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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하마을] 모내기를 빙자한 놀이

2015.6.21

by 조운

여행기간 : 2015.6.21
작성일 : 2016.12.27
동행 : 식구들과
여행컨셉 : 마실








논에서 달리기 경주


봉하에 참 자주 오는 것 같다. 한 번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계속 문자로 다음 프로그램을 알려주기도 하고,
완벽하게 준비된 행사라기 보다는 마치 참여자가 모두 같이 만들어 가는 듯한 재미도 있고,
실제 참여 가족들 대부분이 그런 마인드를 가지고 오는 것도 남다르고,
무엇보다 우리 마눌님이 노통을 참 좋아라하기도 하고...

이번엔 모내기 체험을 한단다. 모 심기엔 좀 늦지 않았나 싶긴 한데, 남쪽땅이니 그런 모양이다.
준비물에 "더러워져서 버려도 될 옷"이 있었는데, 도착하자마자 바로 물 댄 논으로 데리고 갔다. 모내기가 거의 끝난 논들 한 가운데 덩그러니 물만 채운 빈 논이 있고, 군데군데 모를 쪄서 던져 놓아 두었다.

내가 보기엔 그닥 노련하지 않은 듯한 숙달된(?) 조교의 실습과 교육을 잠깐 듣고^^, 모든 가족들이 모내기 줄 앞에 어깨 넓이만큼 촘촘하게 한 줄로 섰다. 보통 반팔 간격이면 적당한데 참여자에 비해 논이 좁아서 그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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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최한 쪽에서 찍어서 홈페이지 올려준 우리 가족 사진

애들에게는 이게 나중에 우리가 먹는 밥이 된다는 게 일단 신기방기.

논에 첨 들어가 보면 누구나 깜짝 놀란다.
예상하지 못한 첫 걸음부터 끝도 없이 푹푹 빠질 것 같은 진흙 바닥에 당황하게 되고, 다음 걸음으로 발을 옮겨지지 않는 것에 또 한번 놀란다. 첨엔 발을 옮기는 것 조차 힘겨워 하던 녀석들이 점점 요령이 생기기도 하고, 또 흙 속에 발이 빠지는 게 재밌기도 했을테다. 신나서 첨벙거린다.
이 모든 걸 예상했다는 듯 프로그램 인솔자는 모를 심기 전에 달리기 경주부터 하잔다.
논 끝에서 끝까지 제일 먼저 갔다 온 아빠에게 봉하 수제 아이스크림 쿠폰을 준다.
아... 아빠들을 향한 애들의 눈빛에 독립운동하러 나서는 대장부의 사명감을 주는 이런 시추에이션이란...
죽어라고 뛰었다. 나만 죽어라고 뛴 게 아니라 결국 2등을 하고 말았지만... 쩝.
그렇게 아빠를 필두로, 엄마, 애들까지 골고루 옷이 이미 만신창이가 되고, 거칠 것이 없는 마음상태가 되어서야 모를 심게 했다. 영리한 행사 진행...
마눌님도 모내기는 처음이라 하는데 우리 가족은 금새 능숙하게 모를 잘 박는다. 나중에 우리가 심은 자리를 기억했다가 정말 잘 자라고 있는지 확인하러 다시 오자는 말에 애들은 지극 정성으로 모를 심는다.


거머리의 추억


내가 우리 둘째 놈 보다도 더 어릴 때,
시골에서 이모들 모내기하는 거 구경한 적이 있다. 쨍하게 찌는 초여름 이모들(엄마 포함 5명)은 하나같이 스타킹을 신고 허리를 굽혀 모줄을 따라 한 줄 한 줄 갈색 바탕에 파란 수를 채우면서 내려갔다. 내겐 절대 들어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농약 살 돈도 없는 깡촌의 빈농이라 흙탕물 속에서 이모들이 발을 옮길때마다 미꾸라지들이 튀어 오르곤 했다. 논두렁에서 심심하게 소일하다 그걸 보고 다리를 걷고 논으로 뛰어 들었다. 어른들한테는 장단지까지도 안 차보이는 물이 내 작은 발이 부드러운 흙을 밟자 푹푹 들어가서는 팬티까지 물이 올라왔다.
이모들이 이래서 들어오지 말라고 한 거구나 생각했지만, 이미 젖어버린 거 어떡할꺼냐고. 그런 거 신경 쓸 나이도 아니고...
미꾸라지를 쫓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데 갑자기 다리가 쓰려왔다. 발도 잘 떼어 놓기 힘들어 어렵사리 아픈 다리를 들었으나 진흙만 잔뜩 묻어있는데, 진흙사이로 피가 흘렀다.
피를 보자 바로 울음을 터뜨린 것 같다. 이모들이 달려와선 나를 달랑 들어 두렁으로 옮겼다. 진흙을 씻어내자 첨보는 이상한 것들이 꼬물거리면서 양 다리에 잔뜩 붙어있다.
이모들이 모두 스타킹을 신고 내겐 논에 들어오지 말라고 한 건 바로 거머리때문이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걸 떼내자 딱 거머리가 붙어 있던 모양을 따라 피가 베어 올라왔던 게 선명하게 기억난다.
결국 미꾸라지는 한 마리도 못 잡고 외려 거머리에게 내가 잡혀 버린 게 모내기에 대한 첫 기억이다.


