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7.5
여행기간 : 2015.7.4~7.5
작성일 : 2016.12.28
동행 : 바다수영동호회 행님들과
여행컨셉 : 대회참가기
국경마라톤 대회장
겨우겨우 일어났다. 야영을 하면 보통 숙취가 없는데, 섞어 마신 술로 머리도 띵하고...
어제 행님들이 인생 뭐 있나?를 외치며 마셔대도 별로 믿지 않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친절행님, 델사누님 부부와 들레누님은 새벽에 미우다 해변에서 수영까지 한 판 하고 와서 샤워까지 깔끔하니 마치고 주먹밥을 만들고 있었다. 헉...
부랴부랴 챙겨서 나갔다. 우리는 10km에 신청을 했기때문에 체크아웃은 뛰고 와서 해도 될 듯해서 대충 정리하고 귀중품만 차량에 싣고 대회장으로 나섰다.
대회 접수 창구는 미우다 해수욕장 쪽의 승용차 주차장 맡은편 대형 버스 주차장에 설치했다. 여긴 아주 넓은 빈 공터인데 대회 참여를 위해서 히타카츠나 다른 곳에서 투숙한 선수들 차를 주차할 수 있도록 조성해 두었다.
예전 초등학교 운동회를 연상시키는 규모의 부스들이 쭉 늘어서 있는데,
한 부스엔 아주 재밌는 기구가 있다.
그 위에 한글까지 표시가 되어 있군.
우리도 신청자 확인을 하고 받은 행운권을 저기에 넣었다.
아직 접수 시간 전이라 한산하지만 막상 개시 후에 다시 와 봤더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올해 700명 정도가 최종 접수를 했다고 들었다.
<국경마라톤 in 쓰시마>만의 매력
늘 조용하기만 했던 미우다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빠글빠글 모이다니.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선수들이 몰려들었다.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각자 마라톤 복을 입고 서 있어서 어느 나라 사람인지 헷갈릴 것 같지만, 거의 정확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뭐랄까? 패션의 유행이 좀 다르다고 해야하나. 마라톤 복장이 짧은 팬티에 간편한 티쪼가리가 다지만, 일본 사람들 중에 상당수는 무릎아래까지 오는 종아리 보호용 실드(정확한 용어는 모르겠지만)를 착용하고 있었다. 아마 한창 유행하는 것이리라. 그에 반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다리는 허전했다는 ^^
마라톤이 시작된 이후의 사진은 당연히 없다. 나도 뛰었으니...
그게 참 아쉽다.
국내 마라톤 대회도 지역별로 어마무시하게 많다. 매주 참여를 해도 겨우 55~6개 정도 밖에 참여하지 못한다. 한 해 개최되는 마라톤은 그 몇 배는 될 것 같다. 그 모든 대회를 다 가 보지는 않았지만, 참여했던 대회는 특징이 좀 있다.
자원봉사자들의 사무적인 태도,
코스 중 전체 도로 점유가 아니라 한 차선 혹은 한 방향 점유,
일반 시민들의 응원이나 반응은 좀 시큰둥... 더러는 차 막힌다고 욕하는 분들도 있다.
반면 대마도의 국경마라톤은 규모는 훨씬 작았지만, 코스에 포함된 도로 전체를 점유할 수 있도록 한 곳이 많았고, 자원봉사자들이 동네 중, 고생들이 많아서 사무적이라기 보다는 숫기 없는 순수함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온 동네 사람들이 거의 다 나와서(할아버지, 할머니가 지팡이까지 짚고) 코스를 도는 동안 아이컨택까지 하며 진심으로 응원해 주었다.
이날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간바레~
주먹을 쥔 손을 내밀며 소리치는 할머니, 초등학생, 아주머니, 아저씨들.
지나가는 모든 선수들에게 하이파이브를 하는 앞치마 차림의 가정주부.
컵에 담은 식수를 채 가다가 엎어버리자 끝까지 뛰어와서 손에 쥐어 주던 여중생으로 보이는 자원봉사자.
마라톤 대회는 그냥 자기와의 싸움이고, 인내를 이겨내고 마지막에 맞게 되는 기쁨이 전부라 생각했는데, 코스를 도는 내내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7km정도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도 나타나고 술 기운도 올라 죽을 것 같았는데, 이런 분들이 중간 중간에서, 일반 시민들도 일하러 가는 길에 외쳐 주는 소리에 저절로 기운이 나고, 좀 더 분발할 수 있었다.
그래봐야 결국 1시간 안에도 들어오지 못했지만^^ (어제 "뭣이 중헌디"를 부르짖던 형님들은 전부 50분 대를 기록했다는... 또 속았다).
행님들도 이구동성으로 국경마라톤 경기 중의 경험을 놀라워한다. 매년 정기 행사로 참여하자는 소리까지... 이제껏 참여한 마라톤 중에 제일 신난단다.
국내 마라톤 대회는 도착하고 나면 완주증과 함께 보통 간식과 메달을 주는데, 여긴 그런 거 없다.
도시락을 준다^^ 딱 점심시간이니까. 그리고 미우다 캠프장 입구 쪽에 있는 "상대마도 온천" 입욕권을 준다. 티켓은 당일만 유효하다.
폴리스와의 재회
내가 마지막으로 들어오고 나서, 땀을 식히기도 전에 행님들 모두 불러모아서는 이후 일정을 제안 했다.
렌터카 대여 시간부터 계산해 보았다(렌트카 사장님이 꼭 24시간만 사용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기에...)
우선, 차에서 수경과 오리발을 챙겨서 수영을 한다.
