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농 빨간약 파는 스페인이 감춘 '그린워싱'의 민낯

스페인의 모순 2화: 지구를 패고 좋은 약 발라주는 나라, 기묘한 보완

안녕하세요, 바르셀로나에서 낭만 대신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읽는 에릭입니다.


지난 글에서 스페인의 문화적·디지털적 자생력 부재를 꼬집었더니, "그럼 스페인은 정말 아무것도 없느냐"는 질문이 돌아왔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스페인은 사실 엄청나게 괜찮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주해서 살고 있고요.


전 세계 축구 팬들을 미치게 만드는 라 리가(LaLiga)의 나라 그중에서도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유럽의 식탁을 책임지는 농업 강국, 그리고 미국 본토의 대형 교량과 고속도로까지 척척 지어내는 건설 괴물 (Grupo ACS)이 바로 스페인입니다.

grupo_acs_cover.jpg Grupo ACS의 Linkedin 이미지
edaaf2b0-c3d1-11f0-bdbe-6f7df1044786.jpg FC Barcelona의 새롭게 단장 중인 캄프누 경기장 (출처: BBC)

하지만 전략가인 제 눈에는 이 화려한 전광판 뒤편의 '꺼진 전등'이 보입니다. 오늘은 스페인의 찬란한 성취와 그 이면에 도사린 지독한 역설을 조곤조곤 밟아보려 합니다.


1. 찬란한 전광판: 스페인이 가진 압도적 무기들

먼저 인정할 건 인정합시다. 스페인의 인프라와 특정 산업은 가히 세계 탑티어입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패션 제국 ZARA가 대표하는 기업 Inditex가 이곳에 있고, 시가총액 기준 유럽 최대 은행 중 하나인 산탄데르(Santander)가 버티고 있습니다. 사실 현대 국가에서 제대로 된 글로벌 은행 하나쯤 있는 건 '자랑'이라기보다 '기본'에 가깝지만, 어쨌든 그 위용은 대단합니다.


건설은 또 어떤가요? 미국 내 인프라 건설 수주액 상위권을 스페인 기업들이 휩쓸고 있습니다. 재생 에너지 분야에서도 전력 생산의 절반 이상을 풍력과 태양광으로 채우며,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 '이베르드롤라 (Iberdrola)'를 통해 전 세계에 청정 전력을 팝니다. 겉으로만 보면 스페인은 이미 미래를 선점한 '친환경 건설 강국'처럼 보입니다.

iberdrola-nueva-identidad-visual.jpg 스페인의 친환경 에너지 기업 Iberdrola

2. 그림자의 역설: 남의 집 지으면서 정작 내 집은 '텅 빈' 나라

자, 이제 화려한 이미지를 프로젝션 하던 이 전광판을 슬쩍 치워보겠습니다. 세계 최고의 건설 기술을 가졌다는 나라의 내부를 보면 참담합니다. 해안가를 따라 발달한 관광지에만 사람이 바글거릴 뿐, 스페인 내륙은 인프라 부족으로 공동화(空洞化)되어가는 '텅 빈 스페인(España Vaciada)'의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인구가 너무 없고 사람이 살지 않아서 이주해서 살면 이주비와 각종 혜택을 준다고 하지만, 인프라가 열악해서 사람들이 이주를 꺼려합니다.

EspDens2.jpg Wikipedia제공 depopulated Spain의 페이지 중 일부. 공동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준다.

남의 나라 공항과 다리는 기가 막히게 지으면서, 정작 자국 내륙의 소멸은 방치합니다. 최고 품질의 올리브유와 하몽을 팔지만, 사실 농업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건 산업 고도화에 실패한 후진국형 구조와 한 끗 차이입니다. 해 오던 것들, 그리고 잘하는 것에만 매몰되어 정작 자국이 썩어가는 곳엔 혁신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관성, 이것이 스페인이 가진 첫 번째 거대한 역설입니다.


3. 패션의 죄악을 에너지로 씻는다? '유기농 빨간약'의 위선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Zara의 '인디텍스'와 '재생 에너지'가 만나는 대목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아시듯이, 패스트 패션은 지구를 가장 빠르게 멍들게 하는 산업입니다. 과잉공급과 과잉 생산으로 인해 환경을 망치고 있고, 만들면 만들수록 더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죠. 소화하지도 못할 물량을 만드느라 폐기되는 옷도 엄청납니다. 패스트패션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인식은 통계적으로 봤을 때 전 세계 의류 생산량의 약 73%가 결국 소각되거나 매립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매초 트럭 한 대 분량의 옷이 버려지는 꼴입니다. 면 티셔츠 한 장에 2.5년 치 식수를 쓰고, 청바지 한 장 만드는데 평균 7,000~8,000 L 정도 쓰이며 이는 성인 한 명이 7년 치 식수인 셈입니다. 게다가 탄소 배출량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하는데 이것은 항공과 해운을 합친 것보다 많습니다. 가장 조금 해서 환경오염계의 대부입니다.


