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4.8.26~8.27
여행기간 : 2014.8.25 - 8.27
작성일 : 2016.1115
동행 : 자유로운 영혼들
여행컨셉 : 자전거 캠핑
돈짱의 우정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요코야마상은 아들과 함께 자기 차에 올라타고는 사람좋은 미소로 팔을 들어 인사하고는 집으로 갔다.
그러고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요코야마상의 차가 다시 나타났다. 이번엔 혼자였고, 차에서 흰 비닐봉다리를 들고 우리쪽으로 걸어왔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내민다.
풀어헤쳐보니 거긴 포장된 돈짱이 두 팩 들어 있었다. 우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
본토의 내국인 관광객보다 더 많은 한국인들이 밀려 들어오는 대마도에, 놀러 온 그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잠시 만난 우리를 위해, 돈짱을 파는 히타카츠까지 가서 그걸 자기 돈으로 사서는 다시 이리로 운전을 해 와서 건넨단 말인가? 왕복 거리만 1시간이 넘는데.
혹시 아까 내가 잡았던, 고작 모시조개 세마리를 덥썩 그의 아들에게 주어서?
일순간 당황한 채 말을 잇지도 못하다가 고맙다고만 하기 미안해 하는 우리들에게 맛있게 잘 먹으라고는 쏜살같이 다시 자기 차로 가버린다. 뛰어가서 그에게 전화번호를 달라고 했다. 그가 한국에 오지 않더라도 다음에 다시 대마도나 미야자키로 가면 꼭 연락드리겠다고.
영문을 잘 모르는 우리 후배들은 설명을 재촉하고, 심작가는 얼굴만 봤지 말 한 번 섞지 않았으니, 도대체 어찌된 건지 눈으로 내게 질문을 퍼붓는다.
여차저차 설명했지만 모두들 같은 의견. 아무리 그래도 이런 과분한 인심이라니...
보통 여행을 오면 꼭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그게 결국 여행에서 얻게 되는 최고의 선물일 때가 많다. 이번 대마도에서는 미야자키 출신 요코야마상이 선물이었다.
패키지 여행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이 묘미는 일정에 얽매이지 않는 여행을 떠난 누구라도 경험해 봤을 것이다.
이제와서는 후회막심이다.
왜 메일 주소를 묻지 않았을까? 그가 워낙 빨리 떠나려해서 겨우 겨우 전화번호만 받은 것도 있지만, 내가 잘못 알아 들은 건지 아님 그새 번호가 바뀐 건지... 다음날 대마도를 떠나면서도, 부산에 도착해서도, 그리고 한동안 자주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듬해 절친 'J'와 히타카츠에 다시 갔을 때도 수소문 해보았고, 가족들과 미야자키(요코하마상의 고향)를 갔을 때도 전화를 해 봤지만, 역시나 불통.
그렇게 돈짱으로 따뜻함만 전해준 요코야마상. 얼굴이나 미소도 뚜렷한데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인연이 되어버렸다. (혹시 이 글을 보게 될 누군가 히타카츠에 파견 근무 중인 요코야마상을 아는 분이 있다면 꼭 알려주십시오~)
단풍나무 숲길
심작가가 나머지 짐과 텐트를 지키기로 하고 세 명은 장을 보러 떠났다.
돈짱으로도 충분해 보이긴 했지만, 꼭 먹어봐야할 건 바로 소!고!기!
한국에서보다 훨씬 싼 소고기를 실컷 맛보고 가기로 했던 우리는 꼭 장을 봐야 했다.
우리가 떠나기 전 서울말을 쓰는 어린 청년이 혼자 미니벨로에 텐트까지 싣고 모기하마로 들어왔다. 우리 근처에서 텐트를 꺼내는 게 숙박을 할 모양이었다. 우리는 일행이 생겨 좋았고 그 친구도 배타적인 친구가 아니라 금새 동지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그 총각과 심작가를 두고 세명이 차에 올라탔다.