미꾸라지 잡기


다행히 봉하 논에는 거머리는 없었다.
한창 모내기에 재미를 붙이고 있는데, 금새 끝나 버렸다. 워낙 많은 가족들이 한 번에 붙어서 하니 그렇기도 했고, 주최측이 모내기를 체험할 수 있는 논 면적을 너무 작게 잡은 것도 이유였다. 일당도 없이 모내기를 시킨다는 소릴 들을까 걱정이었을까^^
모내기는 잠깐 하고 또 놀이가 시작되었다. 봉하 프로그램은 학습, 뭐 이런 거 없다. 논다^^. 그래서 좋다.
이미 몸과 마음이 조심성을 상실한 우리들 앞에서 한 드럼이나 되는 물을 논에 붓는다. 미꾸라지며 장어까지 같이 논으로 쏟아진다. 모든 가족에게 양동이 하나씩 지급되고 미꾸라지와의 숨바꼭질이 곧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은 달리기에 이어 미꾸라지 잡기도 거의 꼴지 수준^^
그나마 우리 애들이 미꾸라지를 직접 한 마리씩은 잡을 수 있었고, 나도 30년 전 숙원^^이었던 '논 바닥 미꾸라지 잡기'에 성공한 걸로 만족.

놀고 또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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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꾸라지를 다시 풀어 준 가족, 들고 가겠다고 꽁꽁 싼 가족, 우리가 잡은 세 마리는 많이 잡은 어느 가족에게 줘 버렸다. 진흙을 씻고 정리하는 동안 새로운 놀이가 준비되었다. 느닷없는 림보^^
1등은 예의 그 아이스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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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까지 진출했으나 아깝게 우승을 놓친 우리 애들... 아이스크림이 뭐 길래, 다들 죽자고 덤비는 엄마, 아빠들 ^^
우린 그냥 돈 주고 아이스크림 사 먹었다 ㅋㅋ.

봉하의 프로그램들이 애들하고 즐기기에 참 좋았지만 특히 이번 프로그램은 준비를 많이 했다. 가진 게 많은 화포천의 환경이 그걸 도와주기도 했고.
미션은 물가나 물 속에 사는 생물을 잡아와서 그것의 이름을 달아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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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는 나도 첨 보는데 신기했다. 드렁허리란다. 일명 논장어.
진흙 속을 파고 드는데는 도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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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덩치가 크다. 어류지만 진짜 논바닥에서 만나면 뱀이라 오해할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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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에 붕어새끼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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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보는 장구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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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물방개들. 등에 알을 잔뜩 지고 다니는 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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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갖은 종류의 수생물과 양서류까지 등장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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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강아지처럼 도시에서 이제 흔히 볼 수 없는 곤충들도 아이들 손에 포획되어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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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들이 잡아 온 걸 테이블 가득 전시해 놓고, 아이들에게 맘에 드는 애들을 그리게 했다. 생물을 자세히 관찰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림으로 그려보는 거다. 우리 첫 째는 장구애비를 선택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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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째는 드렁허리를 그리고 있다.


술래잡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망까지 말타기
놀다보면 하루가 너무나 짧아~



이 노래의 제목이 "보물"이란다.

모내기만 하는 줄 알고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이 될거라 생각했는데, 한마디로 횡재했다.
애들 뿐만아니라 가족들 모두의 가슴에 보물을 잔뜩 안고 돌아온 하루였다.


화포천은 한때 썩은 냄새 가득한 죽어가는 하천이었다.

노통이 임기를 마치고 내려와서 주민들과 함께 친환경 농법으로 시작할 때만 해도 아무도 죽어있는 강이 되살아 날 거라고 본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잠깐 사이에 드렁허리까지 만날 수 있는 놀라운 생명의 강으로 다시 태어났다. 봉순이가 날아다니고 물방개가 유유자적할 수 있는, 그리고 봄이면 사방천지 버들 씨앗이 눈이 내리는 것처럼 자욱하게 날리는 곳이 지금의 화포천이다. 살아생전 이런 모습을 보고 가진 못했지만, 아마 그가 꿈꾸던 고향, 어린 시절의 기억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죽인 줄 알았던 생명들을 쳐다보고 미안해하고 더 이상의 부담을 멈추면 다시 살아돌아온다.

그게 강이든 그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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