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9.5
여행기간 : 2015.9.5~9.6
작성일 : 2017.3.14
동행 : 가족 + 마눌님 여친과 그녀들의 아이들 다수
여행컨셉 : 렌터카+수련원
반딧불이 본 적 있어?
기억1
외가나 친가나 다 시골 깡촌이다보니, 어린 시절 방학만 되면 시골에서 지냈던 기억이 생생하다.
온동네를 휩쓸고 다니면서 사고란 사고는 다치는 개구쟁이 시절.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도 반 년마다 휴식월(?)을 원하셨고, 특히 복숭아 과수원을 했던 외가에선 아이들의 손길이 절실했으니 양쪽의 이해와 요구가 맞아떨어져서, 여름방학이면 아예 종업식과 동시에 시골로 급 투입되는 특전사(?) 꼴이었다.
복숭아 나무는 매년 가지치기를 해 줘야 해서, 나무가 아주 크지는 않다. 그러다보니 옆으로 잔가지를 많이 내게 되고 또 그 새 가지에 복숭아가 많이 달렸다. 과실수는 얼추 비슷하리라. 산골에 평지가 그렇게 흔하지도 않고 복숭아는 또 비탈진 임야에서 재배할 수 없는 통에 좁은 땅에 나무들을 되도록 촘촘하게 심어 놓았다. 그러니 수확철에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이 가지, 저 가지의 복숭아를 따내는 일은 어른보다 몸집이 작은 아이들이 효율적이기도 했다.
나 뿐만아니라 비슷한 또래의 외사촌들 모두 여름방학이면 그런 시간들을 보냈었다. 지천에 널리고 널린 흔해빠진 복숭아가 그렇게 비싼 과일인줄도 모르고 어마무시하게 먹어댔던 추억과 계곡 전체에 퍼졌던 복숭아향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다.
달 밝은 밤이면 모기불을 피워두고 늦게까지(그래봐야 한 9시 정도까지지만) 부채 하나씩 들고 담소 나누는 동네 어른들 사이를 뛰어다니면서 작고 빛나는 벌레들을 잡았다. 집집마다 불빛이 없어 캄캄한 공간 여기저기 떠 있는... 꺼질 듯 애처롭게 반짝이다 말다를 반복하는 그 이쁜 광경이란...
나중에야 그 녀석 이름이 반딧불이라는 걸 알게되었다. 중학생이 되어 한문시간에 배운 "형설지공"이 실제 가능할 수 있다는 걸 이미 체험한 사람은 반에서 나 밖엔 없었다.
기억2
이미 포스팅한 바, 신혼여행으로 떠났던 야쿠시마에서 봤던 반딧불이도 남달랐다. 달빛, 별빛말고는 아무 빛도 없는 캄캄한 계곡에 있던 그 거대한 나무와 그 나무가 스스로 빛을 내는 착각을 일으켰던 수많은 반딧불이들. 그걸보고 있자면 하야오 아니라도 코다마를 상상해 내기에 충분했으리라 여겼던 끈적했지만 황홀했던 날의 기억.
https://brunch.co.kr/@baramtago/9
(야쿠시마 신혼여행02- 바다거북의 산란과 반딧불이 계곡_2006.5.29)
무주에 반딧불이 보러 가자~
느닷없이 마눌님이 반딧불이를 보러가잔다. 그것도 무주로...
무주는 한 겨울에 스키타러들 가는 곳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무슨 여름에...
마눌님 친구 남편 중에 무주에서 수련관을 운영하는 분이 있단다. 그래서 그 친구네 가족, 또 다른 친구네 가족... 하지만 어른 남자는 나 혼자...
세 여인과 고만고만한 아이들만 6명.
어쩌다 이런 조합...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갔다. 한 두번 얼굴은 본 분들이긴 하지만 영 어색하게 꿔다 논 보릿자루 마냥 수 시간을 보내고 겨우 무주에 도착했다. 고맙게도 그 남편분(어른 남자^^)이 마중을 나와주었다.
처음 보는 사이지만 어찌나 반갑던지^^
무주 반딧불이 축제 : 무주 예체문화관 일대
무주가 겨울스포츠 천국으로만 알려져있기도 하고, 워낙 때 묻지 않은 고장이다보니 대기 오염으로 이제는 정말 희귀해진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 되어버린 듯했다.
