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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 기행] 2. 무주 구석구석

2015.9.6

by 조운

여행기간 : 2015.9.5~9.6
작성일 : 2017.3.14
동행 : 가족 + 마눌님 여친과 그녀들의 아이들 다수
여행컨셉 : 렌터카+수련원







수련원에서의 아침


어제밤 늦게까지 반딧불이와 함께한 꿈결같은 시간의 여운때문인지, 간만에 일상을 벗어난 들뜸 때문인지,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여인들은 여인들 대로 좀체 잠들 생각을 않았다.
졸음을 쫒으며 참다참다 먼저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거실에 쓰러진 세 여인들과 술병들이 비슷한 모양으로 굴러다니고 있었다^^

우리가 묵은 곳은 청소년이 주 대상인 단체 수련원이었고, 우리가 잡은 2층 방은 아주 커서 10명이 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좀 오래되어서 낡은 느낌이 있긴 했으나, 그래서 나무들도 아주 울창하고 그늘도 많고... 부지도 넓은데다 수영장, 캠핑장, 식당, 놀이 체험 시설 등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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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깨울 시간이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조용한 수련원의 아침 풍경을 좀 즐겼다. 대운동장은 오토캠핑장으로도 활용되는 듯 보였고, 청소년 수련시설이라서 그런지 공중 외줄 같은 것들도 보였다. 그리고 한쪽은 제방처럼 되어 있었는데 올라가보니 크지는 않지만, 자연 그대로의 작은 개천이 있고 제방 반대편은 홍수 조절지 역할을 하는 넓은 강수역이 그대로 평야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강 폭(강물이 있는 곳 뿐 아니라 홍수시 차지하는 원래 강의 자리 전체)을 유지하고 있는 곳도 참 오랜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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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숙취로 약간씩 힘들어하는 여인들까지 모두 대동하고 세 가족이 수련원의 캠핑장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나무 사이 여기저기 해먹이 걸려있었다.
아빠가 먼저 누워서 그네놀이를 하니 애들도 태워달라고 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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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섭다 하던 녀석들이 좀 익숙해지자 지들끼리도 신나게 그네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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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혼자서는 움직이질 않으니, 이 해먹 저 해먹 계속 밀어줘야 한다는 거... 헥헥...



머루 와인 동굴


직장이 있어 아이들을 자주 만날 수 없는 '마눌 친구 남편분'은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마눌님의 친구 가족들까지 위해서 이틀간의 풀 일정을 미리 계획했던가 보다.

첫 코스는 무주에서 유명한 와인동굴이란다.
와인에 대해서는 맛도 뭐도 모르지만, 거창,영동, 김천이 포도로 유명하다는 정도만 안다. 모두 무주를 중심으로 이웃하고 있는 곳들이다.
전국에서 유명한 포도가 여기 무주에서 술로 익어가는 모양이다. 와인이라는 게 약간 서늘한 곳에서 숙성을 해야하는 한다는데, 그러기에는 폐광 동굴이 딱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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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는 물레방아에는 이끼가 끼지 않... 어라? 끼네^^
동굴 입구 매표소 인근에는 물레방아며, 포석정(그러고 보니 술과 연관된 우리의 토속적 구조물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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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작지만 실제 머루가가 달린 나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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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머루도 처음 볼꺼다.
시골 외가와 복숭아 밭 사이 개울 길에는 커다란 머루나무가 있어, 지나는 누구나 따 먹었다. 단 게 별로 없는 시골에서 그만큼 달디 단 게 또 없었다. 마치 집과 과수원이 근처인 듯 말하지만, 5리 길이다. 그 거리를 매일 걸어서 왔다갔다 했다. 몇 년 뒤엔 이모가 경운기를 몰아서 그걸 타고 다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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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입구엔 뭘 형상해 놓은 건지 뚜렷하지 않은 큰 상징물이 있다. 아마 동굴을 거대한 입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추측만 해 본다.

