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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악양, 박경리의 '토지'길을 따라

2014.10.9

by 조운

여행기간 : 2014.10.9
작성일 : 2016.11.23
동행 : 가족과
여행컨셉 : 단체 행사 참여




박경리 선생에 대한 기억


대학때 풍물을 했었다. 풍물패는 방학이면 으례 전수라는 걸 간다.
쉽게 말해, 전지 훈련 같은...
배움을 얻을 사부를 모시고 열흘 정도 합숙을 하면서, 하루 12~14시간 자신이 원하는 악기만 쳐댔다. 보통 전수를 떠나기 전 학내에서 열흘에서 보름 정도 악기에 능한 선배들에게 기본적인 훈련을 받고(전수 시간 폭발적인 발전을 얻기 위한 초벌 단계의 강도높은 훈련이었다. 합숙은 아니고 통학하면서) 전수를 떠났기에 거의 방학 중 한달은 자신의 악기와 함께하는 게 풍물패의 숙명과도 같은 거였다. 보통 전수는 사부가 있는 지역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쩔 때는 아는 연고를 빌미로 아주 멀리까지 가기도 했다. 물론 사부도 그 때문에 우리를 따라 멀리 와야 했고.
대구 영남대, 원주 연세대 캠퍼스, 조치원 고려대(?) 캠퍼스, 진주 경상대 등을 다녔던 것 같다.
동아리에서 중견급 쯤 되는 짬일때, 원주에 있는 연세대로 전수를 갔다. 외따로 떨어진 캠퍼스라서 중간에 도망도 갈 수 없는, 일부러 그런 곳을 찾아 다니기도 했던 것 같다.

이렇게 타 대학에서 전수를 하면, 주로 큰 강의실을 빌려서 전체 바닥을 스티로폼으로 깔고, 겨울이면 여기다가 창문에 온통 김장 비닐을 덮고, 강의실 중간 중간에 난로도 때면서 생활했다. 여름에는 땀내와 발냄새로 겨울이면 추위로 고생을 했지만, 수십명이 그렇게 자면 그다지 추운 줄도 몰랐다. 그땐 고생인 줄 모를때이기도 했고. 꼼꼼하게 준비를 해서 가지만 역시 그 대학의 풍물 동아리가 적극적으로 많이 도와주었다. 당시 우리 학교 풍물패는 좀 유명했다. 규모도 상당했다. 최대 많이 전수를 갔을 때 100명에 육박할 정도였고, 상모와 소고놀음은 대학 중에서 하는 곳도 잘 없을 때 우리는 미친듯이 돌려댔다.
급기야 아예 우리를 사부로 모시고 우리 학교로 전수오는 타 대학 동아리도 있었고, 원주 연세대는 우리가 전수를 다녀온 이후에, 아예 자기들 전수시기에 원주로 초빙을 해서 악기별로 한 명씩 3명 정도가 올라가서 가르치기도 했다.
당시 내가 쇠(꽹과리)를 가르쳤는데, 연세대 풍물패에 있던 한 해 후배 중에 국문과를 다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지금은 완전히 소식이 끊어졌지만, 그 친구가 대학원을 다닐때까지 꽤 길게 서로 연락을 주고 받고 서울서 일부러 연락해서 만난 적도 있을 정도로 친했다.
그 친구의 박사코스 지도교수님이 박경리선생이었다.

어릴 때 "토지"라는 대하드라마를 띄엄띄엄 보기도 했고, 제법 커서는 또 한 번 리메이크된 것을 더 띄엄띄엄 보기도 해서 대략적인 내용은 알고 있지만, 이 소설이 가진 역사적, 문학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연세대에서 만났던 이 친구가 읽기를 강권했지만 워낙 방대하고 해서, 박경리 선생의 자전적 소설(제목도 기억나지 않는다. 여튼 책 한 권짜리였다)을 읽은 게 전부였다. 읽는 동안 특별히 문장을 꾸민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도 진솔함과 담백함에 매력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혹자는 화를 낼지도 모르지만, 김훈의 문장에서도 비슷한 매력을 발견했던 것 같다)

애들 엄마가 직장과 관련된 곳에서 준비한 나들이에 가자고 했다.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었던 하동이랬다. 최참판댁까지 걸어 가는 코스가 있단다.
제주 올레길 이후, 지자체별로 걸어서 다니는 '길' 트레킹이 유행으로 번지던 때이기도 했다.
집 근방 집결지에 모였다가 전세 버스를 타고 하동 악양으로 움직였다.