그런 입지 조건을 그냥 둘리 없으니, 해마다 축제를 해 왔던 모양이다.
맨 먼저 들른 곳은 축제의 중심부인 "무주 예체문화관".
수영장을 비롯한 실내체육관과 전시실로 이뤄진 제법 규모있는 문화관은 동선을 따라 각종 곤충 표본이나 실제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곳들이 준비되어있었다.
전체적으로 조명을 어둡게 해 둔지라, 핸드폰 사진은 저 모양이다.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있는 곤충은 역시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류.
직접 만져볼 수 있도록 고안한 아이디어가 괜찮다.
첫째는 사슴벌레 애벌레가 징그럽다고 도망가는데, 우리 막내는 전혀 징그러운 느낌이 없단다.^^
니가 진정 자연인이다~
또 다른 전시관엔 우리나라 민물에서 사는 토종 물고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생김을 다 구분하고 외워보려 했으나 이내 포기했다.
갈겨니, 버들치, 각시붕어, 쉬리, 돌고기... 이름들이 참 이쁘다.
무주가 태권도의 고장이라구?
무주.
고을 주(州)가 붙은 걸 보면, 여기도 한때 교통의 중심이었거나 일대에서 가장 번화한 도회였을테다. 알고보니 태권도의 고장이기도 하다는...
매년 국제 태권도 대회도 열리고...
그러다보니 반딧불이와는 전혀 매칭이 안되지만, 예체문화관에 있는 건물중에는 태권도 대회장도 있어, 뜬금없는 사진놀이도 가능했다는...^^
그렇다고 무주의 무가 와는 武와는 별 상관없는 자를 쓰지만, 태권도가 무(武)술이다 보니 체육관 한쪽에는 무술에서 쓰이는 도구(무기)들도 있다. 정확하게는 우리나라는 무예, 일본은 무도, 중국은 무술이라 한단다. 무를 각기 예, 술, 도로 지칭하는 늬앙스만으로도 각 국의 민족성이랄까 분위기가 살짝 느껴진다. 너무 옆길로 새니까 요 얘긴 이쯤에서...
보통 관 주도의 축제에 가 보면, 그 지역의 특산물부터 축제의 정체성과는 무관한 것들이 잔뜩 준비되기도 하고, 그게 축제의 질을 현저하게 까먹는 경우도 있어서 좀 안타까울 때가 많은데, 여기도 좀 그런 면이 없지 않았다. 전시나 체험의 비중이 반딧불이 관련된 게 대부분이긴 하지만, 이런 이질적인 게 축제를 더 유명하게 하는데 별 보탬이 안되거늘....
그러거나 말거나 애들은 좋아 죽는다는...^^
지 키 2배나 되는 창이나 칼을 들고 한 동안 떠날 생각을 않는다... 라고 하기엔 내가 애들과 더 신나게 놀긴 했다.
체육관 안, 축제와 무관해 보이는 무술, 눈썰매^^ 등등을 뒤로 하고 나오면 파란 잔디밭이 있는 운동장이 있다. 별 다를바 없는 운동장이지만, 스탠드 지붕을 오로지 등나무로만 해 둔 아이디어는 참 멋져서 사진으로 담았다. 심지어 들어가는 입구 위의 지붕도 등나무 덩굴.
운동장과 스탠드를 분리하는 벽 등은 적별돌로 되어 있다. 단위 면적당 경제성만 따지면 아직 콘크리트보다 뛰어난 건물 재료를 개발하지 못한 인류이지만, 이렇게 구운 흙과 식물을 이용한 공공 건축물을 보면 건축가의 고집 같은 게 느껴진다. 축제의 컨텐츠야 관에서 여러 단체와 협업하다보니, 배려해야 할 부분도 있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어서 정체성만 고집할 수 없었겠지만, 공공건축을 이렇게 기획하고 설계안을 통과시킬 정도의 지자체라면... 마인드 상당히 괜찮은 것 같다.
