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정말 만약에

‘만약에 우리’

by 올림


살면서 수많은 ‘만약에’를 떠올린다. 만약에 내가 그때 그렇게 행동했으면 어땠을까. 만약에 내가 그 기회를 잡았으면 지금 어떻게 됐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무수한 만약에 속에서 내가 가장 많이 떠올린 '만약에'가 생각나 슬퍼졌다. 있잖아, 만약에 우리 그때.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 같이 있었을까? 같이 마주 보고 웃었을까?

은호와 정원은 우연한 만남으로 수많은 필연을 만들어냈다. 심장도 떼어줄 만큼 서로를 사랑했고. 혹여 생채기라도 날까 조심히 다뤘다. 생채기를 냈다면 엉엉 울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껴안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생채기들은 모이고 또 모여서 지워지지 않는 흉이 되었다. 소리도 지르고 울어도 봤지만 결국 남은 건 후회와 수많은 만약에 뿐이다.

아무것도 없었기에 무모했고, 어렸기에 과감해서 더 사랑한 은호와 정원은 관객들이 애써 묻어둔 추억을 모종삽으로 조금씩 퍼내더니 베트남 호텔씬에서는 크레인을 가져와 지나간 사랑에 자책하는 눈물과 함께 몽땅 꺼내놨다. 주변은 온통 슬퍼하는 사람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고, 오히려 결말에 마음에 들었다. 고통을 견디고 이별했기에 잘 살아낼 수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어땠냐면. 어떻게 됐냐면,

그리워했다. 후회도 했고, 상상하면 슬플까 봐 떠올리지도 않았던 만약에를 마음껏 펼쳐보았다. 만약에 그때 서로의 권태를 피하지 않고 늘 그랬던 것처럼 함께 이겨내자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면 어땠을까. 걸려오는 전화를 매몰차게 끊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아 봤자 뭐 하겠냐는 사람들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지나간 시간을 곱씹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상처가 될 수 있다. 아물지 않았기에 사랑을 배울 수 있었다. 흉터가 남았기에 행복을 빌어줄 수 있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만약에 뒤에 물음표가 아니라 마침표를 찍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러지 않았더라도 결국에는 이별했을 거야. 지금과 같았을 거야. 이제는 아팠던 기억도 좋았던 기억으로 포장되었다. 앞으로도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만약에를 마주할 테지만, 두렵지 않다. 조금 덜 슬퍼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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