악양들의 '조씨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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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보니, 약간 이르지만 벼들이 제법 여물고 색도 바뀌고 있었다. 가을 초입, 아름다운 색감 준비를 마친 악양들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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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은 벼를 난생 처음 보는 꼬맹이 눈에는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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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은 여기저기 노란 색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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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 일로 마눌님이 사진을 다 찍어 준다^^ 했더니,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나락이 주인공이었구만.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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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들도 나락처럼 후딱 커버리면 우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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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가 한쪽에 볍씨가 한 웅큼 떨어져 있다. 늘 씨앗만 보면 집에 가서 심으려는 둘 째.
쭉정이라서 싹이 안 난다 말하니 아쉬워한다. 쭉정이가 아니면, 아파트에 논을 만들자고?

아빠도 꿈이 벼농사라서 늘 내 논을 갖고 싶단다. 언젠가는 우리 논에 볍씨를 뿌려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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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가을을 만끽하게 더할나위 없이 좋은 날씨였고 하늘엔 솜털 구름이 엷게 펼쳐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행사였지만, 코스만 정해놓고 심하게 통제를 하지 않아 자연스레 본인들의 발걸음 속도에 맞춰서 다니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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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궐같은 집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귀족층 가옥 구조도 맛보면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살던 이에 대한 이야기나 집에 얽힌 맥락을 파악하면 좋았을테지만, 우리 꼬맹이들과 시원한 공기만 마셔도 좋아서 굳이 애써 찾아보거나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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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하늘 하래, 밋밋해서 오히려 정겨운 기와의 색감과 빛 바랜 회벽이 참 잘 어울렸다. 더구나 한창 익어가는 감이 주렁주렁, 화룡점정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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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머니가 살아 생전 사시던 시골 집이 비록 규모가 이 정도에는 턱없이 모자라지만, 바닥 낮은 정지(부엌) 뒤로 가면 장독대부터 감나무며 작은 실개천이 흐로고 있었다.
조씨고가도 마찬가지. 대문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정지 뒷문으로 난 길을 따라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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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이리 비슷한 지, 정지 뒷문에 딱 조만한 실개천이 흘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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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에는 살구가 제풀에 떨어져서 물가를 수놓고 있다. 참 한가로운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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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 아래 둔덕에는 늙은 호박 하나가 오후의 가을햇살을 실컷 받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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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학창시절 같이 풍물을 했고, 지금은 같은 지역에서 이웃으로 살고 있는 선배 누나네 가족들과 함께 다녔다. 그 집은 다복하여 아들 둘에 딸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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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논길과 과수원 길을 걷다보니 마을이 끊어질 듯 이어진다. 어느 농가 앞 길에 팥을 널어 말리고 있다. 신기한 것 투성이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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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 아름답소~."


연애 안하는 후배들한테 막무가내로 하는 조언이다. 맘에 들면 꼭 얘기해라고...
요즘은 그러다 신고 당한다지만, 진심이면 통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저리 고운 배경에 서서 누구 기다리요? 아가씨 참 아름답소~. 실은 물살이 제법 센 개울에서 세수를 하다 안경을 빠뜨린 줄도 모르고 여기까지 왔었고, 되돌아 가 찾았으나 허탕만 치고 돌아 오는 남편쟁이 기다리는 여인이지만.



평사리 '최참판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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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참판댁이 있는 평사리 마을 어귀에 있는 나무다.
니들은 어떻게 이렇게 이쁜 색을 만들 수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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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출발한 곳에서부터 최참판댁까지는 제법 멀었다. 애들도 지치고 해서 챙기느라 막상 오래된, 최씨 집안의 영욕의 세월이 그대로 묻어있을 가람이나 살림을 제대로 살펴보지도 못하고, 최참판댁 앞에서 보이는 풍경만 한 컷 찍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논이 다 최씨 집안 소유였겠지? 자신의 땅을 늘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좋은 언덕배기에 집을 짓고, 대청에 서서 이렇게 바라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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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참판댁 대청에는 한 번 앉아보고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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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집에서 주위 100리 안에 굶는 사람 없게 하라고 호령할 팔자였을텐데... 잘못 만난 남편 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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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리 주막에서 탁한 술과 파전 한 쪼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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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트레킹 여정은 끝나가고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지 전엔 왠만한 관광지에서 늘 볼 수 있는 기념품 샵들이 즐비한 거리도 있었다. 경주처럼 그런 집들이 다 기와를 얹은 한옥이라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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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가을이래도 제법 따끈한 날씨 덕에 살짝 지쳐가고 있을 즈음 다리를 만나고 답사는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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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들은 보통 장난끼도 많고 고집도 센가 보다.
누나네 둘째가 조르고 졸라 얻어낸 아이스크림.
그 집 둘째가 먹는 콘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우리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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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해서 한 입 얻어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참 없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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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양쪽 집을 통틀어 하나 밖에 없는 귀염둥이 여동생. 아직은 귀엽기보다 귀찮은 듯,네 명의 오빠들은 지들끼리만 신나게 쫒아다녔고, 아빠 뒤만 졸졸 따라 다녀야 했다.