동굴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확 느껴진다. 동굴 특유의 서늘하고 눅눅한... 이런 게 와인 숙성에는 좋은 조건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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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벽은 안쪽으로 수납할 수 있도록 좀 파서는 수없이 많은 와인병들로 가득 채워 놓았다.
그리고 연도와 포도 종류, 농장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좀 들어가면 꽤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바(Bar)가 있어서 와인을 시식할 수 있게 해 주고 와인 판매도 한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는데 좀 늦게 나온 마눌 친구 남편분이 와인을 사서는 선물이라고 건네준다. 이거 뭐... 민폐가 이만저만이...


태권도원


점심 전에 한 군데 더 들렀다.
어쩌다가 무주가 태권도의 고장이 된 건지는 몰라도 무주에 왔으니 태권도의 메카라 칭한다는 곳엘 가 봐야 한단다.
바로 "태권도원"
일단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산 한쪽 면을 오롯이 쓰고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큰 공원이다. 경기장을 포함한 부속 건물도 몇 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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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실내 체육관과 태권도 관련 운동 시설들, 기념품 판매 같은 것만 있을 걸로 알았는데, 의외로 우리에겐 "태권V"가 있었구나^^
메인 건물 1층 로비 안쪽에는 태권V만을 위한 공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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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키보다 약간 작은 '오리지널 태권V'가 들숨을 가득 머금은 자세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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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과음은 다 깨신 것 같은데... 우리 마눌님 업 되시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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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태권V 말고도 여러 타입의 진화된 버전 흉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분명 태권V 세대는 아닐 우리 막내는 짐짓 뒷짐까지 지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빠, 난 커서 공룡이 될꺼야" 처럼 또 무슨 황당한 장래희망을 구상 중일런지도...



나제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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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무주에 이런 곳도...라기엔 너무 유명한 곳이란다.
신라와 백제의 경계 역할을 한 산 중간에 구멍이 뚫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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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는 그러니까 당시 백제 땅 변방이었다는 소리고, 저 구멍을 지나면 신라 변방과 만나게 된다는 소리다. 당시 분위기 연출을 위한 군영기가 있다.
수원 화성에서 군에서 쓰는 오방기를 본 적이 있는데, 보통 하나의 군영은 중앙 사령부를 중심으로 동서남북까지 다섯 곳을 군기의 색으로 구분했다 들었다.

사령부에서 배치도를 그릴 때, 남쪽을 바라보고 진을 펼친다 가정하고 그렸으리라. 그럼 좌청룡, 우백호, 납주작, 북현무가 각기 방향과 색을 다 담는 용어가 되는데,
동=남색, 서=흰색, 남=홍색, 북=검은색, 중앙은 황색이다. 중앙이 황색인 것은 중국 문화에서 들어온 게 아닐까 하는 추측도 가능하게 하는 대목.

사진상의 기는 보라네??. 음 대략 주작기로 유추가 되지만 자신은 없다. 기억이 맞다면 빨간색과 파랑색을 섞으면 보라색이 되었는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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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 나제통문이라 적혀 있다. 어쩌다 유일하게 사진상에 마눌 친구 남편분이 잡혔다. 비록 뒷모습이지만^^

암반을 인공적으로 뚫었다니 대단도 하시다 조상님들... 그래 자고로 권력 가진 자들이 나눈 경계가 국경이지 언어공동체에 무슨 경계랴...
우리는 옛 조상들이 드나들었을 저 곳을 통해 건너가 보았다. 비슷한 풍경이다^^. 당연하지... 하다가 일 순간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난 통일 신라 이후 지금까지도 60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기득권 지역인 신라땅(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ㅜㅜ) 어디쯤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신라땅을 벗어나지 않고 살고 있다. 그래서 새삼 여기 무주가 백제땅이었구나 생각해 본다.
모든 옛 신라땅 위에 태어난 사람들이 다 기득권층일리는 없어도, 수탈과 착취, 배제의 역사가 전승된 지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이 영남이나 서울, 경기를 바라보는 느낌과 우리 지역 사람들이 호남을 보는 느낌은 같을 수 없지 않을까?
지방분권, 지역할거주의 극복같은 선거철 유행하는 통합 담론이 아니라, 정말 피로 전승되고 각인되었을 상실감과 우월감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고 저 돌 터널을 경계로 나누어져 있는 지도 모른다.
농기구를 들고 장화 신은 한 초로의 농부가 밭에 갔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저 굴을 통과해 옛 신라 땅으로 간다...




