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초능력 영화를 좋아합니다. 인지를 초월한 어떤 것. 상상력의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것은 저를 흥분시킵니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신비하면서도 알 수 없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CG나 연기로만 처리되는 초능력이 어떤 원리로 그러한 효과를 내는 것인지 분석해보면 재밌을 거 같다고요. 그래서 이번에는 영화 속 초능력을 이론적으로 설명해볼까 합니다.
이 영화에는 9종류의 초능력이 등장합니다. 이 초능력들이 어떤 원리로 발현되는지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지만 배역에 따라서 영화 속 비중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어떠한 초능력은 자세히 분석이 가능하지만 반대로 분석이 불가능한 부분도 있습니다.
먼저 무버(Mover)입니다. 설정상 염동력자입니다. 위의 포스터의 주인공의 저 모습이 염동력을 쓰는 장면입니다. 무지갯빛 임팩트가 원형으로 빛나는데 사실상 이 영화에서 액션을 담당합니다. 아니. 액션을 제외하고는 아무 의미 없는 능력입니다. 노름판의 주사위 하나 제대로 굴리지 못해서 빚을 지고 있는 주인공이 어느 순간 총 두 개를 공중에 띄우고 총격전을 벌이더니 나중에는 중간보스랑 대등하게 싸웁니다. 사람을 날려버리고 총알도 막아내는 물리력을 가진 염동력을 사람한테 때려 박았는데도 안 죽습니다. 힘을 키우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고, 힘의 세기에 대해서 설득력이 부족합니다. 사실상 주인공의 액션신을 위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주인공마저도 힘캐가 아니라 지능캐이기 때문에 사실상 설정의 당위성도 없고, 설명할만한 논리도 찾기 힘든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왓쳐(Watcher)입니다. 왓쳐는 말 그대로 미래를 보는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 영화 속의 '시간'에 대해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영화 속에서 시간은 한 방향의 지향성을 가진 선형이며, 마치 영상 콘텐츠와 같은 존재형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영화 속의 1초의 장면이 24 프레임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순간이 수없이 겹쳐서 시간을 만듭니다. 왓쳐는 미래의 어느 순간(프레임)을 캐치해냅니다.
왓쳐의 능력의 강함에 따라 볼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는 듯이 보입니다. 캐시는 중국인 여자 왓쳐가 자신보다 강하며 본인이 볼 수 있는 건 모두 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가까운 미래이냐 먼 미래이냐에 따라서 보이는 정도도 다른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 닉과 캐시가 습격당했을 때 중국인 여자의 시야가 화면에 나왔었는데 짧은 영상으로 등장했습니다. 또한 중국인 여자가 캐시를 찾으며 지하철로 있을 때 캐시의 행동에 따라 펜을 움직이는 장면이 있었죠. 이 두 장면으로 생각해볼 때 먼 미래는 사진에 가깝게 보이고 가까운 미래는 영상으로 보인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전자는 정말 짧은 몇 초의 영상이지만 후자는 캐시를 계속해서 추적하고 있으니까요.
왓쳐의 능력은 사실 미래를 본다기보다는 미래를 시뮬레이팅 하는 능력에 더 가깝습니다. 왓쳐는 위의 사진처럼 그림을 그려서 상대에게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측자가 입에 담음으로써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변화 가능성을 최소로 하기 위해서 그림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관측에 의한 미래의 변화는 많은 콘텐츠에서 등장하는 클리셰입니다. 그렇기에 특별할 것 없습니다. 이 영화에서 특별한 것은 왓쳐가 보는 미래가 관련자들의 의도에 의해서 편집된다는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닉의 마지막 작전을 생각해볼 때 저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닉은 동료들에게 지령을 편지로 전달한 후 자신의 기억을 지웁니다. 그러자 미래가 사라지며 중국인 여자는 미래를 볼 수 없게 됩니다. 닉이 기억을 지우면서 사라진 것은 닉의 의도입니다. 그리고 닉의 행동에 따른 불확실성이 높아졌습니다. 닉의 동료들은 작전의 세부사항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관련한 의도가 없습니다. 따라서 어떻게 행동할지는 매우 불확실합니다. 중국인 여자가 미래를 보는 순간 것은 이 순간입니다. 이 순간 미래를 시뮬레이팅 하기 위한 재료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관련자들이 어떻게 행동할지는 마치 무수한 선택지를 가진 슈뢰딩거의 고양이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가능성은 참이기도 하고 거짓이기도 합니다.
