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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축제

2015.3.22

by 조운

여행기간 : 2015.3.22
작성일 : 2016.12.1
동행 : 가족들
여행컨셉 : 인근 축제 나들이







부산의 위성도시, 양산?


서울이 중심 도시면, 인근 경기도에 위성도시 격인 도시들이 에워싸고 있다.
서울이야 삼국시대 이래 다양한 황족들이 수도로 삼아왔고, 조선에서는 난을 피해 가끔 왕들이 조정을 버리긴 했지만, 굳건하게 이 나라 수도 자리를 꿰차고 있던 차라, 인근 도시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지리적, 문화적 중심성을 인정해 줘야만 한다.
부산으로 보면, 김해 양산 정도가 될 것 같은데... 김해나 양산은 약간 억울한 면이 없지 않다.
김해는 철기 문명으로 일대를 호령한 가야 황족이 수도를 삼았던 곳이며, 넓은 낙동강 하류 충적토에서 생산하는 식량자원에 기대어 당연히 누릴 만한 지역적 잇점이 있다.
양산 또한 물자와 사람의 이동이 도로가 아닌 강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시기, 상경 통로로 각광받을 수 밖에 없는 지역이고 김해 만큼은 아니지만 물금의 제법 넓은 삼각주에서 상당 규모의 쌀 생산량을 자랑했었다. 부산의 중심지 서면이 실은 양산의 동면 반대쪽에 있던 곳을 이른다는 말이 허튼 소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반면 부산은 사람들이 얼마 살지도 않았다. 농토를 일굴 수 있는 땅이 얼마 없었거니와(과거 식량 운송의 어려움을 고려하면 근방에 논이 부족하다는 건, 대규모 거주지역으로 부적합할 수 밖엔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소규모 가족 단위 근해 어업이 전부이지 않았을까 한다.
당시 배 건조 기술 수준으로 생각해보면, 바다에서의 어업보다는 강에서의 어업이 더 유리했을 거고 부산보다는 김해나 양산이 어업인의 수도 훨씬 많지 않았겠나. 지금이야 화명이나 북구가 낙동강 벨트로 불리는 지역이지만, 개항 전의 부산은 부산포라는 작은 포구였으니.
개항 이후 부산이 대형 선박과 물류의 기착지가 되면서 상인과 거간꾼들을 중심으로 취락 구조가 형성되었고, 어느덧 '농자천하지대본'의 시대가 기울고 상업주의, 물류 파워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자연스레 커지게 되었다. 나도 부산 출신이지만, 부산은 역사와 문화적 토대가 취약하다. (가끔 그걸 개방성과 해양성이라는 장점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뭐든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는 거고, 도시 발달 배경과 도시의 성격이 사는 사람과 문화에 큰 영향을 주지만 그걸 윤리적 가치로 환원하는 건 나도 반대)

어쨌든 과거 양산의 위성도시 축에도 들지 못하던 부산의 규모가 점차 커져가면서,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다. 양산 지자체 선거에서 양산의 부산 통합을 공약으로 내 거는 시장 후보가 나오기도 한다.
양산이 아직은 부산보다 주거비용이 저렴해서 부산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을 위한 베드타운(울산과 부산 사이에 있고, 또 울산 가는 길에 대규모 공단들이 있어서)으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부산에서만 살다가 양산으로 이사 온 지 10년. 나야말로 이곳이 베드타운이다.






낙동강 줄기따라 매화꽃이 이어지고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김해와 마주보고 있는 양산.
일부 농협 공판장에 우리고장 쌀이라는 브랜드로 나오긴 하지만 이제 이 일대 쌀 생산지로서의 가치는 거진 사라졌다. 대신 딸기, 특히 산딸기의 경우 전국 공급량의 60%를 원동이 커버했다. 그렇다고 딸기 재배지가 무슨 거대한 평야의 농장은 아니고 강과 인접한 산 사이의 좁은 모래 땅에 강 줄기따라 길게 농사를 짓고 있었다.
하고있다가 아니라 있었다.
4대강 사업으로 낙동강을 따라 길게 재배하던 양산과 김해의 마주보는 강변 옥토는 제내지(제방 안쪽 땅) 농경 금지로 갈아엎었으며 그 위에 강 수심을 6m로 맞춘다고 퍼 올린 준설토를 덮고는 온통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공원에 캠핑장을 만들기도 하고 최근 야구장도 하나 생겼지만, 전체 이용률은 저조하다. 그런 공원이 강 양안을 따라 안동까지 이어진다고 보면 될 듯. 다 우리의 위대하신 전 대통령 덕이니 뭐...
어쩌다보니 쌀, 딸기가 다 없어져 버린 지금, 강에서 좀 떨어진 산 줄기의 사면을 따라 비탈지게 심은 매실나무가 양산의 자랑이 되어 버렸다.
매화가 필 무렵, KTX나 무궁화호를 타면 양산 구간에서 한 쪽은 낙동강, 한 쪽은 쭉 이어진 매화를 감상할 수 있고, 신대구고속도로를 달려도 저 멀리 천태산 아래 하얗게 핀 매화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급기야 몇 해 전부터 원동 매화축제라는 것이 생겼다고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드타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둔감해서 아직 한 번도 축제 기간에 가 본 적은 없다. 맘만 먹으면 30분에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데도 말이다.






