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4.11.29 ~ 11.30
여행기간 : 2014.11.29
작성일 : 2016.11.28
동행 : 처 외가 식구들
여행컨셉 : 펜션 캠핑
처 외가 행사
마눌님 외할머니. 그러니까 처 외조모께서 얼마 전 돌아가셨다.
평생 사천 갯가에서 쏙이며 굴을 따서 자식들(장모님께서 장녀시다) 키우고 최근까지 혼자 지내셨다. 결혼하고 그해 외조부 제사에 참석도 하고 인사도 드린다고 처음 찾아 뵈었을 때, 참 정정하셨고, 손주 사위를 위해서 손수 잡아서 삶은 쏙을 한 가득 올린 상을 내 주셨다. 난생 처음 만난 쏙이란 놈,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었는데... 늘 손주 사위한테 존칭을 쓰셨던 할머니.
도시는 싫다고 가끔 아들내 딸내 들르셔도 서둘러 내려가실 생각만 하셨는데, 갑자기 기억력이 떨어지시면서 사람도 잘 못 알아보시다가 최근 증세가 심해서 우리집 바로 앞에 계신 장모님께서 모셔왔다.
그리고 한 달 여 만에 돌아가셨다. 곡기를 끊으시고 불과 이 삼일 만에...
할머니께서 살아 계실 때, 매해 한 번씩 처외가 식구들이 모두 1박을 하며 모여서 놀기로 했었다. 일정은 할머니 생신날에 가깝게 잡았다.
전해에는 남해에서 1박 하고 근처 독일마을 등을 둘러보았었다. 이때가 우리 식구들이 처음 동행했던 캠핑이었고 이번이 두 번째다. 낚시광이신 처 이모부와 생선회 광이신 처 삼촌이 잡는 캠핑 장소는 늘 섬이었고(남해를 섬이라 하면 남해 사람들이 싫어하겠지만) 이번엔 사량도로 잡았다고 연락이 왔다. 할머니께서 이동하시기에 너무 멀지 않은 남해 바다의 섬들이 주로 대상이었다.
이때부터 매년 연례 행사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외손주 사위를 어른들은 모두 고맙다고 말씀하시지만, 자다가도 생선회라면 벌떡 일어나는 식성에다가 굴도 배가 불러 못먹지 주는 대로 다 먹어치우는 지라, 식도락도 이런 식도락 여행이 없는데. 이 좋은 행사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참고로 우리 장모님을 비롯해서 처남들까지 처가 직계 식구들 누구도 굴을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근데 어머님 댁에는 일반 가정에 있을거라고 생각할 수 없는 물건이 있다. 바로 '쪼시개'(사진에 있는).
어릴 때부터 굴을 따고 까는 일을 오래 해 오신 덕에 지금도 고향에 가시면 가끔 자연산 굴을 따 오신다.
그럼 이걸 누가 먹느냐...
나만 먹는다. 어머님께서 한 자루 캐 오신 굴을 우리집 거실에서 까고 있으면 그 향으로도 이미 우리집은 바다가 된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안주 삼아 좀 자시게~"
하면서 양푼이에 가득 든 굴을 내미신다.
처음엔 아까워서 아껴 먹으려 했지만, 신선할 때 빨리 먹지 않으면 다음날 바로 탕에 들어가버리는 지라, 배가 터지도록 먹는다. 그러고도 늘 조금씩 남는다.
