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마켓 노트2 체면을 지켜주는 ‘깊은 쇼윈도’의 경제학
지난 글에서 저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지독하게 얕은 주머니 사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1,500유로 월급으로 집값과 공과금을 내고 나면, 마른오징어에서 물 짜내듯 남은 몇 푼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하는 이들의 처절한 현실 말이죠. 그래서 이 동네에선 '직관적인 먹거리'와 '미친 듯이 싼 것'만이 승리합니다.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가격표를 확인해야 안심하고, 1유로 중고옷에 열광하며, 속재료 모르는 엠빠나다 대신 만두 빚는 퍼포먼스에 지갑을 여는 식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돈이 그렇게 없다면서, 바르셀로나는 막대한 관광 수익을 벌어들이며,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동력으로 소비를 지속하는가?"입니다. 싼 것만 찾고 5유로 한 장 쓰는 것에도 벌벌 떠는 이들의 뇌 구조 안에는 어떤 기묘한 소비 심리가 숨어 있을까요? 현지인들의 지독한 자격지심과 관광객들의 군중심리가 뒤섞인 이 기이한 시장에서, 저 같은 전략가는 어떤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요?
그 해답은 의외로 그들의 주머니 속 '짤랑거리는 소리'에 있었습니다.
1. 전략가의 인사이트: 유로 동전이 만드는 '가짜 여유'
여기서 전략가로서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합니다. 바로 유로화의 특성입니다. 유럽에서는 2유로 까지 (글 쓰는 시점 약 3,500원 정도) 동전입니다. 미국은 1달러부터 지폐고 한국은 천 원부터 지폐인 것과 대조적이죠. 5유로부터 지폐가 시작되는 이곳 사람들에게 동전은 심리적 저항선이 매우 낮습니다.
동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이 2유로 내외인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동전을 쓸 때는 지갑을 열 필요가 없으니 거리낌이 없습니다. 주머니 속 동전을 짤랑거리며 소비할 때는 마치 부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그 이상, 즉 '지폐'를 꺼내기 위해 지갑을 여는 순간, 그들의 소비 세포는 급격히 얼어붙습니다. 가처분 소득이 적은 현실이 갑자기 뇌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거죠. "아! 나 돈 없지"가 깨달아지는 순간인 겁니다.
2. 몰락한 귀족과 유쾌한 구걸인 (거지)의 기묘한 공생
이 '동전 심리학'은 거리의 풍경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3화에서 언급했듯, 스페인 사람들은 실속은 없어도 기품은 잃기 싫어하는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의 정서를 가졌습니다. 자신들도 돈이 없으면서, 자기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구걸인(거지)들을 보며 긍휼히 여기는 체면을 차립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물건도 흔쾌히 쾌척합니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길에 구걸인을 보는 경우, 크라상이나 바나나 같은 먹을 것이나 콜라나 캔맥주 같은 마실 것들을 한두 개씩 나눠주고 갑니다. 그래서 큰 슈퍼마켓 근처에 구걸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주머니 안의 동전을 주기도 합니다. 동전은 지갑을 열지 않아도 되니 기꺼이 하사합니다. 대체로 스페인 사람들이 선하고 타인에게 나이스 하긴 합니다.
구걸인들은 이 심리를 기가 막히게 이용합니다. 구걸하는 컵을 대여섯 개씩 늘어놓고 '유쾌한' 마케팅을 펼치죠. "이 컵은 내 강아지 밥값", "이 컵은 디즈니랜드 갈 돈", "이 컵은 사회저항(?)용". 사람들은 이 위트 있는 구걸에 미소 지으며 동전을 던져줍니다. 자기 통장도 바닥이 보이는데, 구걸인의 꿈(디즈니랜드)을 응원하며 체면을 세우는 이 모습이야말로 스페인 마켓의 가장 신랄한 역설입니다.
