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8.19
여행기간 : 2014.8.19 - 8.20
작성일 : 2016.11.14
동행 : 같이 살아 주는 분과 그녀의 아들들
여행컨셉 : 드라이브
비슷한 시기였던 것 같다. 당시 "통섭"이란 단어가 많이 회자 되던 때였고, 집에 <통섭의 시간>이란 책이 굴러다니던 때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연히 '국립생태원' 개관 소식을 들었다.
동물학자이면서 책벌레인 그가 쉽게 쓴 인문학 편력을 기록한 책이었는데, 최재천이라고는 정치인 밖에 모르던 내가 TV 채널을 돌리다가 EBS에서 늦은 밤 진행하는 스튜디오 강의물에서 "최재천"이라는 사람이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고, 그가 <통섭의 시간>을 썼다는 약력을 보고야, 내가 읽었던 그 책의 저자인 줄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약력 소개에서 국립생태원의 원장으로 임명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생태적 관점을 가지고 온화한 얼굴에 따뜻한 시각으로 세상에 대해서 말하는 그가 참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국립생태원이라는 것이 여수엑스포나 순천정원박람회 같은 이벤트성 기획으로 건립되는 것만은 아닐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을 받았고, 언젠가 꼭 한 번 가봐야 할 곳으로 내 맘에 자리 잡게 되었다.
애들 엄마는 꼬시기 쉬웠다. <통섭의 시간>을 산 사람이고, 애들이 워낙 동물을 좋아하니,
'애들을 위해서라도...'
라는 논리에 금방 미끼를 물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서해안 여행을 버킷리스트로 잡고 있었고, 방학이 되면 떠나자고 일찌감치 1박의 여정을 마련해 두었다.
아산레일바이크
여정의 핵심 이벤트는 "국립생태원"이었지만, 낯설고 먼 아산군, 서천군으로 떠나는 차량 여행이다보니, 몇 가지 옵션들을 우겨 넣었다.
첫 번째는 레일바이크.
강원도 여행 때도 정선에서 타 봤는데, 애들 엄마가 아산 지역 관광상품을 이잡듯 뒤져서 결정한 선택이라 따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벌판을 따라 이어진 아산레일바이크는 정선에서 깊은 계곡을 타고 내려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엷게 비가 오는 날이라 차분하게 내려앉은 고즈넉한 들판의 색과 향까지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도 명색이 관광지인데 그냥 밋밋하게 두면 이용객들이 심심해 할까봐, 굳이 보태지 않아도 되는 구조물들을 보태 놓은 게 오히려 좀 흠이었지만...
발차역에 세워진 뜬금없는 풍차 같은 거 말이다.
개장한 지 얼마되지 않은 건지, 이제 막 설치한 철재 터널에는 수세미류가 막 기어 오르고 있었다. 들판의 싱그러움을 담기에는 차라리 좋았다.
우리 가족 여행은 비록 차를 가져가지만 늘 필드형을 추구하는 편이라, 판초 우의 정도는 기본이다.
철도가 당시 통근, 통학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인지, 학교 갈 생각은 않고 낚시 삼매경에 빠진 교복입은 인형 등 조형물을 중간 중간 배치 해 두었다.
처음 출발한 곳으로 회귀해야 하는 레일바이크는 사실 아빠가 좀 힘들다. 정선처럼 내리막을 따라 쭉 미끄러지고 다시 기차를 타고 원래 출발지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보니, 거의 평지를 네 사람의 무게를 오롯히 지고 달려야 한다.
속도를 내거나 아찔한 재미를 원한다면 비추지만,
가족들의 부드러운 미소 정도에도 만족하는 아빠라면 적극 추천!
아산환경과학공원
집에서 4시간 넘게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해서, 일찍 서둘러 움직이기도 해서, 구릉들이 참 아름다운 장수군 같은 곳에서 경치 구경도 달리면서 주마간산 했더니, 레일바이크를 타고도 아직 해가 길었다.
검색을 했다.
아산환경과학공원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곤충원, 장영실 과학관이 나란히 있는 곳이었다.
"장영실"이라는 단어의 흡인력이란^^.
내가 가장 존경하는 세종이 아꼈던 인재이기도 하고, 과학 천재이기도 했던 장영실을 간판으로 내세운 곳이라면 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같은 느낌.
어차피 이번 여행은 아빠의 기호와 편력으로 점철된 여행이니.. 군말말고.
"나를 따르라~"
사실은 혐오시설인 쓰레기소각장과 하수종말처리장을 지으려는 궁여지책.
지역민의 반발 무마용 공원이었지만, 나쁘지 않았다.
우리 애들이 초등2학년, 유치원생이었는데 수준에 딱 맞았다.
라기 보다는 내 수준에 딱 맞았다 ㅜㅜ
빛의 잔상을 이용해서 "내 그림자를 붙잡아 둘 수 있는 벽"에서는 내가 더 신나서 우리 가족들을 오랜 시간 붙잡아 두었으니...
착시를 이용한 담장 기어오르기... 뻔한데도 애들은 좋아한다^^
보시다시피 화려한 과학적 추론과 실험들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애들 수준에서 비일상적인 체험들을 하면서 신나는 한 때를 보내기엔 충분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지가 지 손을 잡고 원을 만들어보는 큰 놈.
