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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lton Sep 13. 2015

북한을 향한 Engagement의 길

어떤 Engagement여야 하는가

아래의 글은  오래전에 남긴 글이지만 여전히 시간의 풍화를 어느 정도 이기고 있는 글인지라 이렇게 다시 재활용해본다. 2015년 여름의 위기를 보면서도 결국 대북정책은 억지 혹은 강압에 의존하더라도 결국 북한에 대한 접근은 우리 말로 흔히 관여정책으로 번역되는 Engagement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는 것이 사실임을 보여줬고,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활용됨에 따라 굉장히 유용함을 보여줬다. 대북강경론자인 Victor Cha가 Engagement를 강조한 것도 결국 '현실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대북정책에 있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있어서는,  유화정책을 기반으로 한 Engagement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이른바 ‘햇볕정책’(Sunshine Policy)는 기본적으로 유화적인 Engagement의 방책으로 통합이론을 접목하여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이었다. 이러한 정책의 목적은 처음은 대북관계 개선이었으나 김대중 정권에 들어서 북핵문제가 심화되면서 북핵문제의 관리가 병행적인 방법으로 추가되면서 두 가지가 결국 대북 포용정책에 목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햇볕정책은 궁극적으로 정권에서 이행 당시에 두 번에 서해교전을 겪어야 했으며, 햇볕정책이 이명박 정부 이후  중단된 상태에서는 북한은 지속적으로 햇볕정책에 의해 추진된 6.15 공동성명과 10. 3 성명의 이행을 주장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를 무시했으며 북한의 짓으로 추정되는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으로 지속적인 도발 행위를 계속해왔다. 북한에 대한 일종의 선택적 봉쇄나, 강경한 태도를 분명히 하는 Engagement는 이제 불가피해 보인다. 최소한 햇볕정책은 단순히 햇볕정책을 진행하는 동안에만 있어서의 남북관계의 증진 및 도발 관리가 아니라 북한의 개방과 평화 안정의 지속을 분명 의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성공하지 못함이 드러났고 결국 정책의 변화를 필요로 하고 있다. 


 만약 관여 정책을 포기하고 봉쇄로 가야 한다면 한국의 입장에서는 전면적 봉쇄는 사실상 불가능하며 북한에게 개입할 수 있을 정도의 선택적인 봉쇄만 가능하다. 또한 Engagement의 수준 안에서 변화를 준다면 기존의 햇볕정책과 같은 유화적인 Engagement보다는 강경한 Engagement의 수준으로 변화를 줘야 한다. 


 Engagement는 사실 다음과 같은 요소를 지닌다. 첫째, 북한의 재침공이나 다른 군사적 모험주의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견실한 방어 및 억지 역량을 한반도에서 유지하는 것이다. 둘째 Engagement의 전제조건은 국제적인 협력과 조정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북한으로부터 의미 있는 양보를 끌어낼 만한 유인 동기는 동맹국들간의 보조를 맞추면서 당근을 제공할 때에만 효과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이 대북 Engagement 과정에 참여해야 하고, 최소한 대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중국이 북한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고취해야 한다. 넷째, Engagement는 어떤 나쁜 행동에 대해서도 신속하고도 결정적인 보복이 이뤄지리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만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Engagement+봉쇄, Engagement+봉쇄+외교적 고립화의 안에서 정책이 성립되어야 한다. Engagement가 선택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에는 북한이 설령 승리가 불가능하더라도 적대행위가 ‘이성적인’ 행동 방식이라고 계산할 수 있는 상황이 고착화되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에서 Engagement는 결국 큰 전제 안에서 최적의 정책으로서 다뤄져야 한다. 하지만 단순히 Engagement만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어느 정도 의도의 변화를 보이는지에 관한 창을 열어 두면서 동시에 필요하다면 징벌을 가할 수 있는 포석을 놓아야 만이 Engagement도 적실성 있게 작동할 수 있다. 무조건적인 Engagement는 한반도에 있어서 지금의 억지만으로 전쟁의 억지를 사실 확보할 수 있지만, 단기적 무력도발이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 안정을 위협하고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결국 단순히 무조건적인 Engagement보다는 봉쇄+Engagement가 보다 한반도에 있어 보다 평화 안정을 가능하게 하는 대북정책으로 작동할 개연성이 크다. 