두번째로, 나눠 받은 도시락을 비우고 온천에서 깨끗이 씻는다.
세번째로, 렌트가를 반납하고 출항 전까지 간단하게 면세점에 들른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카페에서 커피라도 한 잔 한다.
다들 "예써~" 외치고 오리발을 가지러 간다. 대회 몇 시간 전부터 대회가 끝날 때까지 차량을 통제하기 때문에 우리는 아침 일찍 캠프장 앞에 있던 차를 대회장 옆 큰 빈공터로 옮겨 두었다.
인파를 헤치고 막 그쪽으로 가려는데 미우다해수욕장 화장실 앞(지난 포스트에 소개한 바 있다. 바로 여기서 텐트를 치고 자다가 밤 1시에 "[대마도] 답사_8 이건 범죄입니다 (폴리스데스~)"편에서 다뤘던 그 경찰과 만났던 곳)에 서 있는 그를 보고야 말았다.
그때와 같은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고 있는 경찰관.
신기하게도 당시 그렇게 개망신을 당했음에도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행님들한테도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인사를 하러 갔다.
저를 기억하시나요?
내가 자신에게 다가가고 있음을 눈치채고 바로 미소를 보냈던 그다. 그래 그런 강한 임팩트로 만났는데 서로 어떻게 잊을 수 있으리... 기실 몇 달 만의 재회지만, 첫 만남이 유쾌했던 사건은 아니었던지라 둘 다 약간 쭈삣거리긴 했다.
이름을 물었는데, 그새 까먹어 버렸네.
사진이라도 같이 한 장 찍을 수 있을지 물어봤더니, 공무 중이라서 곤란하다고...
짧은 일어로 몇 마디 더 나누다가 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행님들은 신기하다고 난리고...
아, 이제 대마도는 못 갈 듯... 대마도만 오면 무조건 폴리스와 대면을 하는구나. 그도 날 기억하고...^^
성게 조심
미우다의 바다색은 참 이쁘다. 수트도 필요없는 날씨와 수온. 우리는 바로 뛰어들었다. 미우다해변은 양쪽 절벽 사이에 움푹하게 들어온 만의 형태인데 우린 외해와 만나는 지점까지 쭉쭉 들어갔다. 잔잔하던 파도가 제법 거칠어질 즈음 훤히 보이던 바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의 깊이가 되었다.
좋았다.
내겐 이런 순간을 즐기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이불 속에 들어 눕듯이 뒤로 완전히 눕는다. 시야각에 들어오는 건 하늘 밖에 없다. 약간만 고개를 돌리면 눈가 바로 옆에 물이다. 조금 더 돌리면 한 쪽 눈은 물 속, 다른 눈은 하늘만 보인다. 이러고 삼라만상 중에 오직 나 혼자 있는 듯한 생각을 하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미우다에서 출발해서 지구, 태양계, 은하계를 넘어 전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머리 속에 그려진다.
이 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가만 있어봐라.
우린 방금 10km를 뛰고 왔는데, 또 바다수영을 하러 들어온 거? 더구나 일부 행님들은 마라톤 전에도 수영을 했지 않은가. 어제 술도 죽도록 마시고...
완전 20대 청춘이 따로 없다.
원래 사달은 그런 착각 속에서 발생하는 법.
미우다는 해변 중앙에 바위가 하나 있다. 밀물때는 섬처럼 되는데 하필 우리가 노닐 때가 딱 그때였다.
해변엔 마라톤을 마치고 도시락을 먹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앉아 있었는데, 우리만 물에서 노닐던 중, 한명이 저 바위 위로 올라가잔다.
우르르 올라갔지만, 난 그냥 구경만 했다.
그때 올라서서 오리발을 벗고 했던 행님들이 갑자기 외마디 비명을 질러댔다. 한 명이 아니라 모두가.
바위 주변은 온통 성게 밭이 아닌가.
성게 가시는 일단 찔리고 나며 바로 부러져서 피부 밖에선 잘 보이지도 않는다. 고통을 호소하는 행님들 덕분에 바로 철수, 급하게 도시락 먹고 목욕탕으로 직행했다.
목욕탕은 우리 동네에 흔하게 있는 대중탕 수준이라 보면 된다. 어차피 우리나라 대중탕이 일본에서 전파된 문화니까 그럴 것이다. 초반 중국식 욕탕 업소가 들어 오기도 했다는데(중국식은 자쿠지가 달린 각 방에 팀 별로 사용하는 방식이고 객실 말고 따로 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갖추고 있단다) 말그대로 대중성을 확보하기에는 일본식 온천이 훨씬 유용했으리라.
밀려드는 마라토너들 인파 때문에라도 대충 몸만 헹구고 나와야 했다.
차량을 돌려주고 그 집 마당에서 둘러 앉아, 핀셋과 바늘, 칼 등을 이용해서 성게가시를 뽑기 시작했다는...
점점 부풀고 곪아가는 행님들 발바닥이 걱정되었는데, 모두들 다음날 병원에서 전부 제거했단다.
어떻게 고작 1박 2일 동안 이렇게 많은 사건사고를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발도 딛기 힘들어 절뚝 거리면서도 전부 동전파스 사러 면세점엔 갔다 왔다는 거^^
국경마라톤만이 가진 매력과 이런 행님들이 더해져서 이번 대마도행은 즐거운 기억으로 오래 갈 것이다.
실제 2016년은 내가 정신없이 한 해를 보내면서 국경마라톤 기간을 놓치고 말았지만, 언젠가 "바람타고" 이름으로 국경마라톤 참가를 추진해 봐도 좋겠다 싶다. 아마 모두들 만족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