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서귀포 자연휴양림
“아빠, 빨리 일어나. 축구하러 나가자.”
“음... 어.... 지금 몇 시인데?”
“6시 30분이야. 해 떴어. 아침이야.”
(9월의 제주도에서는 6시 30분에 날이 환해지는구나. 해가 늦게 뜨는 겨울이 오려면 멀었구나. 그래도 일단 우겨보자.)
“지율아, 아직 새벽이야. 더 자자. 응?”
“아빠, 완전 밝거든. 아침이야. 이렇게 밝은데 새벽이라니. 일어나. 아침에 축구하러 가자고 했잖아. 나가자. 나가.”
(밝은데, 밝다고 말하고 있는데, 더 이상 새벽이라고 우길 수가 없다.)
“그럼, 우리 세수는 하고 나가자. 그래도 세수는 해야지.”
지난밤에 도착한 서귀포 자연 휴양림에는 미니 축구장이 있다. 지난 제주도 여행에서 미니 축구장을 발견했다. 지율이는 잔디밭이 있는 숙소를 좋아한다. 여행의 목적이 축구 시합이 될 때가 있다. 서귀포에서 한라산 영실 코스를 따라 천천히 자동차를 운전하고 오르다 보면, 서귀포 자연휴양림이 나타난다.
용암 대지가 천천히 흘러내려 굳은 순상 화산이라 그런지, 산은 가파르지 않고, 도로는 급하지 않다. 천천히 구불구불 오르다 보면 한라산 중턱 즈음에 닿을 수 있고, 그곳에 서귀포 자연 휴양림이 나타난다. 이곳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빈 숙소가 없었다. 아내가 예약한 객실이 마지막 남은 한 개의 방이었다.
이번 여행에는 많은 운이 따른다고 생각하면서, 기쁘게 자연 휴양림의 숙소를 들어간다. 입구에서 숙소 열쇠를 받았다. 그리고 조금 더 차로 들어가니, 주차장과 별도로 조그마한 미니 축구장이 나타났다. 평소 지율이와 나는 어딘가로 여행을 갈 때면, 항상 축구공과 야구공, 야구 글러브 2개를 챙겨 다닌다.
축구를 할 수 있는 잔디밭이 있으면 축구를 하고, 축구를 할 만한 장소가 없으면, 둘이서 캐치볼을 하곤 했다. 이번 여행에도 당연히 축구공을 가지고 왔고, 단순히 잔디밭이 아닌, 축구 골대가 있는 미니 축구장을 본 지율이가 흥분함은 당연하다.
“아빠, 축구하자.”
“짐만 풀어놓고, 축구하자. 괜찮지?”
“알았어. 대신 나는 짐 풀 필요 없잖아. 먼저 축구장 가서 연습하고 있을게. 아빠도 빨리 와.”
“짐만 내려놓고 바로 갈게.”
짐을 하나씩 내려놓으며, 짐을 숙소로 옮기며 지율이를 바라본다. 지율은 혼자서 골대 안으로 공을 차고, 아빠를 바라보고 손짓한다. 나도 손을 흔든다. 서귀포 자연휴양림의 미니 축구장 잔디는 푸르고, 싱싱했다. 거세지 않았고, 발을 찌르지 않았다. 호날두가 하는 것처럼, 무릎 슬라이딩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축구장에서 축구 한 게임을 했다. 둘이서 하는 축구 게임은 먼저 5점을 넣는 사람이 이기는 걸로 마무리된다. 주로 이기는 건 지율이다. 조심해야 할 건 눈에 드러나게 골을 넣게 해 주면 안 된다. 티 나게 골을 막지 않거나, 열심히 뛰지 않으면 ‘취소’가 될 수 있다. 자연스럽게, 열심히 골을 막아야 한다.
또 하나의 주의점은 아빠가 이기면 안 된다. 그럼 다시 게임이 추가된다. 본인이 이길 때까지 게임을 하려고 하며, 한 게임이라도 아빠가 이기면 무척 서러워한다. 그러니 조심스럽게 5:4나 5:3 정도의 스코어로 게임을 마무리해야 한다.
“지율아, 어두워졌다. 밥도 먹어야 하고. 이제 그만 들어가자.”
“아직 눈에 공이 보이는데. 조금만 더 할까?”
“아니야. 아빠는 눈이 안 좋아서 그런지 공이 잘 안 보여. 너만 보이는데 하는 건 반칙이지.”
“벌써 눈이 안 보여. 아빠 시력 몇이야?”
“응. 0.1 정도.”
“내 시력은 몇 인지 알아?”
“정확히 모르지만 너는 시력이 아마 1.0은 될 걸.”
“0.1이 좋은 거야, 1.0이 좋은 거야?”
“응, 0.1보다 1.0이 10배쯤 시력이, 눈이 좋은 거야.”
“그럼 내 눈이 아빠 눈보다 10배쯤 좋은 거야”
“꼭 그렇지는 않지만, 대략 비슷해.”
“아싸. 알았어. 아빠 눈이 안 보이니까 그만하자. 대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또 한 판 하자. 오케이?”
