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불재] 우리 가족의 마지막 비박

2015.5.2~5.3

by 조운

여행기간 : 2015.5.2~5.3
작성일 : 2016.12.21
동행 : 식구들과
여행컨셉 : 백패킹 비박




간 큰 도전 결행.
연애 때는 한 번씩 산에도 같이 가고 했지만, 그건 전부 당일치기였는데, 이번엔 1박을 하기로 했다. 뭔 생각으로 순순히 응해 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꼬맹이들과의 추억 하나 더 만들자고 꼬시니까 아내도 흔쾌히 승낙. (1박을 하고 다시는 비박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들어야 했지만...쿨럭^^)
장소는 비박의 성지 신불재로 정했다. 친절행님 덕분에 알게 된, 가천리로 오르는 코스가 짧기도 하고 우리집에서 가천리 입구까지 차로 30분 정도면 가니까 딱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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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색으로 된 제1구간 한 가운데 있는 신불재는 가천리로 오르면 2-3시간 정도면 도착 가능하다. 무리한 트레킹보다는 산에서 박을 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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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리에 차를 대고 출발하기 전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한 컷.
이때 시간이 오후 2시 정도였던 것 같다. 느긋하게 점심 먹고 위에서 먹을 거 장 보고 ...
서울 사는 지인과 영남알프스 산행을 한 번 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아직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토요일 새벽같이 KTX를 타고(아니면 금요일 밤 기차로) 울산역으로 와서 버스를 타고 언양까지 온 다음 배내고개를 시작으로 5구간을 1박 혹은 2박으로 종주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러면서 근처에 사는 나를 부러워했었다.
맞다. 이렇게 멋진 곳을 지척에 두고 오르지 않는 게 죄악이다.

그러고보니, 우리 4명 중에서 신불재에 처음 가는 사람은 없다. 지난번 형님들과의 비박때 꼬맹이들을 달고 왔었고, 연애할 때 어딘지도 모르고 올랐던 코스가 위 지도로 보면 5구간부터 1구간까지 였으니 아내도 엄밀하게 따지면 초행은 아니렸다. 그는 "그래?"하며 반문할 정도로 위치감각이 꽝이라 문제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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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코스지만 간만에 산에 오르는 마눌님이 좀 힘겨워 했다. 중간 중간 자주 쉬어야 했고, 오히려 꼬맹이들은 가 본 적이 있던 길이라 먼저 치고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오기를 반복해서 우리보다 더 많이 걸어야 했다.
샘터산장 앞에서 이제 조금만 가면 도착한다고 일렀지만, 시작 때부터 해 오던 말이라 마눌님은 믿지를않았다. 애들은 신불재에 먼저 올라갔다가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 아빠가 오지 않자 다시 내려왔다.
산 능선에서 부는 바람 때문에 기다리다 땀이 식었나 보다. 춥다고 배낭에서 옷을 꺼내 달라했다.

우리집엔 에어 매트가 없다. 관리할 자신도 없고 가격도 비싸서 두꺼운 폼 매트를 둘둘 말아서 다니는데 3장을 챙기자니 배낭 하나로는 불가능했다. 할 수 없이 마눌님도 배낭을 지게 했더니, 좀 힘겨웠던 모양이다.

보통 2시간 정도면 될 줄 알았던 산행이 그렇게 두 배 정도 걸려버렸고, 올라와서는 텐트며 식사 준비며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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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터진 3인용 텐트에서 밥까지 잘 먹고 한 컷. 내 텐트는 가성비로 꽤 유명한 "반고" 제품이다. 백패킹용이라기에는 좀 무거운 3키로 초반 대인데, 꼬맹이들까지 끼어서라도 가족이 누울 수 있으려면 어쩔 수 없이 3키로대의 3인용을 사야만 했기에...

이 날도 주위에 텐트들이 빼곡했는데, 모두들 1키로 대의 백패킹 전용 1~2인용 텐트들만 보였다. 다들 이 무거운 걸 들고 왔냐고 신기해 했다. 비박의 즐거움을 위해서 좀 더 가벼운 단독 텐트를 구비하고 싶은 욕구가 불끈... 이렇게 고생하는 남편을 직접 눈으로 보고 허락해 줄꺼라고 생각해서 극구 마눌님의 동참을 호소했던 것도 있었는데... 마눌님은 이 날 이후 더욱 나의 등산에 대해 부정적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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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자, 마눌님이 한 마디 한다.

이제 뭐해?


그래.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적이 없는 게 우리들 삶이니까.
실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애들은 알아서 놀이를 만든다.
각자 하나씩 준비한 헤드랜턴을 가지고 레이저 광선을 쏘고 있는 우리 둘째. 저러고 놀았다.



화장실이 없다고?