여기서 스페인 특유의 기묘한 논리가 등장합니다. 이렇듯 스페인의 대표기업이 "지구를 흠씬 패 놓고는, 우리가 개발한 재생 에너지로 치료해 주겠다"는 겁니다. 책임감의 일환으로 앞으로 Inditex의 공장은 100% 친환경 에너지로 공장을 돌릴 것을 목표로 한답니다.

198095302-origin.jpg EcoWatch제공 청바지 제조업을 보여주는 사진들


다시 말해 친환경 재생 에너지를 이용해 더 빠르게 환경 파괴적인 옷을 생산하는 구조.

이건 병 주고 약 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사정없이 때려서 피멍을 들게 해 놓고, "내가 발라주는 이 빨간약은 100% 유기농 재생 에너지로 만들었어"라고 말하면 지구가 낫습니까?

안 때리면 빨간약도 필요 없습니다. 과잉 생산이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은 채, 에너지 기술을 면죄부 삼아 "지속 가능한 성장의 표준"이라 자화자찬하는 그들의 모습은 가히 '그린워싱'의 정점이라 할만합니다.

istockphoto-2082016356-612x612.jpg 친환경 에너지를 이용해서 Fast Fashion을 생산하며 지구를 더럽히기

4. 전략가의 시선: 몰락한 귀족의 체면을 어화둥둥 살려주는 법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제게 이 모순은 아주 훌륭한 '비즈니스 캔버스'가 됩니다. 저는 사회사업가가 아닙니다. 이들의 위선을 고치거나 대중을 계몽하는 것은 제가 할 수 없는 일이죠. 그 대신 저는 이들이 만들어놓은 찬란한 인프라와 그 이면의 모순된 소비 심리와 겉치레라는 '판'을 읽습니다.


그들이 가진 압도적인 재생 에너지와 물류 인프라는 활용하되, 그들이 보지 못하는(혹은 외면하는) 내륙의 빈틈과 문화적 '갈증'에다가 미국과 한국의 선진화된 시스템의 '오아시스'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 때려놓고 약 바르는 그들의 기묘한 논리 속에서, 저는 가장 효율적인 '치료제의 유통 경로'를 설계합니다.


스페인, 특히 이곳 바르셀로나는 일종의 '체면치레'가 지배하는 시장입니다. 3화에서 언급했듯, 이들은 실속은 없어도 기품은 잃기 싫어하는 '몰락한 귀족'의 정서를 공유합니다. 통장은 비어있어도 겉모습은 번듯해야 하고, 아류작인 걸 알면서도 고급스러운 포장지에 담겨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제 전략은 명확합니다. 그들의 뒤쳐져 가고 있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모른 척 눈감아주며, "당신들은 여전히 우아하다"라고 어화둥둥 치켜세워주는 것입니다. 인종 간의 보이지 않는 계급과 서비스업의 친절을 적절히 이용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개미들의 허영심을 자극합니다.


결국 핵심은 '그럴싸하게 브랜딩 된 비즈니스'라는 화려한 껍데기 (예를 들어 그린에너지, 친환경, Sustainability, 비건, Organic, 글루텐 프리 등등)을 씌워주는 것입니다. 속 빈 강정 같은 그들의 체면을 살려주되, 뭐 있는듯함을 한 꼬집 뿌려주고, 빈 통장에 위안을 줄 만한 '합리적인 가격표'를 살짝 내밀면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 덫에 걸려듭니다.


혁신은 없지만 동경과 포장은 가득한 이 땅. 선조가 물려준 유산 뒤에 숨어 '지구를 위하는 척' 그리고 '환경에 깨어있는 척'하며 아류작에 열광하는 이 시장이야말로, 전략적인 기획자에게는 가장 확실한 노다지입니다. 저는 오늘도 이 박제된 박물관의 빈틈을 파고들어, 그들의 헛헛함이 깃든 허영을 채워주고 제 실리를 챙기는 가장 영악하고 날카로운 비즈니스 레인을 설계하고 있습니다.

IMG_1177.JPG 바르셀로나의 개선문


[Eric Cha]

바르셀로나에서 '모순의 틈새'를 설계하는 비지니스 컨설턴트이자 Cross-Border Consumer Brand Strate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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