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과 활자,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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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지해

한 달에 한 번 서점 가기


아내가 위인 전집을 샀다. 얼마 전에는 전래 동화 전집을 샀는데, 이번에는 한국ㆍ세계 위인 전집이다. 지율이 5살 즈음부터 하나씩 하는 일이 있다. 매 달, 3번째 일요일에는 서점에 가기. 서점에 가면 지율이에게 책 한 권을 고르라고 한다. 책만 고르라고 하면, 서점 가기를 싫어할 수 있기에 장난감도 하나 고를 수 있도록 한다.


서점 문을 들어서자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책 향기가 분분히 났고, 걸음을 옮기자 커피 향기도 서서히 코로 들어왔다. 초입에는 음반들을 팔고 있다. 음악 소리는 흐르는데, CD의 향취는 없다. 예전의 음반 판매점에서는, 레코드판과 카세트테이프의 냄새가 떠 다닌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음반에는 냄새는 없고, 차가운 금속성의 은색만 떠오른다.


오감(五感)이라고 말하는데, 후각(嗅覺)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것 같다. 개별적인 냄새를 맡으면, 특정한 시간과 기억으로 끌려 들어갈 때가 많다. 시각(時刻)과 청각(聽覺)의 경우에도 과거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지만, 후각은 그때의 기억만이 아니라 감정까지도 되살아날 때가 많다.


눈으로 인터넷 사이트에서 음식물을 볼 때보다, 길거리에서 맡게 되는 강력한 냄새가 식욕을 자극할 때가 많다. 음반을 파는 곳에서부터 걸음을 옮긴다. 구역별로 시ㆍ에세이ㆍ소설ㆍ잡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걸어가니, 문구점과 장난감 코너가 나왔다. 지율이가 가장 좋아하는 곳.


“지율아. 장난감 먼저 고르고, 책도 고르자.”


장난감을 고른 후, 바로 나가 놀려 하지만 안 된다. 서점에서 최소한 30분은 있는다. 서점 안에서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지만, 여러 책들을 구경하는 시간을 가지길 바란다. 이 책 저 책을, 서점의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하면서 책들과 친해지길 바라는 30분이다.


책들과 친해질 수 있는 장소로 도서관도 좋을 것 같지만, 도서관은 ‘침묵’이 전제되어야 하는 곳이다. 아이라도 떠들면 안 될 것 같은 장소. 서점은 음악도 흐르고, 사람들도 오고 가고, 조그마하게 떠드는 것 정도는 용인될 것 같다.


지율이는 소유욕이 강한 아이다. 사는 것을 좋아한다. 차를 타고 여행을 갈 때, 도로 위의 휴게소는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먹을 것을 사 먹고, 놀 수 있는 거리가 많은 곳임을 지율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빠, 이것 봐. 소떡소떡이야. 이거 사 줘.”

“응. 그래, 두 개 사서 지아랑 하나씩 먹자.”

“아빠, 여기 농구 게임 있어. 농구 게임하고 가자.”

“지율아, 너 농구 잘 못 하잖아. 그냥 가자.”

“싫어, 하고 싶단 말이야. 이거 재미있다고.”

“농구 언제 친구들하고 해 봤어?”

“아니, 친구들이 이거 있다고, 재미있다고 말했단 말이야. 나도 해 볼래.”

“알았어. 휴. 해 보자.”

농구 슛 게임이든, 두더지 게임이든 꼭 해 보고 지나가야 한다.


“아빠, 이제 편의점 가자.”

“방금 소떡소떡 먹었잖아. 또 먹으려고?”

“음료수 먹어야지. 뽀로로 야구 음료수 먹어야지. 지아도 좋아하잖아.”

뽀로로가 야구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 어린이 밀크 음료다. 밀크 음료라고 쓰여 있으나 정확히 어떤 재료가 쓰였는지, 어떤 맛인지는 알 수 없다. 앞으로도 내가 마실 일은 없을 테니, 그 맛을 영원히 모를 것이다.

“그래. 알았다. (하아~)가 보자.”