“OK."
초등학교 1학년 축구 클럽
지율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신기한 사실을 알았다. 꽤 많은 초등학교에서는, 하나의 반 남자아이들 전체가 하나의 축구 교실에 등록하여, 일주일에 한 번 축구를 한다. 먼저 카톡방이 만들어진다. 만들어진 카톡방에서 축구 교실을 알아보는 적극적인 엄마가 나타난다. 그리고 전체 아이들의 시간을 조율하여, 하나의 시간대를 정하고, 축구 클럽과 연락하여, 시간을 조정한다.
하나의 축구 교실에 반의 남자아이들 전체가 같은 축구 교실에 참여하게 된다. 아이들 전체의 단합심을 키울 수도 있고, 빠르게 한 반 아이들이 친해질 수 있다. 더불어 평소 부족한 운동량을 채울 수 있다. 여러 가지로 좋은 시스템이다.
만약 축구가 싫은 아이가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축구가 싫고, 혹은 운동이 싫은 아이. 반 아이들 전체는 축구를 한다. 그럼 그 엄마는 카톡방에서 '우리 아이는 축구하지 않습니다'란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이는 다른 아이들 전부가 하는 축구에서 빠지고 싶다고 엄마에게 말할 수 있을까. 등록하고 나서도, 매번 수비만 하거나, 공을 제대로 못 차고 오는 날이 많다면, 이 아이에게 축구 클럽은 즐거움일까.
80년대 후반,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1학년, 서울 88 올림픽이 개최될 때이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은 학교 운동장에서 뛰어놀았다. 시간 되는 아이들끼리 축구를 했고, 다른 반 아이들도 섞여 공을 찼다. 친한 친구가 누구인지, 공을 차는 녀석이 우리 반인지, 다른 반인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축구가 싫은 아이들은 철봉대가 있는 모래가 많은 곳에서 구슬치기를 하기도 하고, 두꺼비집을 만들면서 놀기도 했다. 나는 축구를 좋아했지만, 잘하지는 못했다. 그래서 대체로 구슬치기, 땅따먹기 같은 게임을 하다가, 축구 멤버가 부족하면 슬그머니 끼곤 했던 아이였다.
원체 축구를 잘하지 않음을 친구들이 알고 있었고, 본인들이 멤버가 부족해 나를 요청한 것이었으니, 내 수비력이 부족하다 탓하지 않았다. ‘공 놓쳤다고 뭐라 그랬다면, 나 안 해.’라고 말했을 것 같다. 지율이가 하는 축구 클럽의 경기 모습을 한 두 차례 본 적이 있다. 지율이는 대체로 수비수, 가끔 선생님의 배려에 의해 공격수로 위치 전환되는 아이였다. 눈에 띄게 잘하는 아이들이 몇 있었고, 지율이는 중간 클래스, 그리고 축구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몇 있었다.
아이들의 축구 포지션
“지율아, 오늘은 공격수였어? 수비수였어?”
“먼저 수비하다가 중간에 공격도 했어.”
“오!! 한 골 넣었어?”
“아니, 못 넣었어. ㅎㅎ그래도 한 골 거의 넣을 뻔했어.”
“아깝다. 그래도 잘했나 보다. 좋았어. 근데 지율아, 동국이는 어때? 동국이는 잘해?”
“동국이는 잘 못해. 그래도 우찬이도 나랑 같이 공격했어. 선생님이 동국이는 파울해도 호루라기 잘 안 불어. 그리고 가끔 동국이가 손으로 공을 쳐도 뭐라고 안 해.”
“야. 그럼 다른 아이들이 싫어하겠다.”
“아니야. 선생님이 동국이는 괜찮다고. 몇 번 얘기해서 아이들도 그런가 보다 하는 걸.”
“그래. 신기하네.”
“애들은 동국이랑 같은 편 하는 거 좋아해. 동국이는 손으로 공을 멈추고 공을 차기도 하거든. 그럼 골이 잘 들어가. 동국이가 속한 편이 이길 때가 많아.”
“아. 형준이 되게 잘하더라. 엄청 킥이 정확하던데.”
“응. 형준이 잘해. 그리고 상음이 도 엄청 잘해.”
“상음이? 누구지?”
“오늘은 골키퍼 했어.”
“공 잘 찬다면서 골키퍼?”
“응. 선생님이 상음이랑, 형준이 골키퍼 많이 하라고 해.”
선생님의 배려에 뒤통수를 살짝 맞았다. 축구 선생님은 포지션을 배분할 때, 잘하고 못하고를 기준으로 나누는 게 아니었던 거다. 모두 한 번씩, 공격수든, 수비수든, 골키퍼든 할 수 있도록 배려하신다. 그리고 지율이 말을 들어보면, 오히려 공을 잘 차는 친구는 골키퍼 포지션에 더 자주 가는 듯하다.