반디랜드


이쯤이면 비록 주마간산이지만 무주를 속속들이 다 훑은 듯 한데, 아직 한 군데 더 가봐야 한단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디랜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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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큰 공원이다.
늘 머시마 두 명만 달고 다니다가 딸래미도 있고 여러 명이니 지들도 신나나 보다. 보기도 좋다.
얘들아, 나중에 커서도 사이좋게 지내길 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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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으로 무주에 반딧불이라도 없었으면 으짤 뻔 했냐 했지만, 자진해서 그렇게 된 거든,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그리 된 것이든 개발의 광풍에서 약간 떨어져 있었다는 건, 어쩌면 행운일런지도 모른다.
이렇게 자연 상태 그대로 두었더니 이젠 정말 부러 찾을래도 없는 반딧불이가 허공에 잔뜩 날아다니는 희귀한 풍경을 맛 볼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 되었으니...
반디랜드도 테마는 곤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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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을 다루는데 어찌 화석이 등장하지 않을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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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반디랜드는 곤충에서 출발해서 자연스레 지구 역사와 생물사를 살짝 맛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다.
실제 만났다면 정말 아찔할 멧돼지들...
최근 산에서 몰래 비박(우리나라에 비박이 허락된 산은 없다 ㅜㅜ)하는 재미에 한창 빠져있는데, 제일 무서운 게 바로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멧돼지다. 아직 비박시 직접 마주친 적은 없지만, 늘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 대학 다닐때, 딱 한 번 영남알프스 산행 중 배내고개에서 간월산 중간 어디 쯤에서 어미와 새끼 3마리를 마주친 적은 있지만, 그땐 단체 산행이라 우릴 인식한 그 놈들이 쏜살같이 언덕으로 도망가서리... 허긴 대낮이었고, 저렇게 덩치가 좋지도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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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맹이들과 엄마들 틈에 낀 얄궂은 형태의 여행이었지만, 즐거웠다.
어느날 갑자기 아빠가 되고나서, 제일 큰 변화는 애들의 꺄르륵 대는 소리가 너무 좋다는 거(폭발 임계점이 좀 올라갔다는 거지, 무조건 좋다는 건 절대 아님^^).
꼬꼬마부터 초등학생까지 정말 귀엽고 에너지가 꼬물대는 그 놈들이 나의 1박2일 반딧불이였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아서, 보고 있어도 아련하고
희미하고 작은 몸짓에 애처롭기도 하고
그렇지만 몸에서 나오는 기랄까, 그게 뭐든 꿍쳐두지 않고 다 발산해도 금새 또 가득 차는,
작지만 무한해 보이는 에너지로 똘똘뭉친 작은 몸
그리고 약하고 작고 희미하지만 최선을 다해 소리치고 뛰고 웃다가 또 금새 콕 잠들어버리는...

반딧불이들과 그 엄마들의 머슴으로 큰 역할은 못했지만, 행복한 1박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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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평소 우리 막내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던, 두 살 아래 저 아가씨는 그새 맘이 돌아섰나보다. 다른 남자가 생겼다면서 "오빠랑 결혼 안하기로 했어" 란다.^^

"우리 막내. 괜찮아~. 쭉 빛을 내다보면 알아 채고 봐주는 반딧불이를 또 만날꺼야"




_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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