무엇이든 사는 걸 좋아하는 녀석이라서, 떠들기를 좋아하는 아이라서, 도서관보다는 서점이 그나마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지율이와 서점엘 간다. 조만간 지아가 6살이 되면, 지아와 지율이 셋이서 서점을 가겠지.


아내에게는 잠깐의 휴식을 주고, 아이들은 조금씩 책과 친해질 수 있다 믿는다. 혹 알까. 아이들이 중ㆍ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장난감이 아니라 책을 한 권 더 고르게 될지. 그리고 그 책이 ‘데미안’이나 ‘햄릿’ 같은 고전이기를 살짝 꿈꿔 본다. 지금 고르는 책은 ‘엉덩이 탐정’이지만.


YouTube


초등학생 장래희망의 높은 순위에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이 있다. 유튜브를 찍어 올리면, 많은 사람들이 본다. 사람들이 찾는 조회수가 많으면, 영상 사이에 광고를 삽입하여, 돈을 버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5만 명 정도가 자신이 찍은 동영상을 구독하면, 광고들이 붙어 수익이 난다.


‘먹방’, ‘게임 방송’, ‘일상사’ 등을 찍고 편집하여, 사이트에 올리면 여러 사람들이 유튜브를 본다. 많은 사람들이 찍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보고 있다.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이 지율이다. 8살 지율이가 살아갈 세상은, 이미 그러하지만, 인터넷과 첨단 기기들이 실생활에 적용, 활용되는 세상이다. 어린 지율이가 컴퓨터를 만지는 것이나 스마트 폰 다루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4살도 안 되었을 때, 스마트 폰을 터치하고, 태블릿 PC를 켜고 끄는 것을 보고 놀라워했다. 놀라다 보니, 스마트 기기 사용에 대한 통제나 억제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지율이는 유튜브 영상 보기를 즐겨하는 아이가 되었다.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을 떠나 지율이는 영상을 많이 보았다.


밖에서 뛰어노는 것도 좋아하지만, 실내에서 컴퓨터와 노는 것도 좋아한다. 처음에는 하루 30분 이용하던 것이, 1시간, 2시간, 점점 시간을 늘려가며 사용한다. 엄마 아빠에게 스마트폰을 보여 달라 떼를 쓰는 일이 많아졌다.


그리하여 집에서 태블릿 PC와 텔레비전을 없앴다. 부모들 역시 핸드폰 보는 일을 최소화했다. 스마트 기기를 보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은 기기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선택했다.


오대산 월정사


오대산 월정사를 좋아한다. 육아휴직 후, 가족이 함께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걷는다. 지아가 만 3살이 되니, 편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행 짐이 가벼워졌다. 언제 옷에 실례를 할지 몰라, 1박 2일 하더라도 여벌 옷을 열 벌은 챙겼었다.


기저귀를 챙기고, 팬티를 챙기고, 물티슈를 챙겼다. 유아식을 먹어야 할 때, 그 이전에 분유를 먹어야 할 때에는 짐이 더욱 많았었다. 만 3살의 지아는 대소변 실수를 많이 줄이고 있다. 적어도 월정사를 걷는 2~3시간 동안은 걱정 없이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아빠, 저 사람들 맨발로 걷는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이야. 지율이 어렸을 때, 한 번 와봤는데, 기억 안 나지?”

“기억 나.”

“그래. 기억나?”

“응. 기억나.”

“그때, 지율이도 맨발로 걸었다.”

“정말?”

“응. 여기는 사람들이 맨발로도 편히 걸으라고 만들어 놓은 길이야. 아빠도 이제 맨발로 걸어야겠다.”

“나도. 나도. 맨발로 걸을래.”


지율과 함께 발로, 흙길을 걷는다. 차가운 흙의 감촉이 발바닥 전체를 따라 올라온다. 흙의 부드러움과 깔끄러움이 동시에 느껴진다. 흙은 본디 깔끄러울 것임을 알고 있으니, 깔끄러움을 잊고, 부드러움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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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엄청 차갑고 부드러워.”