일을 뜨악하게 하는 꼬락서닐 가리켜, '처삼촌 묘 벌초하듯 한다'고 하는데, 가깝게 지내다 보면 정이 드는 거고, 촌수와 관계없이 정이 든 사람들이 더 자주, 즐겁게 지내는 것이 자연스런 현상이니, 굳이 촌수에 맞춰서 관계의 깊이를 규정하는 것 자체가 번거롭고 부자연스런 일이지 않을까 한다.(혹시나 나를 먹을 것만 탐닉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할까봐서... 근데 정말 오해일까?^^)
그나저나 이번엔 사량도라... 어디에 붙은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고, 일단 회가 한 상자 기다리고 있는 곳. ㅎㅎ
고성에서 뉴다리호를 타고
검색해보니 사량도로 들어가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다. 통영에서도 출항을 하고, 사천(삼천포)이나 고성에서도 들어갈 수 있다. 각 여객 터미널마다 사량도에 닿는 포구가 좀 다른 듯 하다. 그래봐야 사량도가 그렇게 넓지 않아서 어디든 도착만 하면 되기때문에 원하는 터미널을 선택하면 될 듯 하다. 처 외삼촌이 늘 회를 떠 오시는 가게가 사천에 있기에 사천에서 가까운 터미널인 고성군 용암포 터미널이 1차 집결지.
처 외삼촌은 용인에서 차를 몰고 내려와서 사천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회도 장만한 다음 처 이모님 가족과 합류해서 이미 도착해 있었다.
사량도는 상도와 하도로 되어 있고, 두 섬사이는 현수교가 놓여 있다. 미리 예약한 펜션이 상도의 내지항 인근이라 내지로 가는 편을 끊어서 삼촌차와 함께 탔다.
날씨가 그렇게 차진 않았지만, 뉴다리호(예전에는 그럼 다리호?)도 제법 큰 배라서 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선미에 저러고 있다.
우리 장모님. 살아있는 보살.
우리 때문에 곁으로 이사오신 장모님 덕에 애들을 다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들도 아직까지는 참 바르게 자란 것 같다. 장모님만 생각하면 늘 죄스런 마음이다. 이 땅의 모든 장모님이 한 날 한 시에 파업이라도 하면, 아마 헬조선에서 애들 키우기는 불가능하리라.
아이들이 배를 타는 것에 대한 과도한 공포감이 생겨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특히 큰 놈이 걱정이 심해서 계속 재밌게 놀아준다고 엄마, 아빠가 고생이랄까.
저 어린 것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도 이만한데, 실제 세월호 유가족 분들은 어떨까...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이제보니 좀 섬뜩한 느낌이다.
나에게 바다는 늘상 수영하는 곳이라 사람이 물 속에 있는 것이 참 자연스러운데, 유리창 너머로 구도를 잡으니 우리 가족 모두 옷을 입은 채 물 속에 있는 것 같다.
우린 언제쯤 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번에는 국민 모두의 치유를 위해서라도 꼭 진실 규명이 되어야 할텐데...
군데군데 작은 무인도가 뿌려져 있는 푸른 바다 곳곳에 양식장도 흔하다.
바다 구경 잠깐이면 이내 사량도의 뽀족뽀족한 산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통영, 고성, 남해로 둘러싸인 내해의 정 중앙에 있는 사량도는 거제나 남해를 빼고는 일대에서 제일 큰 섬이다.
내지항이 보인다.
금새 도착했다. 오자마자 어른들은 차로, 나머지는 걸어서 펜션에 들어갔다. 가까운 거리고 걸어서 풍광 구경도 하기 좋은 날씨였다.
짐을 부리기가 무섭게, 이모부가 준비한 낚시대에 남자들은 한 명 씩 매달렸다.
쪼깨난 남자들도...^^
총 5명이 낚시를 했다만, 결과는...
한 마리도 낚지 못했다. 세월을 낚는다지만 도통 낚시의 재미란 걸 모르겠다. 나와는 안 맞음만 재 확인.
생신이신 주인공은 좀 쉬시고 아랫 것들이 모두 나서서 상을 차렸다.
손주 사위도 사위라고 모두 나보고는 늘 앉아 있어라고 난리다. 하는 수 없이 사진만 찍는다.
처가쪽은 친가, 외가 가리지 않고 다들 말술을 드시는 분들이다. 소주 한 두잔에 대취하는 나를 이해 못하는 게 당연한데, 어쩌랴 생긴 게 이런데...