매화 축제? 가기만 해도 성공.

전 해에 매화 축제를 다녀왔다는 선배가 말해줘서 가보자는 얘기를 했지 아니었으면 올해도 그냥 넘겼을 테지. 그 선배왈, 반드시 기차를 타고 가야한다고 했다. 원동으로 접근하는 도로는 산을 돌고 돌아야 하는 왕복 2차선인데 이 시기는 물금역에서부터 이미 차가 가질 않는단다.

우리의 선택은 자전거 + 기차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물금역으로 갔다.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게 질리면 한 두달씩 기차를 이용하는데 혼자서 역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면 보통 20~30분 정도 걸린다. 애들도 있고 하니 1시간 정도로 잡았는데, 생각보다 더 걸렸다. 더구나 스마트폰 앱으로 기차를 예약할 수 없을 정도로 하루종일 만석이라 부득이 역에서 입석을 끊어야 했는데, 와서 보니 입석도 줄 길이가 장난이 아니다.

겨우겨우 표는 끊었으나, 플래폼에 있는 그 많은 사람들 앞에 나타난 기차 문이 열리자 복도까지 빼곡하게 들어선 사람들이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부산역 근방에 사는 사람이면 출발역이니 좀 나을 지 모르나 보통 무궁화호가 물금까지 오는데는 사상, 구포, 화명역을 거치기 때문에 오늘 같이 주말이 낀 매화축제 기간은 물금역까지 오면서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버린 게다. 정말 발디딜 틈도 없이 한 발을 들고 탔다. 그래봐야 한 정거장이니...

혼자라면 자전거를 타고 갔겠지만, 애들을 데리고 원동까지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렇게 여차저차 해서 도착한 원동역. 역에서 내리니 평소 한 번씩 왔던 원동이 아니다.



출처 http://ds5awl.tistory.com/





매화가 워낙 짧게 피는 꽃이라...

이 모든 번거로움은 봄을 기다린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매화가 워낙 짧게 피고 지는 특성때문이다. 꽃만 보러 온다면 굳이 축제 기간이 아니라도 좋건만, 축제기간이 지나면 꽃도 없다는 거.

우리가 축제 마지막날 갔는데, 이미 매화가 절정을 지나 약간 지고 있었다.

우리야 원동역과 초등학교, 마을과 도로가 어떻게 배치되었는지 잘 아는 현지인이지만, 처음 온 사람들은 멀리서 차를 타며 기차로 볼 때와는 사뭇 달라서 좀 실망하기도 한다. 워낙에 비탈진 데다가 온 사방이 매화로 둘러싸인 곳은 몇 군데 없고 이미 사람 수가 나무 수를 넘어 서 있었다.


그나마 가장 넓은 한 농장. 이미 꽃은 많이 진 상태였다.


바람이 불면 벚꽃처럼 다섯장의 꽃잎이 낱낱이 떨어지는 매화가 살짝 둘째 머리카락에 앉았다.


그렇지..
머시마들한테 무슨 꽃구경이랴. 저런 게 더 재밌지^^ 붉은 꽃은 홍매화는 아니고 해당화처럼 보였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나마 나중에 딴 소리 않게 하기위해서 촬칵!!






우리 매화축제에 갔었다이~


빅딜을 통해 겨우 머시마들 붙잡고 가족 사진 한 장 남겼다.


빅딜은 토네이도 감자구이^^

원동 매화축제는 역을 중심으로 마을쪽으로는 본 행사장이 있는데, 이미 행사는 다 끝나 있었고, 마을 중심로를 따라 여러 가게들이 먹거리나 농산물만 내놓고 팔고 있었다.
대충 국수 한 그릇을 먹고, 마을 반대쪽 차도를 따라 오르막을 좀 가면 매실농장들이 몇 개 있고, 축제기간에는 대부분 개방을 하고 있다. 거기서도 매실청이나 간식들을 파는 노점들이 있지만, 워낙 인도가 좁아서 조심조심 움직여야 한다. 허기야 이 기간에 속도를 내며 달리는 차는 불가능이다. 걷는 우리가 더 빨랐으니...

돌아오는 기차는 입석조차 없었다. 얼마 차이는 아니었지만 한 구간 오는데 처음으로 ITX새마을(어디 박정희의 흔적이 없는 곳이 없구나)이라는 기차를 갈때처럼 한 쪽 발만 딛고 타고 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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