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4.26
여행기간 : 2015.4.26
작성일 : 2016.12.21
동행 : 식구들과
여행컨셉 : 마실
관행농을 친환경 농법으로, 대통령 이후 스스로에게 내린 숙제
노무현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고향땅 봉하로 내려온 이후, 봉하마을을 친환경 농업지구로 만들기 위한 노력에 들어갔다. 봉하마을은 지리적으로 화포천과 봉하산을 사이에 둔 기가막힌 위치와 좋은 농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미 농공단지마을이 되어 있었고 오랜 세월 화학농법이 관행이 되어 오고 있던 터라, 땅심도 바닥이 나 있었고, 화포천의 생태는 말이 아니었다.
전 대통령이 농업에 관심을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팔을 걷고는, 실험 단계이거나 실험의 유효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오리농법이나 우렁이농법으로 마을 사람들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물론 우여곡절은 있었다고 들었다. 추위에 약한 우렁이는 겨울이면 몰살해 버리고, 오리들의 분비물은 냄새가 고약해서 마을의 민원대상이 되기도 했으리라. 그 외에도 예측하지 못한 많은 변수들 때문에 지역내 갈등도 만만찮았을 거 같다.
황망하게 그가 가고 난 이후, 유지를 이어야겠다고 결심한 측근들은 모두 농부 코스프레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영농법인까지 만들어서 지금까지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다. 그리고 지독한 악취를 풍기며 죽어있다고 생각한 화포천을 다시 살려 내었다.
황새가 나타났다!
노통과 봉하마을이 그 동안 공들였던 땀의 결실은 이제 연중 가족 단위의 일반 시민들의 참여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지난 번 봉하산 숲체험에 이어, 우리는 화포천의 생태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사진에서 보이는 저 건물은 화포천 생태관이다.
몇 해 전, 70년대 어느 사냥꾼에 의해서 마지막 개체가 사살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려진 황새가 봉하마을에 나타났다.
한겨레 환경전문 조흥섭기자가 암컷인 그 녀석에게 "봉순이"라는 귀여운 이름까지 붙여주었단다.
이 놈이 실은 우리처럼 황새가 사라진 일본에서 10년 넘게 황새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최근 방사한 녀석들 중에 대한해협을 건너 온 녀석임이 밝혀졌다. (우리나라도 일본에 이어 복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고, 아주 최근에 그 중 일부를 방사했다는 뉴스를 본 것 같다) 어미로부터 안전한 장소나 이동 경로를 배운 적도 없는 녀석이 멀리 바다를 건너 온 걸 보면 분명 탕아적 기질 다분한 녀석일테다. 이 질풍노도의 봉순이는 그렇게 1년 가까이 봉하마을에 머물다가 최근 다시 일본으로 건너 간 것으로 확인되었단다. 또 다시 돌아올 지는 알 수 없다.(진정한 탕아니까^^)
내가 황새를 본 건,
재두루미를 촬영하기 위해서 낙동강 구미 구간에서 머물 때였다. 그때 KBS 환경스페셜 권피디님과 촬영팀도 도착했었는데, 고맙게도 촬영을 마치고 내려오는 내게 전화를 걸어 황새를 발견했다고 알려주었다. 실재 황새를 본 적이 한 번도 없기도 했고,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으로 알고 있는 황새를 봤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이미 차를 돌려서 올라가고 있었다.
낙동강 고아 지역 쯤이었다. 한창 4대강 사업이 진행 중인때라 흙길 위로 큰 덤프트럭들이 지나다니는 곳 바로 옆, 유조(부리가 완전하게 까매지지 않았고 노랫다) 두 마리가 물웅덩이 안에 있었다.
나와의 거리는 채 10미터 정도. 아직 어려서 잘 날지를 못하는 건지, 멀리서 날아와 지친 건지, 어디가 아픈 건지...
심지어 그 웅덩이에 있는 물고기를 낚아채는 먹이활동 모습까지 카메라에 담을 수 있도록 허락한 그 놈들... 환경스페셜 피디님의 말씀도 황새의 야생 먹이활동 모습은 공개된 적 없는 희귀한 자료라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서 환경단체 분들이나 전공 학자들이 당장 달려오겠다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수 시간을 보내다 저 멀리 우리에게 길을 비켜라고 빵빵대며 달려오는 덤프차량의 경적소리에 놀라 날아올라 버렸다. 차로 몇 차례 안착 지점으로 다시 가기를 반복하다가 더 이상 쫓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버린 뒤, 아쉽게 돌아왔었다.
어쨌든 봉하에 황새가 나타났다는 기사를 읽고 꼭 다시 만나러 가 보고 싶었다.
황새가 나타났다는 것도 대단한 사건이지만, 그게 봉하마을이라는 것에 놀랐다. 그 더럽던 화포천과 봉하가 황새가 안착할 수 있는 환경으로, 긴 시간을 머물 정도의 먹이 공급처로 확 달라졌단 말인가.
봉하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화포천 중간에 세워진 생태관은 특히, 봉순이와 황새의 이야기에 상당 부분을 할애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접수한 가족들에게 목에 거는 패찰을 나눠주었다. 패찰을 받은 사람들은 자전거를 받을 수 있었는데, 2인용도 가능했다. 그걸타고 마을을 벗어나 화포천을 따라 상당히 내려왔다. 방문했던 날이 너무 좋았다.
마침 하천가에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버들이 한꺼번에 뿜어내는 홀씨들이 온 사방에 날리고 있는 환상적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카메라도 없이 휴대폰으로만 담았더니 사진으로는 무슨 얼룩처럼 나와서 좀 아쉽다.
맨 앞에서 다리를 건너며 안내를 하시는 분은 봉하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마다 안내를 맡아주셨는데, 서울 말씨지만 참 정감있는 말투로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 편안하게 해 주는 능력자였다.
화포천을 이곳저곳 거닐면서 설명도 듣고, 생태관도 탐방하고 봉순이가 지내던 기둥(마을에서 봉순이를 위해서 제작해 준 높은 장대끝의 집. 처음엔 너무 낮아서 봉순이가 찾지 않아 몇 차례 시행착오를 거쳐서 봉순이의 쉼터가 되었다고 한다)도 아직 볼 수 있었다. 매일 만나던 장난꾸러기 봉순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담은, 그야말로 사전적 의미의 마을 솟대였다.
이날 프로그램의 마지막 하이라이트. 색색의 나무구슬과 봉순이를 닮은 작은 목각 고리를 이용해서 각자 자신만의 봉순이 팔찌 만들기.
우리집 네 식구는 한동안 저걸 끼고 다녔다. 별난 아들 놈들이 가장 먼저 끈이 터져 버렸고, 다음으로 내가, 맨 마지막 엄마 꺼는 좀 오래갔던 것 같다. 봉순이는 이미 달아나고 없지만, 저 구슬 알들은 지금도 가끔 대청소할 때 장롱 밑에서 굴러 나오기도 한다^^
다른 무엇보다 아이들이 황새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좋았다.
우리 외에 다른 종에도 관심을 갖고 함께 사는 법을 익히는 게 왜 중요한 지 알게 되고, 놀면서도 세상살이의 가장 중요한 배움을 스스로 깨닭을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죽어버렸다고 생각한 자연은 우리가 대하는 태도가 바뀌고,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시간만 주면 다시 살아난다. 그걸 끝까지 못 보고 먼저 간 이가 참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