국제면허증을 가진 유일한 'B'양이 운전을 했고 내가 네이게이터를 맡았다.
보조석에 타고 발 밑을 한 장 촬영했다. 참 질긴 조리다. 세일하는 곳 매대에서 샀는데, 10,000원을 줬던 것 같다. 심지어 여성용. 색깔도 맘에 들고 끈이 천으로 된 것도 맘에 들어 샀다. 약간 작은 느낌이었지만 조린데 뭐. 발가락이 땅에 닿지만 않으면 되는 거지 뭐 하면서...
그렇게 벌써 2년째 내 여름을 가장 낮은 곳에서 책임지고 계신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직 짱짱하시다. 내년에도 잘 부탁합니다~)
아소만을 통과하는 구간에 잠시 해안길이 아닌 내륙쪽 길로 지나오긴 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전나무처럼 쭉쭉 뻗은 숲길은 대마도에서 처음 봤다. 이정표에는 단풍나무 숲길이라고 되어 있었다. 단풍나무가 확 펼쳐진 곳이 있긴 했지만, 이 침엽수가 우점종이었다. 창문을 열고 마시는 공기는 극상의 품질^^
모기하마에서의 사단
차로 가니 그렇게 빠를 수가 없었다.
마트에서 이것저것 구경하느라 좀 늦어서, 7시쯤에 모기하마로 다시 돌아왔다.
차를 대는데 심작가를 중심으로 일단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있었다. 경찰까자. 분명 무슨 사단이 났구나 직감하고 달려갔다.
텐트를 철거하고 있던 심작가가 반갑게 맞았다. 그나마 약간의 일본어가 가능했던 나만 기다리고 있었단다. 전화도 되지 않으니 답답했었나 보다.
사건의 전말은 갑자기 마을 사람 두어명이 찾아와서는 뭐라뭐라 하더란다. 대충 짐작키로는
"여기서 텐트를 치면 안된다" 와 "텐트를 치려면 요금을 내라"는 것이었단다.
우리가 텐트를 친 곳 옆에는 규모는 작았지만, 데크가 있는 캠핑장이 있긴 했다. 아무도 없었고, 우린 그 반대쪽 잔디밭에 텐트를 쳤는데, 잘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빼고 내가 파악한 바로는
본인들은 이 마을 사람들이고, 그 잔디밭은 파도에 휩쓸릴 위험이 있어서 텐트를 치면 안된다는 것, 정이 텐트를 치려면 데크 위에 치고 요금을 내라는 것이었다.
심작가가 한국인이라고 해서 섬 반대쪽 '사스나'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는 한국인 사장을 전화로 연결해 주었다고 한다. 그 사장은 알고보니 국제신문에서 근무했던 국제부 기자 출신. 주로 일본쪽 기사를 많이 썼던 사람이랬다. 그리고 대마도가 좋아서 사직하고는 대마도에서 숙박업을 시작한 지 몇 년차가 된 분이라고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모기하마에 대한 국제신문 기사도 그가 후배들에게 부탁해서 이뤄진 거라고 했다. 대마도에 숨겨진 진주같은 곳들이 있음을 알고 기사화 해 달라고 한 것 같았다. 아님 자신이 기사를 섰을 수도 있고.
우리가 여기서 이런 일을 당한 게 그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최근 한 두해 사이 대마도가 한국인 관광객이 폭발적으로 들어오면서, 자칫 배타적인 섬사람들의 생활문화 속에서 그가 돈을 버는 방식에 현지 주민들이 불만, 시샘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다. 아니면 그런 불만을 무마하기위해서라도 우리의 입장을 대변하기보다는 저들의 입장을 대변해야만 하는 게 아닐까하는...
어쨌든 그 분이 통역을 해 줘서 자초지종을 대략 알 수 있었단다.