섬진강, 평사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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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다 보니, 관광객이 많아서 차를 통제하는 듯 했다. 마지막 코스인 섬진강까지는 너무 멀어서 사람들이 마을 어귀에 도착하는 족족 주최측에서 급하게 준비한 트럭으로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이런 걸 애들은 더 좋아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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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라고 다를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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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라 하면 늘 낙동강 하구가 떠오르는 부산사람들에게는 "애개~"할 정도로 소박한 규모.
하지만 전 국토의 강이 이수치수란 이름으로 세워진 제방때문에 막혀 있는 이 마당에, 저렇게라도 금모래를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런 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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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햇살이라고 안 더운 게 아닌데, 한 낮에 강 옆 '평사리 공원'에서 주최측이 준비한 공연까지 보고 나서, 너나 할 것 없이 강쪽으로 빨려들 듯 걸어갔다.
신불산에선 갈대를 만났는데, 여기 강가엔 또 억새밭이...^^ 갈대는 물에 살고 억새는 산에 산다고 들었는데... 갈대보다 인기가 좋은 억새를 부러 심어 놓은 게 아닌가 싶긴 했지만, 이쁘면 이쁘다고 그냥 받아들이며 즐기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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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날아 오는 건진 몰라도 파란 하늘에 강렬한 색으로 활공하는 사람들이 거의 머리를 스치듯 지나쳐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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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창공에 넋을 잃었던 아이들이 맨 먼저 발을 걷고 물 속으로 들어가고 천천히 어른들이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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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강의 특징.
수심의 평준화. 더러 모래가 푹 들어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강 중앙까지도 완만해서 홍수철이 아니면, 어른들은 다리를 걷고 쉽게 건널 수도 있다. 여기 섬진강도 그랬다.
뭘 잡겠다고 저러는 지는 몰라도 마냥 신났다.
물, 모래, 작은 생명체... 이 정도면 애들의 바둑이지.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고 잘 논다.
명박이 아재가 '4'대강만 난도질 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5대강이었으면 섬진강도 들어갔을 거 아냐.
뭐 대운하를 하자해도 지리산으로 향하는 섬진강이 별 장점은 없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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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남매들. 다리를 걷긴 했지만, 의미는 없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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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빛이 난다. 정말 애들한테는 보이지 않는 빛도 나지만,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위로 늦은 오후 햇살이 내려앉아서 정말 빛이 난다. 모두 이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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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가을 오후 햇살 속에 모두가 아름답다. 자신을 구속하는 것들 내려 놓고 있는 사람과 자연은 참 잘 어울린다. 아름다움은 조화다.
산토리니의 가옥들이 가진 모양과 색이 주는 절벽면과의 조화, 평사리의 기념품 가게들이 한옥을 얹어 멀리 논과 어우러지는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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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으면 멀어지는 법. 강과 인간의 관계가 딱 그렇다. 제방 때문이다. 강에 면한 땅은 물도 풍부하지만 홍수기에 떠 내려온 유기물질이 충분히 축적된 비옥하기 그지없는 옥토이기도 하다.
제일 어린 가젤을 쫒는 사자나 조금이라도 강쪽으로 더 붙어서 땅을 일구려는 인간이나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욕구이니 어쩌겠나. 그러다 홍수기만 되면 애써 가꾼 농토가 다 쓸려 내려가고... 고래로 부터 치수라는 이름의 제방 쌓기란 먹고 살기 위한 자연과의 사투이지 않았겠나.
강을 바라보며 미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늘 먹고 사는 문제 다음이니까.
비록 자로 잰 듯 다듬은 제방이 강을 생활에서 멀어지게 했지만, 깔끔하게 민 제방 사면과 구불구불한 물의 공간 그리고 그 사이를 부드럽게 매우는 모래와 억새... 심지어 생뚱맞은 패러의 활공마저 미감을 부드럽게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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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마침 풍물패 상쇠가 장단을 넣었다. 가을의 오후 햇살과 이 풍경이 만나 한 껏 자극된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스로를 가둔 그물을 벗고 해방의 춤을 춘다.


"아빠, 음악이 나오면 막 몸이 움직여."


그래, 그게 솔직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해방감이란다. 에라 모르겠다. 나도 춤 한자락 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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