 세 분은 진짜 비박을 준비했다. 뭐, 성능 좋은 구스침낭 테스트겸 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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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침에 무사히 다시 상봉하입시다~
라는 듯 참 애틋하다.

잠들기 전 애들과 마지막으로 하는 세러머니를 해야했다. 산에서도 외예는 없다. 오줌싸기.
당최 화장실이 보이지 않아서 물었더니, 그런거 없단다^^. 파래소 쪽 데크로 좀 내려가서 텐트에서 좀 멀어지면 거기서 데크 밑으로 볼일을 보란다.
데크의 높이가 땅에서 평군 1m이상이었다. 구름도 없는 날이라, 밝은 달빛 아래 세 부자가 나란히 서서 볼일을 봤다.
그게 다 재미지 뭐.

8시에 잠자리에 들었던 것 같다. 밑에서라면 한창일 시간인데, 산에서는 완전 한밤중 같다.
둘째는 피곤해서 금새 곯아 떨어졌는데, 첫째는 좀체 잠들지 못한다. 좀 민감한 편이라 바람 소리가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산에서 특히 텐트에서 자는 것도 첨이고.
나도 슬 잠이 밀려왔다. 까무룩 잠이 들려는 찰나 첫째 놈이 불렀다.


"아빠, 저거 뭐야?"


목소리가 깜짝 놀란 투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머리 위 텐트 출입구에 드리운 달빛에 그림자가 흔들거렸다. 나뭇가지 임에 틀림없을텐데, 그 생김이 마치 날을 세운 벨로키랍토르의 손톱처럼 보였다. 아들은 곰발바닥 같다고 했고.
내 눈에도 영락없이 짐승의 손처럼 보이는데 녀석한테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지퍼를 열고 실체를 확인시켜 줘야만 했다.
막상 밖을 열어보니, 아무리 둘러봐도 그런 그림자를 낼 만한 게 보이지 않았다. 뭐지?
다시 지퍼를 올리고 누웠다. 더이상 그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그건 뭐였을까? 진짜 짐승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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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눈만 말똥거리는 녀석을 내 품 속에 완전히 파 묻고 재워야 했다. 아빠가 지켜줄테니까 자라고 하면서. 우리 아들들은 그 말을 잘 안 믿는다. 늘 그렇게 재워준다면서 아빠가 먼저 잠드니...
그래도 자기는 아빠가 옆에 있지만, 아무것도 모른 채 침낭도 다 차버리고 큰 대자로 자는 동생 걱정에 또 잠이 안든다나 뭐라나...
어쩔 수 없이 둘째 놈도 마져 추슬러 한쪽 팔에 끼고, 첫째는 다른 쪽 팔에 당겨서 토닥거리면서 잠이 들어야 했다. 아빠가 먼저 잠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도 그때 이야길 하면, 생생하게 기억하는 첫째 놈.
과연 그 그림자는 뭐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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