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4.17
여행기간 : 2015.4.17~4.19
작성일 : 2016.12.3
동행 : 절친과
여행컨셉 : 미니멀 오토 캠핑
야마네꼬, 삵
이 녀석은 야마네꼬였을까?
우리가 주차장쪽으로 걸어나오면서 만난 녀석이다. 이 녀석이 과연 야마네꼬였을까?
야마네꼬는 대마도에서만 살고 있다는 일종의 삵이다.
나도 살면서 야생의 삵은 딱 한 번 만주친 적이 있다. 해마다 러시아에서 출발해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의 이즈미로 가는 재두루미는 철원에서 며칠 쉬고는, 다시 구미 해평습지로 날아온다. 몇 년 전 재두루미가 내려오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해평습지(지금은 4대강 사업으로 강변 모래 터가 전부 공원이 되었다. 축구장 등 경기장 수십개를 가진 공원이 왜 거기에 그렇게 많이 필요한 지는 명박이 아저씨만 알겠지만)가 있는 낙동강의 해중도에서 잠복을 할 때였다.
만 하루를 기다렸다. 큰 무리의 재두루미가 내려오기 전, 먼저 출발한 선발대 4마리가 날아오는 게 보였다. 그들을 쫒아 낮은 포복까지 하면서 촬영을 하던 어느 덤불에서였다. 하필 요기가 심해서 카메라만 남겨두고 수풀 사이에서 볼일을 보고 있을 때 삵 한마리와 눈이 마주쳤다. 그 놈도 나도 놀라서 한참을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꼬리가 남달리 탐스럽고 고양이보다는 덩치가 좀더 좋았던 것 같다. 귀에 난 털이 특징적으로 보였던 그 녀석은 내가 참았던 오줌을 다 누고 카메라를 다시 들때까지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때 찍힌 걸 보니 수풀사이로 꼬리가 사라지는 장면이 1초 정도 담겨있었다. 그걸로 끝.
야행성 삵이 그날 무슨 일로 거기 나타났을까? 이후 아무리 낙동강을 다녀도 더는 삯을 볼 수 없었다.
어쨌든 저 녁석은 정말 덩치도 크고 꼬리도 삵처럼 굵직했지만 삵은 아닌 것 같았다. 여기 사람들이 야생 생물들에게 아무리 잘 대해준대도(영국에서 전혀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던 기러기나 고니들처럼 말이다) 야생의 삵이면 경계심이 많을텐데 너무 천연덕스럽다. 그리고 털 색깔도 그때 봤던 삵은 노란끼가 많았던 것 같은데 이놈은 검은 계열이다.
그래도 혹시 야마네꼬는 이런 색이지 않을까 하면서 우리는 다음날 대마도야생생물보호센터에서 실제 삵을 볼 때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조선통신사의 자취
오늘 도대체 이즈하라 시내를 몇 번을 오는 건가...^^ 뭐, 차가 있으니.
티아라몰을 끼고 올라가면 쓰시마민속자료관이 있다. 그리고 그 일대는 조선통신사나 우리나라와 관련이 많은 유적들이 여럿 있다. 부산쓰시마사무소에서 받은 핸드북에 보면, 대마도에선 매년 몇 개의 굵직한 축제가 벌어지는데 단연 압권은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이즈하라 축제"라고 한다. 이즈하라 축제는 매년 8월 첫번째 토, 일요일이라고 하니 그때 맞춰서 오면 남다른 눈요기도 겸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본은 마쯔리의 나라니까, 마쯔리를 목숨걸고 준비하고 행하는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사실 일본의 마쯔리는 일본인들에게는 숨 쉴 수 있는 구멍같은 존재처럼 보인다. 만구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평소 사회 순응적인 일본인들에게 공식적으로 일탈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기회가 마쯔리 아닐까 한다. 그런 주기적인 마쯔리가 있기때문에, 개인적 불만이 사회적으로 응축되지 않도록 관리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권력자의 입장에서는 괜찮은 시스템인 거지.
안동 하회마을의 탈놀음 대사는 사회 전복적 요소가 다분하다. 일년에 딱 하루 양반과 야자타임을 갖는 시간을 주고 속에서 묵은 응어리를 토해낼 수 있도록 한다. 다음날이면 다시 반상의 서열 구조에 순응하도록 만드는... 그런 게 중세 위정자들이 잠재적 위기를 관리하는 나름의 노하우 아니었을까 한다.
쇼핑몰에서 얼마 가지 않으면 거대한 성벽을 만난다.
바로 "고려문"이다. 위 사진은 고려문을 들어서서 안쪽에서 찍은 건데 왼쪽 언덕 위에 박물관이 있다.
조선의 마지막 옹주가 이곳에서 원하지 않은 결혼을 했건만 사람들은 그것을 축하한다고 비를 세웠다.