“지율아, 우리 감각은 다섯 가지가 있대. 시각(視覺) 눈으로 보는, 청각(聽覺) 귀로 듣는, 후각(嗅覺) 냄새로 맡는, 미각(味覺) 혀로 맛을 느끼는, 촉각(觸覺) 손이나 몸 등의 피부가 느끼는, 다섯 감각이 있어. 지율이가 좋아하는 유튜브는 무슨 감각들이 느끼는 걸까?”

“유튜브는 보니까 시각, 그리고 들리니까 청각인 거야?”

“응. 정답. 두 번째 문제. 지금 여기 전나무 숲길에서 지율이는 어떤 감각들을 사용하고 있니?”

“먼저 시각. 눈으로 나무들을 보고 있어. 그리고 촉각. 발로 흙이 느껴지는 걸. 그다음은... 두 개 아니야?”

“그래. 지율아. 잠깐만 눈을 감고 손을 뻗어 봐. 가만히 있는 거야.”


텔레비전에서 본 것이 많아서인지, 금세 눈을 감고, 양 팔을 주욱 벌린다. 왠지 멋지다 우리 아들. 이런 팔불출. 그래, 사진 한 장을 찍어야지.


“지율아, 손가락 끝에 바람이 느껴지니?”

“응. 바람이 불어. 손끝으로 느껴져.”

“딩동. 그게 촉각이야. 발로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귀를 기울여 봐. 가만히 귀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니?”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고.”

“사람들 소리 말고 안 들려? 휘~잉... 바람 소리 같은 거. 새소리도.”

“아빠, 바람 소리는 모르겠고, 새소리는 들린다.”

“오케이. 그게 귀로 들리는 청각이야. 코로 숨을 한껏 들이켜 봐. 냄새를 맡는 거야.”

“근데, 냄새는 잘 모르겠어.”

“그런가. 눈을 떠 봐. 지율아. 전나무 앞으로 가 보자. 나무 앞에서 냄새 한 번 맡아볼래?”

“와. 냄새가 난다. 응. 나무 냄새가 나.”

“딩동. 그게 냄새, 후각이야. 그리고 이왕 나무 앞으로 왔으니, 나무껍질을 만져보자. 흙도 만지고.”

“아빠. 나무껍질은 딱딱하고, 물기가 느껴진다. 어, 저기 나무에 낀 이끼가 있어. 만져도 돼?”

“그럼. 만져봐. 부드러울 걸.”

“응. 부드러워. 흙도 부드럽고. 모래랑은 다르다.”

“유튜브는 시각과 청각이잖아. 그런데 여기 전나무 숲에서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다 느낄 수 있다. 어때? 이렇게 가족과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자연을 보면서, 내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거...”

“아빠. 저기 다람쥐야.”

지율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람쥐를 따라 달려간다.


텔레비전을 없애면서, 태블릿 PC를 없애면서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굳이 없애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막연하게 미디어에 아이가 노출이 많이 되면 해로울 거란 생각이었다. 월정사 전나무 길을 걸으니 알겠다.


텔레비전에는 시각과 청각 말고 다른 감각이 관여할 여지가 없다. 반짝이고, 빠르게 전환하는 화면에 아이들은 금세 빠져든다. 전나무 숲에서는 주변 풍경이 내내 비슷했다. 키 큰 나무와 조금 더 굵은 나무, 어린 나무와 나이 든 나무가 있을 뿐. 그 유사한 풍경 속에서 새가 지저귀고, 다람쥐가 뛰어다닌다. 풍경을 멈춰 서서 바라보게 한다.


자연에서 지율이는 자신의 감각이 작용하는 것을 알게 된다. 지율이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주변 풍경뿐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대해, 자신의 몸에 대해서, 가만히 서서, 집중하며 바라볼 수 있게 될지 모른다. 텔레비전은 주변 풍경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는다.


지율이가, 지아가 자연의 많은 것을 보고, 자연의 색을, 소리를, 맛을 알기 바란다. 그런 기반 아래에서 책을 읽기를, 활자뿐이라서 상상할 여지가 많은 책에 관심이 생기길 바란다. 꼰대 같은 생각일 수 있으나 아이들은 영상보다는 활자에서 많이 배울 수 있다. 영상보다는 자연에서 더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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