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물류보세창고에서 면접
어찌저찌 학점을 맞추고 가을 졸업을 했습니다. 취업준비는 해가 시작하면서 시작을 했는데 '졸업예정자'의 신분으로는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졸업을 했습니다. 달라질게 있을까 생각했지만, 눈 뜨면 발이 나설 곳이 없다는게 달라졌습니다. 학교 도서관이라도 가는 스케줄이 없어지니 집에 있거나 동네 도서관, 카페 전전하면서 이력서를 썼습니다.
단순한 행동들이라 생각 했던 일상 패턴이 바뀌고 오롯이 내 의지로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백수라고하죠.
저는 백수가 되었습니다.
백수가 되어도 바쁜 백수와 게으른 백수가 있을 텐데 저는 후자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그냥 눈 떠지는대로 일어나고 새벽까지 이력서를 쓰다 머리도 식힐 겸 게임도 한판 하고 이게 반복이되니 사람이 많이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대화를 나눌 사람도 적고 활동도 적으니 사람 자체가 에너지가 그러니까 생기가 많이 없어지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이력서를 넣는 만큼 면접을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씩 면접을 보게 되고 또 큰 회사들은 여러 전형을 넘듯 1차, 2차 면접을 보는데 첫 취업 전에 2차 면접을 연달아 떨어졌습니다. 3-4달 사이 면접 준비와 이력서를 쓰며 2차 면접을 연달아 떨어지니 안 그래도 생기가 없던 인간에게 절망을 짊어 준 격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허탈해 하고 있을 때 1살 터울 사촌형이 본인 회사에 사람을 뽑는데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습니다. 사실 사촌형에게 말한 적은 없지만, 당시의 저라면 이력서도 넣지 않을 만한 회사였습니다. (종합물류사 평가로 약 30위 안에 들어 내실 있는 회사) 회사가 문제가 있기보다는 제가 마지노선으로 생각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기준이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기업분석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던 때라 제가 생각하는 기준은 서울에 있는 회사인지 규모가 큰 회사인지 정도만 구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사촌 형의 제안이니 한 번 면접을 봤고 고민하다 취업을 결정했습니다.
당시 면접 기억은 그렇습니다. 회사는 용인시 처인구에 물류센터가 많은 백암 쪽에 위치했습니다. 저도 집이 용인인데 같은 용인을 50분 정도 걸려 간다는게 너무 멀게 느껴졌습니다. 대중교통은 탈 수 없고 오직 자차로만 출근을 할 수 있는 회사였습니다. 도착하니 지게차들이 쉼없이 돌아다니고 큰 컨테이너 안에서 수많은 화물들을 하역 작업하고 현장감이 눈으로 들어오는 생기있는 현장이었습니다. 물론 현장이라 많이 낡고 부서져 거미줄 처진 사무실을 보며 을씨년 스러웠지만, 보세화물을 운영하는 업무기 때문에 수입화물에 대한 업무라 생각하고 간간히 수강했던 국제물류학 수업이 떠올랐습니다.
면접은 간단했습니다. 저의 팀장님이었던 과장님과 1:1 면접을 했고 평범한 면접 질문들이었습니다. 당시 여러 전형의 면접과 인적성 검사 심지어 독서면접, 토론면접, 발표면접, 등산면접까지 겪은 저였기에 면담 같은 미팅은 너무 쉬웠습니다.
지원동기가 무엇인지, 본인의 장단점이 무엇인지와 같은 준비 가능한 질문들이었고 오히려 당시 팀장님이 중소기업을 작게 생각하는데 본인과 대기업에 입사한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처우 등이 차이가 나지 않으니 열심히 오래 다녀보라는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게 맞는지 검증은 안되지만 조금의 위안을 얻고 돌아가는 길에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회사 위치나 물류창고 컨디션을 본 후로 일을하는게 맞는 건지 스스로 의문을 가졌었고, 너저분한 사무실, 회의실 의자는 다 터져서 솜이 삐져나왔는데 사소하지만 관리가 안되는 회사 느낌을 받아 취업을 안해본 저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반면 회사생활을 시작하면서 물류, 특히 국제물류 한 부분에서 일을 배워가면 나중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교차되며 오히려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회사 속 근무경험 다음 편에 써보겠습니다.
첫 직장에서 반년정도 지내다 찍은 사진입니다.
위장사무직이라고 한 이유는 사진과 보다시피 화물에 올라타고 있는 저를 발견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