왓쳐의 능력이 강력해지면 능력 시전자가 시뮬레이팅 조건을 임의적으로 편집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캐시모(母)는 캐시가 태어나기 전부터 영화 속의 모든 상황을 보았고 준비하였습니다. 최소 14년 이상을 준비하였으며 관련자도 열명이 넘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을 움직여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몇 사람들을 사전에 움직여서 포석을 두었습니다. 키라가 탈출할 수 있게끔 유리구슬을 떨어뜨린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그녀로 생각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본인 스스로 어떤 시점에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까지도 명확히 시뮬레이팅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다른 두 왓쳐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본인이 원하는 결과로 이끌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뮬레이팅 능력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이 없이 원하는 결과로 이끌어갈 수 있다면 역시 원하는 결과(미래)를 도출하기 위해서 조건을 임의로 편집할 수 있어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다음은 푸셔(Pusher)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푸셔의 능력은 두 가지가 연계되어서 발동합니다. 하나는 기억 편집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시전자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상대적 우위를 가지는 능력입니다. 전자에 대해서 먼저 분석하겠습니다. 앞서 이 영화 속에서 시간은 한 방향의 지향성을 가진 선형이며, 순간이라는 프레임으로 구성된 영상과도 같은 존재형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푸셔는 이 영상의 형태의 기억을 편집하여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집어넣습니다. 하지만 기억 편집 능력은 푸셔의 능력의 핵심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푸셔의 능력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모순 때문입니다. 카버가 키라에게 능력을 쓰면서 닉과는 선착장에서 처음 만났고 그때 능력을 썼으며 닉과의 추억은 키라가 닉에게 쓴 능력이라는 내용으로 기억을 조작합니다. 하지만 기억의 특성상 키라의 기억은 키라의 시점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기억을 닉에게 주입한 기억이라고 키라 스스로 납득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키라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삭제되고 선착장에서 닉과 만났을 당시의 시점의 기억이 추가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카버는 푸셔이지 와이퍼가 아닙니다. 따라서 기억을 추가하거나 조작할 수는 있어도 원하는 기억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푸셔의 능력은 기억을 조작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조작한 기억이 어떠한 모순을 가지고 있든 믿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저는 이 능력이야말로 푸셔의 능력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키라가 능력을 쓰는 상황은 대상으로부터 경계와 혹은 적대감을 느끼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능력이 발휘되는 순간 대상자들은 키라의 말을 끝까지 듣습니다. 그리고 왜곡된 기억에 설득되고, 키라가 원하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심지어 키라가 선착장에서 차를 빌려 타려고 할 때는 언어의 경계마저 넘어서 원하는 행동을 유도해냅니다. 즉, 푸셔의 능력은 인식의 경계를 넘어서 작용하며, 발동 순간 시전자는 피시전자에 대해 상대적인 우위의 상태가 되게 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푸셔 능력의 강화판은 제 생각을 근거를 제공해줍니다. 약으로 강화된 키라의 능력은 눈을 마주하는 순간 피시전자에 대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게 됩니다. 즉, 상대방은 키라의 명령에 따르는 인형과도 같은 상태가 됩니다. 기존의 푸셔가 상대적 우위를 통해서 기억을 조작하고 설득을 하는 과정을 거쳤다면 각성한 키라는 피시전자와 무의식적으로 연결되어 절대적 우위를 통해 일방적인 명령을 내립니다. 여기서 설득의 과정은 불필요합니다. 상대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시선뿐입니다. 각성한 키라는 약으로 인해 푸셔의 능력이 강화된 상태입니다. 따라서 각성한 키라의 능력은 그 이전의 키라의 능력과 어떻게든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각성한 키라는 그 이전과 달리 기억 조작은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푸셔의 능력의 핵심은 기억 조작이 아니라 상대방과 무의식적으로 연결되어 우위의 상태를 기반으로 상대방에게 원하는 행동을 유도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스티쳐(Stitcher)입니다. 사실 스티쳐는 몇 컷 나오지 않아서 자세한 능력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닉이 상처를 치료받을 때 신체의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유기물 내부에 작용하는 능력이라고 밖에는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름을 포함해서 좀 더 추측해보자면 신체 내부에 작용하여 무형의 힘으로 외과 수술과 같은 종류의 물리적 변화를 신체 내부에 발생하게 하는 능력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스니프(Sniff)와 새도우(Shadow)는 연결해서 분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니프의 능력은 원시 주술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주술의 기초가 되는 사고의 원리를 분석해 보면 다음 두 가지로 귀결될 것이다. 첫째는 유사는 유사를 낳는다, 또는 결과는 원인을 닮는다는 것이며, 둘째는 한 번 접촉한 사물은 물리적 접촉이 끊어진 후에도 계속 작용을 미친다는 것이다. 전자의 원리는 '유사법칙', 뒤의 것인 '접촉법칙' 또는 '감염법칙'이라고 부를 수 있다. ......(중략).....두 번째 원리에 따라 주술사는 한 번 어떤 사람과 접촉한 물체에 대해서 그가 행하는 모든 행위는 그 물체가 그 사람 신체의 일부든 아니든 간에 그 사람에게 똑같은 여향을 끼칠 것이라고 추론한다.
