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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 답사_8 이건 범죄입니다

2015.4.18

by 조운

여행기간 : 2015.4.17~4.19
작성일 : 2016.12.5
동행 : 절친과
여행컨셉 : 미니멀 오토 캠핑






미우다 해수욕장 주차장에서의 비박


해질녘에 미우다 해변 주차장에 차를 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주차장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우린 헤드랜턴을 꺼내 쓰고는 먹고 자는 문제부터 해결했다. 주차장에서 모래사장에 인접한, 지붕이 있는 파고라 같은 게 있어서 벤치와 벤치 사이에 텐트를 쳤다. 바람이 좀 불어서 벤치 다리에 끈으로 텐트를 결박하고 예의 그 우드스토브에 쓸 땔나무를 주워왔다. 바닷가에 떠내려 온 나뭇가지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낮에 사둔 소고기(역시 일본은 싸다^^)에 사케 일잔을 막 시작하려는데, J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서 온 전화다. 뭔가 다급한 일이 아니면 이 시각에 국제전화를 할 리가 없는데...
제수씨 몸이 많이 안좋고 너무 열이 심해서 자칫 만삭의 태아에 대한 걱정까지... 전화기 너머 J의 처형이 안절부절하는 게 다 들렸다. 전화를 끊고 J는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배편을 알아봐야겠다고 했다. 곡's에게 전화도 하고 인터넷도 뒤졌다(나중에 요금폭탄을 맞긴 했지만, 그런 걸 생각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 와중에 휴대전화 배터리는 방전 직전에 이르고, 가지고 간 소용량 충전지 차지 상태도 이미 바닥이었다.

주차장 옆에는 화장실이 큰 게 있었는데,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었다. 여기서 물도 받아서 밥을 짓고 했는데, 혹시나 해서 들어가 확인해보니, 남자화장실 세면대 아랫쪽에 콘센트 단자가 하나 있었다. 비록 110V이긴 하지만 느려도 충전이 되는 게 어딘가.
최종 확인 결과 그날 밤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고, 아침에 들어오는 배를 타고 나가는 것도 예약을 하려면 오전 일찍 선사로 전화를 해야했다. 그리고 J의 집에서는 밤 늦도록 산모의 상태를 알려주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인 게 제일 고통스런 J와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인 나까지.
상황은 내일 다시 체크하기로 하고 우선 텐트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점점 짚어져 가는 파도소리만 커지고 쉬이 잠이 들지 않았는데, 어느새 까무룩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폴리스데스~


J가 부스럭 거리며 일어나는 낌새를 알아채면서 설핏 깬 것 같다. 채 뜨지 못한 눈앞에는 흔들거리며 이쪽을 비추는 랜턴의 불빛이 느껴졌다. 그리고


쓰미마셍. 폴리스데스~


여러번에 걸쳐서 같은 소리를 내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짙은 녹색의 텐트 속으로도 강한 일점 랜턴 빛이 드리우고 있었고, 대답도 하기 전에 지퍼 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온 우리들 앞에는 경찰차 헤드라이트를 배경으로 경찰모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 무전기가 달린 조끼를 입은 경찰 두 명이 서 있었다.
신분증을 요구했고, 우린 여권을 보여줬다. 뭔가를 메모하면서 무전을 하면서 일본어를 하느냐고 물었다. 아주 약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니, 천천히 알기 쉬운 단어만 골라 이야기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언제왔고, 언제 돌아가느냐?"
를 시작으로, 우드스토브를 가리키면서,
"소화는 확실하게 했느냐?"
고 물었고 우리는 끝까지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고 답했다.
"화장실에 있는 충전기는 당신들 꺼냐?"
그렇다고 하니, 당장 뽑아라고 한다. 전화기가 방전이 되어서 필요하다는 어필을 했지만, 이내
"그건 범죄다"
라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엥? 공중화장실에 충전기를 좀 꽂아 놓았다고 범죄 운운은 좀 아닌거 아냐? 공공자산의 전기는 엄연히 국가꺼고 당신들은 그걸 사적으로 유용했다. 그러니 이건 도둑질에 해당한단다.
'우리더러 지금 "도루보"라 그런 거야?'
많이 당황했다. 아는 단어도 들리지 않았다. 도루보(도둑), 한자이(범죄), 한닌(범인) 등 비일상적인 단어들이 그의 입에서 줄줄 나왔다.

이 나이에 남의 나라에서 노숙하다가 이게 왠 날벼락인가?
대마도에 두 번째 왔는데 올때마다 왜 밤에 경찰과 대화를 나눠야 하는 걸까?
마치 담배피다 걸린 고등학생에게 훈계하듯 그는 우리가 점점 알아듣기 힘든 일본어를 더 빨리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좀 구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전화가 왜 그렇게 필요한 지 자초지종을 설명하려 했지만, 역시 딸리는 일어 실력이 당황해서 더욱 안되기만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왜 차 문은 잠그지도 않고 잠을 자는 거냐고 했다. 우리가 그랬나?
그게 범죄를 유인하는 건 줄 모르느냐? 차문부터 잠그고 다시는 전기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엄포를 끝으로 기나긴 훈계는 마친 그들은 차를 몰고 돌아갔다.

멍~~~

한참을 멍하게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도 싶고, 가뜩이나 마음이 편치않은 J는 아픈 마누라가 집에서 끙끙앓고 있는데, 자기는 여기서 이런 망신이나 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가 없었을 거다.
그때는 그랬다. "왠만하면 이게 다 재미지"하는 나조차 모멸감이 들어서 J 보기가 민망했으니...

그래서 어떻게 했나고?
차문 잠그고 충전기 회수해서 다시 잤다 ㅜㅜ
그 개망신을 당하고... 충전은 한 20% 정도 되었더라.

그나마 다행이랄까? 전에 모기하마에서 만났던 그 경찰과는 다른 사람이었다는...




근데 무슨 이런 일이... 7월에 국경마라톤대회에서 다시 이 경찰을 또 만났다는 거 아닌가.
"나를 알아보겠니?"라 물으니, "하이"라는 그 사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자기나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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