모든 게 추측이지만, 사스나의 'C'사장과 통화하는 이 마을 아저씨(목소리가 제일 큰)가 말끝마다 사쵸(사장)라고 부르기도 했고, 처음에 'C'사장님을 우리한테 연결해주면서 여기 캠핑장 주인이고, 자신은 관리를 돕고 있다는 말을 하기도 해서 (내 일어 실력을 자신할 수 없어서, 문장 전체를 잘못 파악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전화로 하는 말들을 모두 믿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니, 마을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만 해 주더라고.
전화를 끊고 목소리 크고 굵직한 덩치의 아저씨와 다시 설전을 좀 했다. 잔디밭이나 캠핑장이나 해발 고도는 같은데 위험하다는 이유에도 납득이 되질 않았다.
그 뒤에 말이 통하지 않자, 마을 청년이 구청에 다닌다고 그 사람 퇴근하고 오는 길이니까 만나서 얘길하자면서 또 그 사람에게도 물었을 때, 본인들의 요구는 정당한 거라나 뭐라나...
대충의 경위를 파악하고 내가 경찰에게 물어보았다. 여기 잔디밭에 텐트를 치는 것이 불법이냐?
"아니지만..." 좀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분명하게 아니라고 말을 했다. 좁은 섬에서 모두가 아는 사이는 아니겠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객관적이고 형평성있는 공권력의 개입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아마 현지 경찰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경찰도 괜찮다고 하니, 그냥 잔디밭에 텐트를 치겠다고 말하자, 그 목소리 컸던 덩치 좋은 아저씨는 공중화장실과 수도시설을 모두 잠겨 버렸다.
마실 물은 어떻게 하냐니까, 잘하지도 못하는 일어 실력으로도 또렷하게 들리는 말을 했다. 한 손으로 지폐를 뜻하는 만국공통 몸짓도 해 가면서.
"돈만 있으면 다 된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요코야마상한테서 받은 돈짱 한 봉지에 대마도 전체에 대한 무한 애정으로 들끓었던 우리들의 마음은 싸늘해졌다. 야박하기 그지없는 그들의 행동에 치가 다 떨렸다.
8시가 훌쩍 넘어 저녁도 못 먹은 우리들은 선택을 해야했다. 다른 시영 캠핑장에 비해 터무니없는 사이트 요금을 내라고 하는 그들의 비정함 앞에서 과감하게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느냐, 아니면 억울해도 그냥 그 돈을 주고 여기 데크 위에 다시 텐트를 치느냐.
심작가와 상의를 하는 와중에 쭉 경과를 지켜보던 아까의 그 서울 청년은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홀로 무전여행을 하는 마당에 그만한 돈도 없고 어디 길가에서라도 자겠단다.
우리는 그 총각의 사이트 값까지 내기로 결정을 하고, 흥정을 통해 약간의 할인을 받았다. 분했지만 남은 여행을 기분좋게 마무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자전거를 타고 어디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미 주위는 완연한 밤이었고, 우리는 몹시 허기져있었다.
지금도 사스나의 한국인 사장이 우리를 도와준 게 맞는지 아닌지 확신이 들지 않지만, 확인할 길이 없어서 늘 이 부분을 씁쓸하게 기억하곤 한다.
허나 워낙 낙천적인 자유로운 영혼들. 조속한 해결 뒤, 그 다음으로 가장 급한 불, 바로 저녁식사부터 해결했다.
호르몬 구이
저 노란 옷을 입은 서울 총각은 이 모든 것이 생각지도 못한 재미라며, 혼자서라면 겪어보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란다. ㅎㅎ 딱 우리과네. 그래 인생의 귀퉁이에서 어쩌다 이렇게 만나 이런 극적인 사건에 휘말린 동지들인데...
우리는 돈짱, 소고기와 함께 야심차게 준비한,
호르몬을 구워먹었다. 양곱창을 일본서는 호르몬이라 불렀다. 캠핑때 양곱창이라니, 이런 호사가 다 있나? 양념이 없어 소금간만 해도 맛있었다. 물론 너무 배도 부르고 생각보다 점점 느끼함이 커져서 초반에는 모자랄까 걱정했는데, 되레 남아버렸다.