- 제임스 프레이져, 황금 가지 주술과 종교 中 p.83
스니프는 위 인용문의 주술의 원리 중 두 번째 원리에 의해 상대를 추적합니다. 개가 냄새를 맡아 추적하듯이 스니프도 대상의 물품을 냄새 맡음으로써 상대방을 추적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접촉법칙에 따르면 물건의 소유자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니프는 물건의 냄새를 맡음으로써 그 대상의 정보를 얻어냅니다.
섀도우는 스니프가 추적할 수 없도록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능력자들과 달리 능력이 대상이 아닌 범위에 작용합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보면 일정 범위 안에서 이능의 연결을 차단하는 것이 섀도우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섀도우의 능력이 강해지면 범위가 넓어지고, 왓쳐의 능력도 차단할 수 있게 됩니다. 앞서 왓쳐의 능력이 관련된 조건들을 바탕으로 결과를 시뮬레이팅 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증거로 사람들의 의도와 결과를 지우자 왓쳐가 미래를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내용을 제시하였습니다. 섀도우의 능력이 강해지면 일정범위 안에 이 상태를 발동시킵니다. 따라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조건이 없기 때문에 시뮬레이팅이 불가능해지면서 섀도우가 지키는 범위 안의 미래를 볼 수 없게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기존의 섀도우가 일정 범위 안에서 사물과 대상과의 연결이라는 우회로를 끊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강화된 섀도우는 능력자와 대상과의 직접적 연결도 끊어낼 수 있게 됩니다.
블리더(Bleeder)는 육성으로 타격을 주는 능력자입니다. 소리는 진동입니다. 진동으로 타격을 주는 방법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물체의 고유 진동수와 같은 진동수로 공명 시켜 물체를 파괴하는 방법과 진동이 가지고 있는 물리력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블리더의 경우에는 후자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유기물과 무기물에 대한 폭력이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시프터(Shifter)입니다. 시프터는 물체를 변환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변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변화시키는 대상이 목표로 하는 대상과 어떤 유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얘를 들어 돈을 주려고 돈을 꺼낼 때 지갑 속에 있는 종이에는 백지에 숫자로 금액이 쓰여 있었습니다. 종이라는 재료와 금액의 동일성이 금액이 적힌 종이를 지폐로 변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비록 시간제한이 있지만 물체를 변환시켰을 때는 목표로 한 물체와 거의 동일한 성질을 가지게 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후크가 변형시킨 구슬을 주면서 에밀리를 찾아가라고 합니다. 에밀리는 후크가 준 구슬이 아닌 본래의 키라의 구슬을 사용하지만 후크는 본인이 바꾼 구슬로도 추적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후크가 변환시킨 구슬은 그냥 구슬이 아니라 '키라의 팔찌였던 구슬'인 것입니다. 사물의 유사성을 활용하여 특정한 개념을 포함한 전혀 다른 물질로 변환시킬 수 있는 능력이 시프터의 능력이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와이퍼(Wiper)입니다. 와이퍼는 기억을 지우는 능력자입니다. 푸셔와는 다르게 직접적으로 기억과 관련이 있는 능력자로, 원하는 기간 동안의 기억을 삭제할 수 있습니다. 다만, 능력의 발동 조건은 대상의 머리에 직접 접촉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술 발동하는 순간이 영화 중 딱 한번 1분 남짓한 시간 동안만 나오기 때문에 원리에 대해서는 분석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상 [푸시]에 등장하는 9개의 초능력에 대해서 분석해보았습니다. 주연을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분석에 차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버는 다시 생각해도 아깝네요. 무버의 설정이 좀 더 치밀했다면 더 재밌는 내용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