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나 보이고 싶지 않았다. 중ㆍ고등학교 시절, 생선의 비린내가 싫었지만 친구들 앞에서 생선을 싫어한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카레의 향이 비위에 거슬렸지만, 친구들이 단체로 카레를 먹고 있을 때, 먹을 수 없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튀어나온 못이 정 맞는다’는 속담을 머릿속에 담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중간만 해라. 튀지 말아라.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동해라’라고 가르치셨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하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이 싫어할만한, 튈만한, 나대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굳이 맛없고 쓴 술을 먹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졌지만, ‘술은 마시기 싫습니다’란 말은 하지 않았다. 까탈스럽고 까칠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모난 사람으로 보이는 것, 그리하여 주변에 사람이 없을까를 두려워했다.
어린 시절에 밖에선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낯선 환경 속에서, 낯선 이불의 질감, 집에서 사용하던 것과 다른 베개의 높이, 천장의 높이가 다르기에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오티니, 엠티. 친구들과 외박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밖에서도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나이 서른이 되었고, 좋은 사람이 곁에 있었다. 그와 결혼하고 함께 생활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지율이가 태어났다. 성인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와 함께 가정을 이루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였다. 튀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비슷비슷하게 살아가는 삶.
서른이 지나서도 몰랐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할 수 없다는 걸. 결혼한 남녀는 아이를 낳아서 처음으로 부모가 된다. 아이를 처음으로 낳는다. 모유 수유도, 어린이집도, 유치원도, 초등학교도 다 처음 겪는 일이다. 아이들은 각각 다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만은 원만하게, 튀지 않고 라는 말이 성립되지 않았다.
아이들 눈 바라보기를 좋아한다. 아이들 눈은 맑다. 사람들은 아이들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우리는 개를 무서워할 수는 있지만,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강아지를 무서워하지는 않는다. 어린 존재들에게서는 판단, 고민, 어두움, 쓸쓸함, 악함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믿기 때문이다.
자고 있는 지율이와 지아를 바라본다. 무척 작고 무기력한 존재들. 나는 어린 시절 골목의 어둠을 무서워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빛이 들지 않는 곳은 무섭고, 꺼려진다. 세상의 어두움만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어둠 역시 두렵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나아 보이고 싶은 허영심, 남들보다는 내가 중요한 이기심, 그리고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밟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악한 마음까지. 세상의 어둠 못지않게 내 안에 자리 잡은 어둠 역시 두렵다.
무척 약한 존재인 두 아이를 보면, 살아온 삶을 반성하게 된다. 자라면서 못된 행동을 많이 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선한 사람이고 싶다. 여자는 뱃속에서 태아를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된다. 태아의 심장 소리를 느끼며, 발의 꿈틀거림을 느끼며 절로 사랑하고, 아끼고, 자신의 몸과 하나임을 느끼지 않을까.
남자는 아니다. 아이의 눈을 바라보고, 아이 잠든 모습을 몇 백일, 몇 천 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아이가 아주 작은 손으로 남자의 손가락을 잡을 때,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아빠라고 불러주었을 때, 남자를 보고 웃어주었을 때, 비로소 남자는 한 명의 아빠가 되어간다. 그러니 이 작고 소중한 존재들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키울 수밖에 없다.
지율이 세 살이던 겨울밤. 아이는 식탁 옆에서 놀고 있었다. 아내와는 밥을 먹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개구쟁이였던 지율이는, 아빠에게 달려오다 종이를 밟고 미끄러졌다. 머리 쪽부터 미끄러졌는데, 공교롭게도 아빠가 앉아있는 의자 다리에 눈두덩이, 눈썹 부위를 부딪쳤다.
아빠의 몸무게가 실려 있는 의자와 아이의 이마는 관성과 가속도의 힘으로 충돌했고, 의자는 위치 에너지를 잃지 않은 채, 아이의 이마만 찢어졌다. 의자 다리는 날카롭지 않았으나, 아이가 달려오는 가속도만으로 이마를 표면을 갈랐다.