칼싸움(?) 삼매에 잠시 빠져 있던 아이들은 넓은 초록 벌판을 만나자마자 끝까지 달리기 한 판으로 풀 충전된 에너지를 조금 더 발산했고... 실은 엄마들이 부추겼지만^^
벌써 살짝 지친 어른 여인들은 방전량을 조절하며 운기조식^^
역시 엄마들은 노련해~
드디어 만난 반딧불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피해 다른 곳부터 돌다가 사람들이 좀 줄어들자, 우리도 반딧불이를 보는 코너로 가서 줄을 섰다. 줄 서 있는 동안 웜푸드(벌레음식?)라는 걸 시식하는 코너가 있는데, 보기와는 달리 먹어보니 맛도 식감도 좋았다. 자꾸 설국열차가 떠오르긴 했지만서도.
이렇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샤알레에 유충과 성충을 두고 있는 곳과 아예 캄캄해서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야광 스티커를 따라 움직여야 하는 암실 속에서 풀이나 나뭇잎에 붙어 있는 성충들을 보는 곳으로 나눠어 있다.
저렇게 샤알레 속에 있는 반딧불이들과 첫 만남을 가지는 것보다는 자연 속에서 만나는 게 훨씬 감동이 크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긴 했다. 어차피 우린 오늘 밤 실제 야생의 반딧불이를 보러 숲에 갈 예정인데, 혹시나 날씨나 여러 사정으로 못 볼 수 있지 않을까해서 미리 세팅된 애들을 보러 간 건데, 첫 만남이 좀 밋밋해서 밤에 느낄 감동이 좀 반감되지 않았나 한다.
남대천의 낙화 놀이
하루종일 가이딩 해 주는 남편분 덕분에 편하게 여기저기 무주를 꼼꼼하게 돌아보는데...
밤에 남대천 낙화놀이를 절대 빠뜨리면 안된다고 저녁을 먹고도 또 나가잔다.
사는 곳 인근에 낙동강이 있어서 그런지 남대천은 도랑보다 조금 큰 느낌. 강 양안 저수부지를 공원화한거야 뭐, 20세기 유행이었으니 어딘들... 잘 관리된 느낌의 저수부지로 내려가니 잔디밭이다.
낙화놀이는 안동 하회마을의 선유줄불놀이와 유사했다.
스케일이나 경관이야 부용대 절벽에서 하회마을 백사장으로 늘어뜨린 방사형의 여러 줄불에 불을 놓는 장면이 단연 압권이다. 그리고 안동천에 배를 띄워놓고 음악도 연주하며, 줄불에서 불가루가 흩날리는 아래로 뱃놀이(선유)를 하는 이색적인 풍경도 멋지다. 특히 그 마지막에 정말로 거대하게 불타는 건초 더미를 부용대에서 안동천으로 떨어뜨리는 낙화는 건너편 백사장에서도 화기를 느낄 정도로 탄성을 자아낸다.
마을마다 유래와 전승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무주 남대천의 것은 그 중 줄불놀이만을 재현하고 있는데 어쨌든 이름은 "낙화놀이"라 칭했다.
줄불을 처음 본 사람들은 우리 전통의 불꽃놀이가 깜짝 놀랄 정도로 신기하고 아름답다. 화려하지만 짧게 피고 지는 불꽃이 아니라 곱게 부순 숯가루가 조금씩 흩날리며 강물 위로 떨어지는... 그런 불 붙은 한지 봉지 수백개를 한 줄로 이어 놓은 모습은 천천히, 긴 여운을 남긴다.
남대천에서의 밤 풍경 중에 또 하나 놓치면 안되는 것은
반딧불이의 색과 비슷하게 불빛이 든 풍성을 하늘에 띄우는 장면.
풍선에 각자의 소원을 적어, 신호에 맞춰 동시에 날리는데...
우리 꼬맹이들 지들이 갖고 싶은 장난감 이름을 소원으로 적어서 사진으로 남기는 영악한 짓을^^
드디어 신호가 떨어졌다.
천천히 하늘로 오르는 모습이 흡사 반딧불이를 닮았다.
그래, 어린 시절 시골 동네에서 복숭아 노동(?)을 잠시하고 하루종일 개울가에서 놀다가 밤이 찾아오면 벌겋게 익은 살갗의 고통이 시작된다. 그러면 마당이나 아예 문밖에 멍석을 깔고 부채를 부쳐주시는 할아버지나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눕곤 했다. 그때 여린 불빛으로 하늘을 수 놓은 건 별들과 바로 반딧불이들...