사진에 보이는 제일 큰 접시가 전부 모둠회.
하지만 상자에서 일부만 꺼낸 게 저만큼이다. 워낙 성격도 좋으시지만, 회에서 만큼은 호방하기 이를 때 없는 처 외삼촌 내외분^^.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회를 먹다가 살짝 일찍 뻗어 버렸다. 그래도 이제는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다. 어렴풋이 윷놀이를 한 것도 같고, 고스톱을 좀 친 것도 같다. 아마 많이는 잃지 않았던 것 같다.
옥녀봉
일찍 일어나보니, 밤에 살짝 내리던 비는 이미 그쳐있었다.
어제 마눌님한테 사량도 산이 유명하다해서 아침에 일찍 오르려 한다니 같이 가겠다 했었다. 우리는 차를 몰고 해안길을 달려 대항해수욕장까지 왔다. 어디로 올라야 할지 전혀 모르는 가운데 지도로 대략적인 위치만 파악하고 나섰는데, 마침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이 도로 옆 산쪽으로 오르는 걸 보았다. 인근에 차량들이 몇 대 세워진 걸보니, 등산로 입구인 듯 했다.
어른들이 찾기 전에 빨리 산행을 마쳐야 한다는 생각에 지도상에서 옥녀봉까지 가는 최단거리를 찾아서 왔었는데, 역시 최단 거리란 가파르다는 의미...
시작도 하기 전에 경사가 사람을 압도한다. 괜히 따라 나섰다는 표정의 마눌님^^
숨은 턱까지 차고, 체감 경사도는 거의 절벽 수준인데 간밤에 내린 비로 흙은 또 장난아니게 미끄러웠다. 몇 번을 넘어진 마눌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올라 주었다.
뒤가 정말 뻥 뚫려있어서 진짜 절벽처럼 느껴진다. 우리끼리 보기 아까운 경관이라 셀카 한 장.
가끔 이렇게 철계단과 데크가 절벽길을 가로 질러 있어서 오를 수 있지, 아님 여긴 절대 등산코스가 될 수 없는 곳이렷다.
마지막 로프까지 잡고 오른 뒤 환호를 지르는 마눌님. 여보, 수고했어~
그렇게 살벌하게 오르면 이런 곳에 당도한다.
이름의 유래는 잘 모르겠고, 여튼 옥녀봉이다.100대 명산이란다. 높이는 고작 281m라고 되어 있지만, 어느 섬이고 간에 섬에 있는 산을 올라 후회할 일은 없음을 또 한 번 증명해 주는 광경이 펼쳐져있다.
기가막힌 하늘다리
옥녀봉에서 섬의 중앙쪽, 그러니까 서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능선을 따라 움직이는데 바로 앞에 바위 봉우리가 보인다. 절경이다.
저기 보이는 봉우리까지 가려면 바위에 바짝 붙어있는 나무데크를 따라 쭉 내려갔다가,
아찔한 로프를 타고 다시 올라야 한다.
건너편 우리가 있던 옥녀봉과 그 옆으로 상도와 하도를 잇는 현수교 공사하는 모습이 보인다. 이제는 완공되어 개통되었다고 한다.
옥녀봉까지의 오르막이 힘들지, 신나는 구간이 계속 이어진다. 어렵사리 로프를 타고 오르고 나면 다음 봉우리까지는 출렁다리.
다리의 한 쪽에는 제법 넓은 데크가 다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높은 곳, 더 이상 위라고는 없는 이 곳에서 간밤 비속에서 텐트를 쳤던 사람들을 만났다. 저 데크 아래는 낭떠러지다. 멋진 인생들을 사는 사람들.
그 분들께 부탁해서 한 컷.
바람이 약간 부는 게 여간 아찔한 게 아니다. 웃고있지만, 한 손은 난간 줄에 걸쳐놓은 두 사람^^
한 손은 절대 뗄 수가 없다.
