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마켓 노트 1
안녕하세요, 바르셀로나에서 낭만 대신 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읽는 에릭입니다.
우리는 흔히 바르셀로나를 '황금알을 낳는 관광 메카'라고 생각합니다. 연간 수천만 명의 인파가 쏟아지니 시장이 활활 타오를 것 같죠? 확실한 관광 천국은 맞긴 합니다만 실제 사업판에서 마주하는 숫자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이곳에서 사업하며 느낀 바르셀로나 리테일의 불편한 진실, 그 화려한 착시 현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관광객의 착시: "사람은 미어터지는데 쇼핑백은 어디에?"
람블라스 거리나 고딕 지구를 걷다 보면 어마어마한 인파에 압도당합니다. "와, 여기선 뭘 팔아도 대박 나겠다" 싶죠.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보십시오. 그들의 손에 쇼핑백이 들려 있나요? 전혀 아니죠.
기껏해야 손에 든 건 담배뿐입니다. 그 담배조차 갑으로 사는 건 비싸다고 담배 잎만 사서 길바닥에서 담배종이를 혀로 낼름낼름 침 발라가며 직접 말아 피우는 게 이곳의 문화입니다. 그나마 지갑을 여는 건 철없는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부모님 용돈을 받아서 살고 있는 팔자 좋은 스페인의 10대들뿐이죠.
먹거리 시장도 처참합니다. 한 골목에 레스토랑이 수십 개인데, 경쟁은 피 터집니다. 관광객들은 고딕지구 페트리촐 길의 추로스 가게나, 보른 지구의 싼 감자튀김 집이나 하몽 같은 '저렴한 경험'에만 줄을 섭니다. 나머지는 오매불망 관광객의 발길을 하염없이 기다리다 지쳐갑니다. 바르셀로나 리테일은 '쪽수'의 화려함에 속으면 바로 망하는 판입니다.
제 사무실 옆 레스토랑 주인과 친해져서 얘기를 해 보니, 요식업도 예전 같지 않고 어려워졌다네요. 호텔에 묵는 사람들은 그렇다 치고, 에어비앤비에 묵는 사람들은 원래 조금 저렴하게 묵어보려는 목적으로 에어비앤비를 선택하는 거고, 그런 사람들은 체류하는 동안 레스토랑에서 하는 근사한 외식을 한번 또는 두 번 정도로 자제하면서 간단히 숙소에서 조리해 먹을 것들을 사다가 해 먹는다고 하더라고요. 이렇듯 지역 상권은 어려움을 토합니다.
2. 온라인은? - 배달 강국 코리아에선 상상도 못 할 '하드웨어'의 한계
오프라인 매장은 그렇다 치고요. 온라인은 어떨까요?
미국과 한국은 공급망이 아주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미국에선 아침부터 야심한 밤까지 UPS와 아마존 트럭이 골목골목 박스를 쏟아냅니다. 한국은 새벽 배송이 일상이죠. 그런데 스페인은? 공급망(Supply Chain) 자체가 중세 시대의 물리적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일단 건물의 구조부터가 배달 불가입니다. 부촌이 아닌 이상 관리인은커녕 도어락 번호패드조차 없습니다. 배달원이 오면 호수별로 벨을 눌러야 하는데, 낮 시간에 집을 지키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하죠. 구시가지로 가면 더 가관입니다. 배달 차량 진입이 아예 안 되거나, 아침저녁 딱 두 시간대만 허용됩니다. 결국 배달원은 근처에 차를 대놓고 손수레나 짐자전거에 물건을 옮겨 싣고 골목을 누벼야 합니다. 두 번 배달 실패하면 픽업 포인트로 찾아가야 하니, 그냥 나가서 사고 마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로운 동네입니다.
3. 생각의 한계 - 소프트웨어의 비극: "아마존 박스는 무언의 기부금"
하드웨어만 문제일까요?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입니다. 만에 하나 배달원이 박스를 현관 앞에 두고 갔다? 소매치기와 남의 것 슬쩍하기가 만연한 이 사회에서, 주인 없는 아마존 박스는 "제발 가져가세요"라는 무언의 메시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 건물밖이나 집문밖에 놓고 가지 않습니다.
획기적인 배달 시스템을 도입하느니 그냥 불편을 인정하고 사는 나라. 배달시켜 놓고 불편함을 겪느니, 동네의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Bazar (미국의 $1 store개념)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직접 삽니다. 그래서 동네마다 이런 바자르는 중국인이 꽉 잡으며 성행하죠. 이런 물리적·심리적 결함 때문에 이곳의 이커머스 생태계는 진화의 동력을 잃었습니다. 디지털 혁신을 외치기엔 바닥의 민도가 너무나 '클래식'합니다.