문제는 완연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나서 발생했다.
대부분 우리들과 비슷한 시간대에 텐트를 친 이웃과 달리 야밤이 되자(그래봐야 8시 정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 닥쳤다. 그리고 거의 정 중앙에 텐트들을 세우기 시작했고 8인용 쉘터까지 따로 지었다.
산에서는 아무리 늦어도 10시 이후로는 소등하고 조용히 하는 게 매너인데, 이분들 10시를 훨씬 넘기고도 부어라 마셔라...
누가 누구를 좋아하고 고백을 했니 마니... 알고 싶지 않은 저들의 술안주 내용까지 생생하게 생중계를 해 댔다. 낮에 안하던 운동을 무리하게 했던 마눌님은 잠까지 설치게 되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귀찮지만 텐트 지퍼를 열고 나가서 한 마디를 했다.
대구에서 오신 산악회 분들이라는데 나 보다 젊은 또래들이다. 쉘터에서 어떤 여자분이 나와서 죄송하다고 3일의 종주 마지막 날이라 뒷풀이를 하는데 주의 시키겠다고...
딱 5분 조용하더니 이내 다시 시끄럽게 바뀌고, 이후 다른 텐트에서도 항의를 몇 차례 더 했지만,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았다. 똥매너도 이런 똥매너가 없다.

다행히 그 와중에도 우리 꼬맹이들은 잘 자 주었다.
뒤척이던 마눌님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일어나버렸다.

음... 그게... 여긴 그런 거 없어.


울고 싶은데 빰 맞은 격이라, 치밀었던 짜증이 이제 나를 향할 것은 명약관화^^
화장실도 하나 없는 곳으로 나를 데려 왔냐는 류의 말들이 단어와 어순을 좀 달리하면서 계속 내 귀를 때렸다.
그렇지, 여자들은 소변을 보려해도 남자들보다는 훨씬 불편하지...

둘은 헤드랜턴을 키고 데크를 따라 파래소 쪽 방향으로 한참을 내려갔다. 그리고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의 높이의 땅으로 내려가서는 내가 가지고 간 우의를 펼쳐서 그 안에서 소변을 봐야 했다. 어두워서 마눌님 표정을 잘 볼 순 없었지만,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신불산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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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본데, 눈을 뜨니 어스름한 게 새벽같았다. 시계를 보니 7시나 되었는데, 이상하게 주위가 아직 어둡다. 그리고 텐트 위로 비 떨어지는 소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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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그 흔한 타프도 하나 없다. 맨날 무게를 줄인다는 핑계를 대고 아예 타프는 불필요한 거라고 안 샀는데, 이럴때 좀 아쉬웠다.

아침 식사가 문제였다. 우리텐트는 백패킹용이 아니다보니 작게나마 전실이 있긴 하나, 돔형이라 거기서 조리를 하긴 좀 무리가 있었다. 급한대로 우의를 천장에 연결해서 지퍼를 열고 밥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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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옆으로는 홀로 오신 아저씨 한 분이 싱글월 텐트에 기거하셨는데, 나오시면서 어제 늦게까지 소란스러워서 잠을 못 잤다는 불평을 하셨다. 내가 한 마디 한 이후로도 쭉 그랬다고... 아저씨 텐트가 제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나는데, 전실이 없긴 마찬가지. 아저씨는 아주 가벼운 백패킹을 추구해서 아침은 늘 비상식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조리를 따로 하지 않는다면서 잠시 뭘 꺼내 드시더니 이내 짐을 챙겨서 떠나셨다.
그 옆으로는 부부로 보이는 분들이 타프를 이용해 충분한 조리 공간을 가지고 조리를 하신다. 부러웠다.
실제 실리콘처리된 저 타프는 300~400g 정도 밖에 안나간단다. 그랬구나. 타프도 이제 초경량이 나오고 있구나. 내려가면 당장 하나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겨우 아침을 차려 먹었지만, 좁아터진 텐트에서 비를 피하는 네 명의 꼴이 영...
더구나 어제 고통스런 화장실 경험을 한 이후로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는 마눌님의 저기압이 바깥의 저기압은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고 있고.
해서 산 정상까지 마실을 가자는 애초의 계획에는 남자 셋만 동참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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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비박때도 바람이 너무 차서 정상 코 앞에서 다시 내려왔던 세 부자는 이번엔 우의까지 둘러쓰고 미끄러운 길을 올라 정상을 밟고 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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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번 올랐던 처자는 이제 애 엄마가 되어 저 아래 텐트에서 기다리고 있고, 그때는 없었던 생명이 둘이 늘어 다시 여긴 찾았다. 날만 좋았다면 엄마도 어떻게 꼬여서 상징적인 의미를 부여해 보고 싶었지만, 그래도 이대로 좋았다.

한 시라도 빨리 화장실이라는 구조물 속에서 볼일을 보겠다고 보채는 마눌님 덕분에 우리는 점심까지 먹고 천천히 움직이려던 계획을 포기하고 빗속에서 텐트를 철거하고 하산해야 했다. 온통 진흙탕으로 바뀐 길에 두어번 엉덩방아를 찧은 마눌님은 간단명료하게 선언했다.

다시는 내보고 산에 오자 하지 마라!


어쩌면 우리 가족 전원이 함께 한 마지막 비박은 이렇게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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