하지만, 남자 체면이 있지.
저 사진을 찍으면서 "얼른 찍어"를 수없이 외쳤던 듯^^
건너와서 다시 보니... 저 분들 저런 데서 잤단 말인가?
가마봉
출렁다리 다음은 다시 바위 능선을 따라 내리막, 그리고 또 오르막.
경사가 심하지만, 거친 표면 덕분에 그렇게 미끄럽진 않다. 마눌님은 거의 네 발로 올라왔지만.
여기가 가마봉이다. 추측컨데, 바위가 가마솥 뚜껑처럼 생겨서 그렇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반대쪽 경사로 옮겨오면서 바람이 잦아들었다. 저 경사도에서 당당하게 두발로... 이제 간이 좀 부으신 듯.
그러면 뭐하나.
철제 계단이 나타났다. 근데 말이 계단이지 거의 사다리 수준이다. 깍아지른 듯한 경사면에 붙어 있다고 보면 된다. 저기서도 손을 놓고 걷는 사람은 없을 듯.
바람 마저 심해서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다 가렸다.
시간만 허락하면, 불모산, 지리산까지 봉우리들을 따라 쭉 가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사실 시간보다 마눌님의 하얗게 질린 얼굴때문에 더 이상의 산행은 곤란할 듯 했다.
이미 그녀는 옥동 쪽으로 내려가는 데크로 향해 있다^^
상도와 하도 사이는 마치 강물이 흐르는 듯 아주 가까워 보인다.
그렇게 옥동으로 내려와서 사량면사무소 소재지 쪽으로 쭉 도로를 따라 걸어서 다시 차를 세워둔 곳으로 가야 했다.
옥동에서 차를 세워 둔 곳까지는 아주 멀어 보이지만 실제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산에서의 풍광만큼은 아니지만 아기자기한 어촌 풍경 구경에 금새 도착했다.
그렇게 펜션에 오니 벌써 아침 준비를 다 해 놓고 기다리셨다.
남은 생선회(연속 두 끼를 회라니... 이게 천국이다)와 너무 많은 반찬들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선착장으로 갔다. 배 시간까지 조금 남았다고 이모부님께서 다시 낚시를 하자신다. 이맘때 갑오징어가 많이 난다고 루어낚시를 강제로(^^) 시키셨다.
하지만...
역시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거.ㅋㅋ
사천으로
그리고 돌아올 땐 삼천포로 가는 배를 탔다. 이 캠핑의 피날레는 늘 할머니 댁에서 점심을 먹는 걸로 마무리한다.(할머니가 돌아가시고...올해는 그러지도 못 했구나) 그럼 호박이며 야채, 굴 등 할머니가 싸주시는 것들을 잔뜩 차 트렁크에 싣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게다.
사량도에서 점점 멀어지는 배를 따라 갈매기 한 마리가 꽤 멀리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다.
산행을 위해서 일부러라도 오는 섬이라는데, 이렇게 겸사겸사 산해진미에 좋은 구경까지...
이런 처가 행사를 빠질 수는 없는 거다^^
어제 고성 앞바다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삼삼오오 강태공들을 태운 낚싯배가 영화 적벽대전 장면처럼 전술대형으로(?) 쫙 퍼져있다.
선물
할머니는 돌아오는 내내 차량들이 있는 갑판 1층에서 밖을 내다보셨다.
올해 초가을 갑작스레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이번 캠핑(어른들끼리는 '계'라고 부른다)은 처음으로 할머니 없이 가졌다. 하지만 날짜는 늘 하던대로 할머니 생신 근처로 잡았다. 올해는 경기도 사는 우리 처남들도 3년 만에 이 행사에 다 내려올 수 있다고 했는데, 일이 생겨 아무도 오지 못했다.
그래도 아마 내년도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이제는 '형제계'가 된 이 모임은 할머니의 선물인 셈이다.
"저희도 아이들 잘 기르면서,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