  이러한 봉쇄+Engagement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작동된다. 우선 북한에게 있어 ‘햇볕정책’과 달리 약속된 시간 내의 변화되는 자세를 먼저 요구를 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이러한 행동을 북한이 견지하지 않고 벼랑 끝 전술로 돌아가 ‘관심을 끌려’한다면 여기에는 한-미-일의 응징의 체계가 작동한다. ‘햇볕정책’이 인내를 강조하고 북한의 비협조를 사실상 용인하는 반면, 이러한 봉쇄+Engagement는 북한의 문제 행동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Engagement로 북한의 평화적 개혁과 비확산을 이끌어 내는 데 실패한다면 일종의 시위룰 통한 강압을 통해 북한을 지속적으로 압박한다.


 이러한 압박의 수단 중에서는 최근에 표현되고 있는 ‘전략적 인내’ 혹은 ‘악의적 무시’도 하나의 압박적 수단으로 유효하다. 이러한 수단은 북한체제를 봉쇄하고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미사일 확산을 최대한 차단한다. 또한 한-미-일은 탈북자들에 대한 안전한 도피처를 보장하고 러시와 중국으로 하여금 이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재정적인 유인동기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한-미-일은 대북 정책에 있어 삼각 공조를 필요로 한다. 한국은 북한과의 비밀 회담을 통해 Engagement와 봉쇄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으며 일본은 Engagement 과정의 촉진을 도울 수 있다. 또한 미국은 북한의 문제 행동에 대하여 미국의 ‘한계선’을 명확히 제시하여 북한의 문제적인 행동을 강제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한 가지 명확하게 해야 할 것은 한국에 있어서 대북정책은 봉쇄와 고립화 전략은 하나의 수단으로써 사용되어야지 본질적으로는 지속적으로 Engagement를 작동시켜야 한다. 단 여기에 있어 무조건적인 Engagement보다는 예방적 방어의 논리가 작동하는 강경한 입장의 Engagement가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속적인 고립화 또는 압박은 북한에게 있어 도박적 동기를 제공하여 선제 공격에 나서게 할 유인 동기를 가지고 있다. 


 강경한 입장의 Engagement는 북한의 가치관이 평화지향적이라고 규정하거나 혹은 그렇게 바뀌는 것을 상정하지 않는다. 단지 이러한 Engagement는 북한에게 진정한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어야 하는 노력을 할 것을 말하며 그러할 기회를 제공한다. 다만 그것이  실패하였을 경우 Engagement는 봉쇄 및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한 한-미-일의 응징의 공조 체제로 바뀌게 될 것이다. 최근에 있어 발생한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분명 북한이 책임을 질 필요가 있음을 한국과 미국은 분명히 적시해줄 필요가 있다. 설령 북한의 그 도발 목적 자체도 대화 요구나 그것을 넘어 북미 간의 양자대화라 할지라도 엄밀히 말해 그 대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대화를 통해 무엇이 변해야 하는지를 한국과 미국은 분명히 명시해야 하며, 또한 이러한 목적에서 이런 방식의 도발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어야 한다.


 엄밀한 차원에서 북한에 대한 단호한 태도는 현재의 북한이 초래한 것이지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의 기조는 대결 구도가 아닌 분명 북핵문제에 있어서의 해결방안을 지속적으로 제시해 왔고 북한에게 있어 핵포기를 종용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화에 있어 북한은 기존 한-미 입장의 전면적 폐기와 자신들의 요구를 수용할 재협상을 요구해 왔으며 지속적인 ‘살라미 자르기’식의 협상을 지속시켜왔을 뿐이다. 이러한 협상이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자 한반도의 도발을 감행했으며, 이러한 도발의 책임과 북한에 대한 진정성에 대한 요구로서 단호하고 강경한 정책을 한국과 미국은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단호하고 강경한 정책은 Engagement와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Engagement안에서 작동하는 북한에게 있어 자신들의 행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정책적인 움직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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