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5

글감_10년 뒤 나에게 보내는 타임캡슐, 메세지

by 올림

퇴근 후 뒤적거린 우편함 안에 작은 사작 봉투가 손안에 잡힐 듯 말 듯 하며 달그락거린다. 대체 누가 이걸 보낸 것인지 싶어 겨우 잡아 뒤집으면 전에 살았던 집 주소와 함께 내 이름이 적혀있다. 뭘까? 추측도 잠시. 자동차세, 해양 에너지, 관리비 납부 내역을 보면서 이달에는 뭘 또 이렇게 많이 썼을까에 대한 추측으로 머리가 지끈거린다. 우선 은행 점검 시간 끝나면 내야겠다. 하고 책상에 펼쳐둔 뒤 잔뜩 맞은 찬바람 기운을 없애려 샤워를 한다.

샤워 후 가만 앉아 명세서와 사용료를 보니 역시 내가 쓴 게 맞다. 차근차근 확인하고 납부하길 여러 차례. 의문의 봉투를 열어본다. 얇고 딱딱한 것. 너무 익숙한 집 주소. 주민등록증이다.

20년 전, 첫 번째 주민등록증은 열아홉에 발급받았었다. 성인이 되었다는 설렘을 듬뿍 안은 신분증 발급은 수능 보기보다 더 중요했다. 이른 아침 광주까지 버스를 타고 충장로에 방문하여 익숙하지 않은 셔츠를 입고 사진사 아저씨가 시키는 대로 고개를 몸쪽으로 당기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찍었다. 발급된 카드 한 장뿐인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어른이 되었다는 증표를 가지니 지나가는 모든 어른이 진짜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을 축하해주는 기분이었다. 엄마는 무슨 사진을 찍으러 광주에 가냐며 잔소리를 했지만, 내가 성인이 되었다는 소중한 첫! 증표인데 집 앞에 있는 아무 사진관에나 갈 수 없었다.

10년 전, 두 번째 주민등록증은 딱 맞춘 10년 뒤인 스물아홉에 발급받았었다. 신분증에 대한 감흥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병원에 가거나 은행 업무 볼 때, 여행 갈 때만 가끔 얼굴을 비추곤 했다. 이때는 귀차니즘에 미루고 미루다 신청 마감일 전날에 급하게 동네 사진관에 가서 사진을 찍고 재발급 신청을 했다. 이주 뒤 행정복지센터에서 신분증을 찾으러 방문하라는 문자에도 꾸역꾸역 갔다. 그리고 몇 개월 뒤였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려 아파트 주민 카드를 찾다가 열아홉 살의 내가 있는 신분증을 발견했다. 타이밍 좋게 전화가 울렸다.

오랜 친구 중 한 명이 이대로 나이 먹는 것이 억울하다며 우리도 추억을 남겨 놓자며 다음번에 만날 때 타임캡슐을 하자는 것이다. 그때는 나도 좋아 좋아. 라며 신이 난 채로 대답했지만 까맣게 잊고 있었다. 만남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친구의 전화에 맞춰 손에 들린 것이 신분증이라니. 운명이다 싶었다. 이걸 가져가야지. 하지만 하나만 대충 가져가기엔 뭐해서 미래의 나에게라는 거창한 수식어와 함께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삼십 대 별거 없지?

그리고 이걸 받은 지금. 서른아홉. 나는 그 메시지를 보고 답한다. 응. 진짜 별거 없더라. 괜히 겁먹었더라. 괜히 웃음이 나온다. 뒤이어 세 번째 주민등록증 갱신을 알리는 우편 봉투가 있다. 오랜만에 꺼내 본 두 번째 신분증 속의 얼굴이 괜히 공허해 보인다. 이번에는 쫓겨서 찍지 않아야지. 정성스레 담아야지. 다가오는 40대를 멋지게 반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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