비석을 지나면 가네이시성으로 이어진다. 대마도주(번주)가 살았던 성이다.
지금은 거대한 기초석들만 남아 과거의 성곽은 볼 수가 없지만, 성의 정원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유료라서 패스했지만, 정원을 둘러싼 길을 따라 가면 어른들의 키 높이 정도 밖에 안되는 울타리 너머로 감상할 수는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 반쇼인 정문이 나타난다. 여기도 유료. 정문은 특별한 행사가 아니면 닫힌 채로 있고, 요금을 내면 정문 옆으로 난 쪽문을 통해서 들어가 볼 수 있다. 반쇼인이 대마도의 하이라이트라는 사람들이 많지만 남의 집 구경은 그다지 땡기지 않아서 이것도 패스.
정문 옆으로는 정성스럽게 닦은 돌계단을 따라 언덕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다.
우리도 갔냐꼬?
반쇼인에 돈을 내고 들어간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이다^^. 우리는 저 다리끝 살에 기대어 사진만 찍었다.
하치만구 신사
다시 티아라몰 앞의 버스가 다니는 큰 길까지 나오는 대신 중간 이면도로를 따라 하치만구신사까지 갔다. 오래된 성벽의 흔적과 번잡하지 않은 깨끗한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중간 중간 이색적인 볼거리들도 있다. 이 수동펌프는 사용중인 것 같지는 않지만, 버리지 않고 잘 보존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동네 놀이터에도 이런 게 있었다. 물론 수도가 각 가정까지 다 연결되었을 때이지만, 단수 되는 날이 많았고, 그런 날이면 동네사람들이 양동이를 들고 나왔다. 보통은 우리 또래 애들을 시켜서 빈 양동이와 함께 줄을 서 있게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늘 일이 많고 바쁜 법이니까^^
화강암인지 시멘트가 낡아서 그렇게 보이는 건지 분간이 어려운 오래된 석재 도리이도 만났다.
자전거 라이딩은 무조건 이 도로로 움직이는 게 답이다.
하치만구 신사 조금 못가서 민박집들도 보였다. 이 집을 끝으로 탁 트인 광장을 만날 수 있다.
광장은 아니고 빈 주차장이었다. 4월의 싱그러운 잎사귀를 달고 있는 거대한 수목으로 연결된 계단 앞에는 석재 도리이 하나가 위풍당당 서있다. 저기가 하치만구신사다.
대마도에서 가장 큰 신사.
해태 두마리가 기세등등, 웅장함에 정점을 찍어준다.
평일 대낮에 사람들이 없는 신사를 둘러본다.
규모가 정말 크다.
이 한아름이 넘는 둥치를 자랑하는 나무는 신사의 역사가 짧지 않음을 증언하고 있다.
신사까지 난 계단을 올라 오른쪽으로 보면 본당으로 이어지는 문을 만난다.
문을 들어서면 본당까지 이어진 돌길이 있다. 참 정갈하다.
본당을 들어가기 위해서 모든 신사에는 저렇게 앞마당에 세신을 위한 샘이 있다. 손과 입을 씻어야 한다. 일본어를 몰라도 위에 붙은 그림대로 따라하면 되는데, 그림의 모델은 혹시 "들장미 소녀, 캔디"^^
신사 부지의 규모에 비해 본당의 정면 크기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본당 옆으로 들어가면, '에마'라고 기원을 적은 나무 조각을 걸어두는 곳이 있다. 재밌는 건,
한글이 참 많다는 거다^^
대마무 줄기나 잎에 소원지를 걸어두기도 한다.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문화다.
하치만구신사는 본당 뒤로는 들어갈 수 없도록 막혀있다. 정문을 바로 보지 않고 약간 옆으로 비켜서 보면 정면만 좁아 보일뿐 실제 길쭉하게 제법 뻗어있는 건물의 규모에 놀란다.
대부분의 신사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징으로 보이는데 이건 다음에 방문할 와타즈미 신사에서 다시 한 번 사진과 함께 다루기로 하겠다.
일본 신사는 신이 사는 왕궁이다. 실제 실존인물 중에서 신격화 된 이들이 기거하는 신사도 있지만, 의인화된 신이거나 설화 속 주인공들도 있다. 하치만구신사는 우리나라와도 좀 인연이 있다. 삼한에 임나일본부를 세운 신공황후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우리가 보기에 가공의 인물이지만, 일본 극우들의 입장은 또 모르지... 어느 나라고 자신들의 역사적 우월성을 강조하고 싶은 거니 너무 노여워하지는 않기로 한다. 지구인의 관점에서 보면 그냥 웃긴다^^.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우리 투숙지는 '신화의마을 자연공원' 안에 있는 캠프장인데 차로 갈 건데도 늦을까봐 마음이 조급했다. 이즈하라는 이 정도로 살펴보기로 하고 상대마도를 향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