제법 규모가 있는,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으로 아이를 안고 달렸다. 아이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는, 아이 옷과 내 옷, 아내 옷을 붉게 물들였다. 아이는 크게 울었고, 아내는 어깨로 울었다. 머릿속으로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하고, 다만 내비게이션을 따라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광역응급센터로 가야 할 것 같다며, 아이를 받지 않았다. 따지거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다시 아이를 안고 광역응급센터로 향했다.
이대목동병원 응급실에서는 수술을 해야 함을 알려 주었다. 정형외과와 성형외과에서 수술이 가능하니, 선택하라 말한다. 0.5초 정도 고민하다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께 수술을 받겠다고 말했다. 왠지 얼굴 부위의 상처를 세심히 보아주실 것이라 여겼다.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세 살 어린아이가 받기에는 간단하지 않은 수술이었다. 상처를 소독하고(이때 지율은 크게 울었다.), 상처를 벌려 마취 주사를 3방 놓았다.(이때에도 크게 울었다.) 1시간 후, 아이는 잠들었고, 상처부위가 마취되었다 여겼을 때, 의사 선생님이 상처를 꿰매려 오셨다. 상처를 꿰매는 동안 아이의 마취가 풀렸고, 아빠, 엄마, 간호사 2명이서 아이의 온몸을 붙잡고, 나머지 상처를 꿰매었다.(아이는 무척 울었다.) 아내는 출산 때보다 많이 울었다.
아내는 순환 근무를 했고, 아이를 온종일 혼자 보는 날이 많았다. 지율과 놀아주는 일은 자신 있었지만, 끼니를 챙겨주는 일은 힘겨웠다. 지율이는 파스타는 좋아했으나, 아빠가 만든 밥, 된장찌개, 볶음밥, 리조또, 피자, 팬케이크 어느 것 하나 즐겨 먹지 않았다.
지율은 배가 고파 칭얼거리며 아빠를 닦달했으나, 아빠가 만든 음식은 파스타를 제외하곤 먹지 않았다. 엄마가 없는 날은 한 끼 한 끼가 숙제였고, 숙제는 늘 낙제점이었다. 지율은 항시 아빠를 찾았고, 아빠에게 달라붙어 놀기를 바랐다.
지율이 피를 흘리며 이대병원으로 운전할 때, 어떤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 없는 생각 하나가 들었다. 아이는 더 이상 낳지 않겠다고. 내 의지와 능력과 통제 밖에서 자라는 아이. 능력밖에 존재하는 존재는, 지율이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겼다.
능력에 부치고 숨 막히는 상황이 이리 많으니, 둘째를 낳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다. 주변의 많은 사람이 둘째를 낳으라고 말할 때, 항시 말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라고.
어린 시절, ‘아르미안의 네 딸들’이라는 만화를 보았다. 만화에 등장하는 말, ‘생(生)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의미를 갖는다.’ 지아가 태어난다. 지율에게 쏟았던 애정만큼, 지아에게 쏟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지아는 자신이 받을 사랑의 몫을 알아서 챙기는 아이였다. 울음이 길지도 않았고, 밥이라면 무조건 좋아했다. 누군가를 귀찮게 하지 않고, 혼자 뒹굴뒹굴 구르며 놀았고, 구르다 잠들었다.
한 사람의 삶에 어떤 변수가 존재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한 생명의 탄생은, 남자와 여자의 삶을 뒤흔드는 변화이다.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은 없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무한한 인내력을 요구하는 존재. 그래서 아빠는 점점 겸손해진다.
아이들은 무방비 상태로 이 세상에 왔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무엇을 하고 싶을지 알 수 없다. 지율 지아가 점점 커간다고 하여도, 내 능력 밖의 일들은 계속 벌어지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들은 아빠가 필요하지 않다 여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온전히 성장하기를 바란다. 그 언젠가가 되었을 때, 아빠라는 존재는 아이들이 편히 돌아올 곳이었으면 한다. 누구나 크고 작은 상처를 입고, 아플 수 있으니, 그때 돌아와서 잠시 쉴 수 있는 곳이길 바란다. 아빠가 너희들을 보며, 자라고 겸손해졌으니, 너희가 힘겨울 때, 쉼을 줄 수 있는 나무 그늘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