그렇게 다사다난했던 하루가 가고 우린 해발 고도는 동일하나 잔디밭보다 "안전한" 데크 위(데크가 지면에서 20센티 정도 높긴하니 더 안전하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만)에 놓인 텐트에서 대마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미우다 찍고 히타카츠항 그리고 부산항
밤새 바람이 많이 불긴 했다. 아침에도 저렇게 텐트가 한쪽으로 찌그러질 정도로 바람이 심했다. 야심하도록 마시고는 텐트 앞에 두었던 코펠이며 그릇이 바람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그걸 주으러 다니면서 하루를 시작해야 했다.
남은 음식을 모두 모아서 볶아 먹었다.
후배들은 렌트 기간이 다 되어서 차량 반납을 위해서 먼저 출발하고 심작가와 나는 다시 트레일러, 패니어를 다 달고 히타카츠항을 향해 달렸다.
지도에서 A지점에서 B지점까지가 오늘의 행로.
출발해서 조금만 가면 단풍나무 숲길이다. 지도상으로 꼬불꼬불한 길.
도로가 꼬불꼬불한 곳은 무조건 오르막이거나 내리막이라 보면 된다.
어제 장보러 가면서는 쓱 지나쳤서 오히려 아쉬웠던 단풍나무 숲길이 트레일러까지 싣고 오르기 얼마나 힘든 지 온몸으로 체감해야 했다. 그나마 깊은 숲속 도로라서 시원했기에 망정이지 정말 죽을 힘을 다해 저어야 했다.
자전거 캠핑의 진리는 뭐다? 짐을 줄이는 것. 철칙이다.
후배들은 히타카츠에 차를 반납하고 그 인근을 돌았고, 심작가와 나는 미우다 해수욕장까지 갔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들어갈 수 있는 바다가 나타나면 앞뒤 안보고 들어갔다. 난 늘 수경을 들고 다니고 심지어 속옷 대신 수영복을 입고 자전거를 탔기에 물만 만나면 10초 만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
미우다 해수욕장의 규모는 참 작았지만, 아담하고 중간에 바위섬 같은 것이 있어서 이뻤다. 사람들도 그렇게 북적이지 않았고.
대부분 한국인인데, 신기한 것은 다들 바다를 보기만 할 뿐 들어가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거. 알고보니 당일 오전에 출발해서 히타카츠에 도착해서는 점심 먹고 미우다에서 바다 구경하다가 우리가 타는 오후 배로 다시 돌아가는 당일치기 코스를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히타카츠항에서 미우다까지 걸어도 그렇게 먼 거리가 아니라서 대부분은 걸어서 여기까지 온 듯했다.
그러고보면, 대마도는 참 가까운 곳이다.
우리는 다시 히타카츠 시내로 가서, 심작가가 이끄는 스시집에서 마지막 식사를 했다. 끝내주는 맛.
점심을 먹고 바로 배를 탄 뒤, 부산항으로 귀항했다.
심작가의 사무실에서 백구당 빵으로 간단하게 뒷풀이를 하고 기념으로 한장 남겼다. 저 조리신발도 같이.
터미널에서 사무실도 금방이라 벌건 대낮에 도착하니, 마치 조조할인으로 '추적자'를 보고 나온 기분이었다. 완전히 빠져 있던 다른 세계에서 너무 적나라하게 현실로 뽕 나와버린 느낌^^.
시차가 없는데 시차 적응이 안되는 우리는 공사다망했던 2박3일의 여운을 각자 정리하기로 하고 깔끔하게 헤어졌다.
6개월 뒤, 다시 대마도로 갔다. 그때는 지금보다 더한 사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대마도에만 가면^^
그건 또 다음에 기록해 두기로 하고 우여곡절과 재미로 점철된 대마도 자전거 캠핑은 여기까지.
_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