그래 그런 게 재미지^^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할아버지 옆에서 기념 촬영.
누군지는 나중에 천천히 알아도 된단다. 혹 다시 여길 올 기회가 되면 그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장씨 할아버지하고 한 번 더 기념촬영하면 좋잖아~
과학관을 나오면 야외에 저렇게 약간 조악한 느낌을 주는 동물, 곤충 모형들이 애들을 등에 태우기 위해서 여기저기 흩어져서 기다리고 있다. 코스대로 한 번씩 목마를 타고 생태곤충원으로 들어간다.
이런 것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애들이 몸을 많이 쓰도록 해 둔 게 좋았다.
어항들이 쭉 놓여있고 개 중에는 저렇게 청소물고기에 손을 넣어보는 짜릿한 경험도 준다. 처음엔 좀 무서워하던 녀석들이 물고기 간지럼이 신나서 떠날 생각을 않는다는 게 문제.
사람들이 북적되지 않아서 좋았다. 아마도 애들이 많았다면, 저 어항에 손가락 한 번 넣으려고 또 길게 줄을 섰을텐데, 줄서는 사람은 없었다.
천장이 온실 지붕처럼 된 꽤 넓은 메인 홀의 중앙은 열대에서 온 듯한 귀여운 동물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미어캣이나 사막여우를 근접해서 보는 것 뿐만아니라 먹이 주기 체험도 해 볼 수 있어서 인기가 좋았다.
이 여우들은 나중에 집으로 돌아오면서 아빠, 엄마의 길고 긴 "어린왕자"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실제 이 놈들과 먹이 주기 교감을 해 보지 않았다면 그 재미없는 이야기에 그렇게 집중했을까?
애들을 위해서 담장도 투명하고 낮게 해 두었는데, 먹이를 주기 쉽도록 간이의자들이 비치되어 있다. 먹이 가격이 싸서 누구나 한 컵씩 산다. 먹이는 밀웜이라 불리는 식용 벌레...
미어캣들은 플라스틱 컵을 들고 간이의자에 애들이 올라가면 저렇게 해바라기 빙의를 한다. 저러니 어떻게 먹이를 안 살 수 있겠는가^^
집에 몇 년 째 기르고 있는 어항 속 물고기들도 먹이 반응이 좋은 놈들이 사랑받는다. 아마도 애들이 주는 먹이에 저렇게 반응하려면 하루종일 굶기거나 매일 아침 오픈하고는 적은 양의 먹이를 주는 게 아닐까.
다람쥐 마을.
예전처럼 숲이나 산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게 아니다보니, 귀여운 다람쥐도 이런 데 와서야 볼 수 있다.
다람쥐가 다니도록 얇은 망을 아이들의 키에 맞춰서 쭉 이어 놓았다.
먹이 반응도 좋고, 운이 좋으면 손과 주둥이가 닿는 짜릿한 경험도 할 수 있어서 애들이 너무 좋아라 한다.
서로 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접촉할 수 있도록 한 탁월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한 쪽에는 파충류, 그 중에서도 뱀을 만져볼 수 있게 내 놓았다.
약간 겁도 나지만 안전하다고 하니, 미끌미끌한 감촉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어 애들이 모여들었다.
정말 괜찮아요? 라고 묻는 듯한 저 표정^^
이날 최고 인기있는 동물은 뭐니뭐니해도 사막여우.
큰 귀에 깊고 큰 눈동자와 작은 체격, 어린 새끼들의 귀여운 장난질까지.
어른들도 모두 좋아했다.
지들이 원래 살던 대자연에 비할 수야 없겠지만, 제법 대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사랑받고 있는 애들이 측은하게만 보이지 않아서 더 좋았다.
프레디독.
둔해 보이는 외모에다가 다른 애들보다 좀더 작아서 사막여우나 미어캣보다 먹이를 많이 못 챙겨먹은 저 녀석들에게 마지막 남은 밀웜을 직접 주기위해 엄마, 아빠까지 합세해야 했다.
이 외에도 공기정화를 해 주는 식물들을 모아 둔 식물원이나 곤충, 수생태를 엿볼 수 있는 다양하고 아기자기한 동식물들이 빼곡했고, 자체 교육 프로그램도 있었다. 우리처럼 사전 준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 말고, 인근에서 자주 오는 아이들은 그런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움직이는 모습도 보았다.
그렇게 눈 호강하고 넓은 곳이 보이면 이내 달리고...
우리는 이 정도에도 만족스러웠지만.
내일 만날 국립생태원의 또 다른 식물, 동물들의 워밍업 정도로 생각해서 더 만족도가 높았을 수도 있다.
원래 별 기대 않고 오면 어디든 좋은 거니까… 라며 준비없는 스스로를 합리화해 본다^^
아산만이 가진, 서해안 지형과 사람들이 만들어 낸 삶의 모습은 전혀 엿볼 수 없었던 여행이었지만, 그런 욕심까지 바라지 않아서 마냥 좋았다. 어차피 꼬맹이들을 데리고 1박2일의 여행이니... 이방인이 잠시잠깐 들러서 아산의 진면목을 보겠다면 그건 정말 파렴치한 거잖을까?
이번엔 철저하게 국립생태원을 위한 여행만 하자 맘 먹었으니, 우리는 오늘 하루 의외의 성과까지 얻었다고 볼 수 있잖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