3. 깊은 쇼윈도: 수줍은 허영심을 위한 배려
가장 흥미로운 건 현지인들의 이런 심리는 매장 구조에도 반영됩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나이스 하고 자존심이 높으나, 돈이 없는 걸 들키기 싫어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매장에 들어오는 걸 꺼려합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처럼 밖에서 두리번거리며 관찰됩니다. 안에 있는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쓱 가버리죠. 미국인들이 "Let's go check it out!" 하고 들어가서 통성명하고 스몰토크 하는 것과는 상반된 행동이죠. 한국 사람들도 매장에 들어가서 둘러보고 만져보고 하는 정도야 거리낌 없죠. 스페인 사람들은요? 그들이 설령 매장 안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둘러보고 나갈 때는 눈도 안 마주치고 "Muy bonita tienda(매장 예쁘네요)" 한마디 뱉고 도망치듯 나갑니다. 사지 못하고 나갈 때의 찝찝함, 그 자격지심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에는 특이한 스토어 lay out 셋업이 존재합니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매장 면적을 최대한 활용하며, 쇼윈도가 길 전면부까지 바짝 나와 있는 게 일반적인 데에 비해, 스페인의 일부 매장들의 쇼윈도가 매장 안쪽까지 깊숙하게 파고 들어가 있고, 그 깊숙한 안쪽에 비로소 출입구가 있습니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심심치 않게 이 특이한 점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역사가 좀 된 매장일수록 그런 경우가 더 많이 관찰됩니다.
윈도우와 출입문을 전면 배치 해서 매장을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았죠. 위축된 스페인 사람들이 매장 안으로 들어오는 압박을 느끼지 않고 밖에서 마음껏 구경하라는, 옛날부터 내려오는 눈물겨운 '문화적 배려'입니다. 사지 못하고 나가는 것에 대한 자격지심, 즉 돈 없어서 구경하다가 나가는 이의 자존심을 지켜주는 장치인 거죠. 한마디로 말해서, 들어오지 않고서 밖이 아닌 나름의 매장 밖에서라도 부담 갖지 말고 실컷 구경하라 이겁니다.
게다가 멀리서도 보이는 큰 가격표를 보이게 해서 혹시나 가격 보고 놀라서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 예방주사를 놔줍니다. 이렇듯 이곳 상황에 맞게 변화된 공간에서, 번듯하고 고급스럽게 브랜딩 된 인테리어로 치장된 매장 내에 진열된 저렴한 물건들을 Rebajas (할인)까지 해서 팔아야만 스페인 손님들을 만족시킵니다.
결국 바르셀로나 리테일의 승패는 '지갑을 열게 하느냐, 아니면 주머니 속 동전을 꺼내게 하느냐'의 싸움입니다. 지갑을 여는 행위는 이들에게 현실(빈 통장)을 직시하게 만드는 고통이지만, 동전은 여전히 그들에게 '여유 있는 귀족'이라는 환상을 지속시켜 줍니다. 주머니 속에서 짤랑짤랑.
저는 이들의 수줍은 허영심을 비즈니스 설계의 핵심으로 삼습니다. 구걸인이 컵 다섯 개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듯, 99센트 치즈케이크 가게처럼 매장의 진입 장벽은 낮추고 가격의 심리적 저항선은 동전 몇 개면 해결될 것처럼 가볍게 세팅해야 합니다.
Key는 이겁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Tarte de queso (스페인어로 치즈케이크)" 대신 굳이 영어로 "Cheesecake" 또는 "Cake me"라고 영어 상호를 써가면서 외국 브랜딩으로 체면을 세워주고, 그들이 '부담 없이 하사할 수 있는' 가격표를 미리 제안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는 것. 마음씨 착한 귀족의 후예들이 구걸인을 동정하며 동전을 던질 때 느끼는 그 묘한 뿌듯함을 리테일 공간에서 재현해 내는 것. 그것이 제가 오늘도 바르셀로나의 깊은 쇼윈도 안쪽에서 고민하고 있는 비즈니스의 정답입니다.
[Eric Cha]
바르셀로나에서 '짤짤이'들의 지갑을 열도록 설계하는 비지니스 컨설턴트이자 Cross-Border Consumer Brand Strateg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