모두 공을 찰 수 있도록. 소외되지 않도록. 잘하고 못 할 수는 있지만, 포지션으로 기분 나쁘지는 않도록 선생님은 어린아이들을 배려하고 있었다. 지식과 행동의 습득이 중요하지만, 습득하는 대상에 대한 존중, 배려 역시 중요하다.
“여보, 동국이 엄마는 싫지 않을까. 동국이는 운동을 싫어하는 것 같은데.”
“싫어해도, 아이들 전부가 하는데 빠지긴 어려울 거야. 그리고 세상 살면서 어디 자신이 잘하는 것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래도 아직 어린데, 좋아하는 걸 하는 게 낫지 않아?”
“좋아하는 것만 해도 되지. 그런데 당장 아이들이 학교에서 모두 축구 얘기하는데, 혼자만 모르고, 혼자만 하지 않은 거야. 운동도 못하는데, 이야기에 낄 수도 없어. 그럼 아이는 더욱더 침울할걸.”
“그런가?”
“그러다 아이가 학교 가기 싫다고 말해봐. 그리고 축구를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어디 있어? 다들 처음에는 못 하는 거고. 점점 익숙해지면서 잘할 수 있는 거 아냐. 아예 가능성을 닫고 생각하는 건 문제인 것 같은데.”
나 혼자 다양한 생각을 한다고 자만하고, 혼자만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린다고 잘난 척했다. 어린 아들이 운동을 잘하는지, 못 하는지, 엄마가 왜 모를까. 당연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운동 못하는 아들이 다른 아이들, 모두 하는 축구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같이 껴서 부대끼길 바라는 마음을 왜 헤아리지 못할까.
아이들마다 운동에 대한 능력치와 관심도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하여 사람 사이의 관계까지 무시해도 좋은 건 아니니까. 아내와 이야기하다 보면 알게 된다. 아빠의 입장과 다른 엄마의 입장을. 엄마들은 아빠와 처음부터 다른 것 같다.
엄마는 항상 옳다
여자는 배 속에서 태아를 키운다. 단순히 키우는 게 아니라 열 달 동안 생명과 함께 살아간다.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심히 다니고, 예전보다 몸이 무거워짐을 느낀다. 몸무게의 변화와 신체 변화를 겪는다. 그 와중에 몸이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이유가 사랑하는 태아로 인한 것을 알게 된다.
태아에 대해 똑같은 책임감을 느껴야 할 남편은 내 몸의 변화를 모르거나, 도와줄 수 없다. 심지어 남편의 몸은 임신 전 후에 변화가 없다. 여자는 그 모든 변화를 겪고, 인정하고, 이겨내거나 체념한 후에 비로소 엄마가 된다. 열 달 동안의 체념, 극복과 인정. 그로 인해 생겼을 아이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생각한다.
그러니 아이에 관해 부부가 다른 의견이 있을 경우, 대부분 아내의 의견이 옳으며 남편은 그에 따라야 한다.
제주도 첫날 새벽부터 눈을 뜬 지율이는 축구하러 가자고 성화다. 눈곱조차 떼지 못하고, 간단히 세수를 하고, 옷을 추스르고, 아이 옷을 축구 유니폼으로 갈아입힌 다음 축구장으로 나섰다. 한라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자연휴양림에는 잔잔한 안개가 내려앉아 있다.
날은 밝았으나, 지표면 가까이에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부옇게 떠 있다. 물방울들이 떠 있는 것은 중력으로 인해 불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중력을 무시하고 떠 있는 물방울들로 인해 요정 나라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작은 물방울들 너머로 상대편 골대가 보였고, 골대 앞에 서서 뛰어올 준비를 하고 있는 지율이가 있었다.
준비 운동부터 하자고 말한 다음, 스트레칭을 했다. 팔 벌려 높이뛰기를 하고, 본격적으로 5점 내기 축구 게임에 들어선다. 문득 생각났다. 처음 지율이가 축구 교실에서 축구를 시작할 때 모습을, 공을 제대로 차지 못해 밖에서 무척 답답해했던 나의 모습을. 친구들과 게임을 할 때, 패스받은 공을 바로 뺏기곤 했다.
수비를 하다가 자신에게 공이 오면 밖으로 차 내기에만 급급했다. 공격을 하다가 반대편 친구가 다가오면, 얼어서 바로 공을 뺏겼다. 얼마나 답답하던지. 지금은 드리블을 하다 다른 친구에게 패스를 한다. 공격수 위치에 있다가 빠르게 슛을 쏜다. 그렇게 아이는 이전보다 조금 더 축구를 잘하게 되었고, 이전보다 축구를 좋아하게 되었다.
객관적이긴 어렵지만, 지율이가 축구를 잘하는 편은 아니다. 딱 상위 50%랄까. 그러나 공차기를 즐겨한다. 그리고 초등학교 1학년은, 좋아함으로 충분하다. 매주 지율이는 축구 교실을 갈 것이다. 좋아함 외에, 잘할 수도 있을까를 살짝 기대해 본다. 혹시 알까. 제2, 제3의 손흥민이 될지. 그럼 나는 제2의 손흥민 아빠가 되는 것이다. 아~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