결론: 마른오징어에서 물 짜내기, 바르셀로나 생존의 법칙
자, 정리해 봅시다. 오프라인은 쇼핑백 없는 인파만 가득하고, 온라인은 중세 시대 배달 인프라에 막혀 고전하는 이놈의 '집구석' 바르셀로나. 여기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요?
결국 이곳에서 유효한 소비는 딱 두 가지뿐입니다. 잠잘 곳(호텔)과 당장 걷다가 배고프고 목마를 때 입에 넣을 수 있는 '즉각적인 무언가'.
그래서 바르셀로나에서는 머리 복잡하게 만드는 상품은 무조건 죽습니다. 또한 로컬 사람들은 내용물이 의심스러운 음식에 대한 모험은 잘 안 합니다. 직관적인 먹거리 거나 빠에야처럼 들은 것들이 다 보여야 안심합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처럼 음식이나 음료에 이런저런 옵션 추가해서 먹거나 취향에 따라 대체해서 현지인들은 복잡해합니다. 바르셀로나 같이 인심이 후 하지 않은 곳에서는 얼음이라도 좀 더 달라고 하거나 컵 하나 더 달라고 하면 분위기 싸 해집니다. 단순한 포장에 보이는 게 전부인 추로스나 여름날에 더위를 식혀줄 아이스크림처럼, 직관적이고 즉석 소비가 가능한 것만이 살아남죠.
예를 들어볼까요? 만두같이 생긴 '엠빠나다' 체인점들, 스페인의 대도시 동네마다 깔려있죠? 근데 의외로 줄 서는 꼴을 보기 힘듭니다. 관광객이나 스페인 로컬사람들 막론하고 사람들이 그 안에 뭐가 얼마나 들었는지 의심하며 망설이거든요. 차라리 피자같이 재료가 밖에 나와있는 것은 맛이 예상이 되니까 괜찮죠. 반면 중국인이 하는 'Lady Dumpling (만두 여사 정도의 상호?)' 같은 곳은 굉장히 영리합니다. 매장 전면에 중국인 Lady (아줌마)가 흰 유니폼을 입고 서서 하루 종일 만두를 빚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죠. "내가 지금 먹으려는 게 뭔지"를 눈앞에서 확인시켜 주는 그 직관적이며 명확한 믿음, 그게 이곳 리테일의 핵심입니다.
사실 이 바닥의 생존법을 가장 잘 아는 건 중국 상인들입니다. 이들이 잡고 있는 'Bazar(바자르)'를 보세요. 품질? 그건 뭐. 알아서 상상해 보세요. 먼지 탄 인조꽃(조화)부터 발암물질 나올 것 같은 플라스틱 식기류, 듣보잡 물건들을 산처럼 쌓아놓고 오직 '가격'으로만 승부합니다. "여긴 무조건 4유로 안쪽이다. 비싸봐야 2~3유로"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심어주는 거죠.
패션요? 옷가게도 예외 없습니다. 매장 밖에 '1유로'라고 대문짝만 하게 써 붙여야 겨우 눈길이라도 줍니다. 요즘 바르셀로나에 '99치즈케이크'라는 간판을 건 99센트 짜리 치즈케이크 가게가 왜 유행하는지 이제 좀 감이 오시나요?
여러분, 바르셀로나에 사는 보통 소비자로 빙의해서 냉정하게 계산해 봅시다. 이들은 한 달에 1,200에서 1,500유로 벌어서 세금 뜯기고, 집값으로 절반 이상 나가고, 공과금 내고, 식료품 사고 나면 가처분 소득은 한 달에 고작 몇백 유로 남습니다. 그 얄팍한 주머니를 열게 만들려면, 마른오징어에서 물 짜내듯 치밀하고 잔인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낭만 찾다가 깡통 차기 딱 좋은 동네가 바로 여기거든요.
자, 그럼 이 지독하게 인색한 시장에서 그나마 지갑을 열게 만드는 최후의 보루는 무엇일까요? 다음 회에는 유로 동전의 심리학과 '몰락한 귀족'들이 부리는 마지막 허영의 소비 심리를 아주 신랄하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Eric Cha]
바르셀로나에서 '마른오징어에서 물 짜기'전문가이자 Cross-Border Consumer Brand Strateg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