우리는 화려하고 웅장한 것들에 탄복하기도 하지만,
작고 미약해서 애처롭고, 그래서 더 이쁜 것들에도 정이 가고 쉽게 감동을 받는다.
밤이고 낮이고 대명천지가 되어버린 21세기에 짝을 만나기위해 작은 몸 속에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짜내어서 제 몸을 밝히는 연약한 반딧불이가 주는 감동은 결코 작지 않다.
그래서 그 반딧불이의 모습을 흉내낸 저 고무풍선들이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밤하늘을 아련할 때까지 쳐다본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 꼬맹이들, 그리도 거기 모인 많은 가족들이 모두...
소망하는 작은 것들을 적어서 날린 각자의 작디 작은 불빛들이 희미해지는 풍경, 그걸 바라보며 자리를 지키는 가족들이 모두 목을 제껴 바라보는 풍경은 눈물 나게 이뻤다.
무주 기행 하이라이트 : 반딧불이의 숲
사진은 없다.
가보면 안다.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반딧불이가 산다는 건 주위가 그 만큼 깨끗하고, 무엇보다 깜깜하다는 뜻이다.
우리는 '마눌 친구의 남편분' 차를 타고 어딘지도 모를 골짜기 초입까지 갔다.
이미 길가에는 대형버스만 수십대. 자가용 차랑 봉고 차량들이 1킬로는 족히 늘어선 것 같았다.
반딧불이의 희미한 불빛을 혹시라도 방해할세라, 차에서 내린 수많은 사람들이 처음 듣게 되는 소리는 조용히 해 달라는 안내원들의 간곡한 부탁.
차에서 내려서는 숲과 계곡을 지나는 흙 언덕길을 걸어야 한다. 안내원들은 몇 십 명 단위로 묶어서 약간씩 시간 간격을 두고 진입 허가를 하고 있다. 아무도 불을 켤 수 없다. 혹 누군가 불을 밝혀도 이내 알아서들 주의를 준다. 풀벌레소리, 산새 소리, 실개천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발 소리만 들리는 길을 따라 귓속말로 소근거리면서 한참을 걷는다.
어느 새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면, 달빛 별빛 만으로도 대략 길의 형체나 가족들의 얼굴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축제위원회 측에서 숲으로 들어설 수 없도록 가이드라인을 쳐 두어서 우리는 집을 찾아가는 양떼처럼 선두 목동(?) 뒤만 쫓는다.
앞에서 한 두 명이 지르는 탄성이 들린다. "저기 있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저기"가 어딘지는 알 수 없다^^. 사방을 둘어봐도 반딧불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또 한참을 걸어들어가면 이미 길 끝까지 갔다가 반딧불이를 보고 돌아오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순간 허공에 작은 불빛들이 보였다 사라졌다 하더니, 갑자기 수많은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장관을 만나게 된다.
워낙 어두운 숲 속이라 그 빛이 사뭇 밝다. 심지어 머리 위에 앉는다. 우리 막내 꼬맹이의 어깨 위에도 한 마리 내려 앉았다.
처음엔 어떻게든 사진을 찍어보려 했으나, 허사였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진은 포기하고 마음에라도 담자는 맘으로 고쳐 먹게되고... 가족들의 얼굴 표정, 꼬맹이들의 미소가 반딧불이의 불빛에 따라 살짝 살짝 보이는 게... 꿈결같다.
분명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환경이었다면 구도를 고민하고 앵글 잡고, 포지션 이동하고... 완전하게 그들의 미소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미소를 박제하는데만 관심을 가질텐데, 오히려 그런 것 없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건 요 근래 경험하지 못한 즐거움이기도 했다.
막내의 손에 앉아서는 좀체 날아갈 생각을 않는 반딧불이 주위로 어디 출신인지, 누군지도 모르는 또래 꼬맹이며, 어른들이 몰려든다. 한참을 그렇게 중력조차 느낄 수 없는 캄캄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숲은 내려왔다.
손등에 앉은 그 녀석은 우리가 숲을 내려와서 주차한 곳 근처까지 왔는데도 떠날 생각을 않았다.
마지막에 다시 하늘로 띄워 보내고서야 자기네 사는 곳으로 날아갔다.
막내는 어두워서 보이지도 않는 그 방향을 향해 한참을 "안녕~"하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