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을 하는 순간 모든 건 복잡해져.

중학생 수진이에게서 온 이야기

by 임수진

종종 중학교 1학년때의 담대했던 나를 떠올리곤 한다. 그때는 워낙 낯가림이 심해서 같은 방향에 사는 친구와 이야기하며 가는게 어색해 학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혼자 달려서 집으로 향했다. 어색할 바에 그냥 그 시간을 피해버리는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적어도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했고 커가면서 하게 된 어떤 '척'이라는 걸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


불의를 참지 못했다. 불의라고 하는 것이 엄청 거창한 일이 아니라,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걸 어물쩍 넘기는 일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강요하는게 웃기게까지 느껴졌다. 가령 학교 끝나고 가는 길에 나나콘을 먹는 나를 불러서 다짜고짜 과자를 달라고 하는 무서운 언니들, 말도 안되는 이유로 무릎 꿇게 해서 혼을 내는 선생님, 스티커 사진을 찍으러 간 곳에서 돈 있는 거 내놓으라는 이상한 무리까지. 그 당시 내게는 말도 안되는 일이었고 머릿속에 '싫은데, 왜?' 라는 생각만 떠올랐다. 난 과자를 주기 싫었고, 자신의 딸과 장난스레 놀았다고 혼나는 일이 말도 안 됐고, 모르는 사람한테 내 돈을 주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차라리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생기는 결과를 받아들이는게 더 나았다. 그게 정말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랬던 내 마음이 언제부터 약해졌고 누군가에게 맞춰가려고 하게 된 걸까? 떠올려보았을 때 한 일화가 생각난다.


그 당시에 처음으로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고 또래들 사이에서 문자를 주고 받는 일이 잦았다. 꽤 무뚝뚝했던 나는 문자할 때도 단답을 쓰고 이모지를 전혀 쓰지 않았는데, 그런 나에게 그 시절 소위 놀았던 아이가 왜 이모지를 쓰지 않느냐며 물었다. 왠지 그 아이에 마음에 들고 싶어서 노력해서 귀여운 말투를 썼고 귀여운 이모지를 넣어서 답장을 했다. 아이들 사이에서 무언가가 있어 보이는 아이가 그렇다고 하니까 그게 맞는 거라고 믿었다. 몇가지를 적어보자면, *^0^*, 아니양ㅎ_ㅎ, 웅T^T 이런 류의 것이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수진이 말투 완전 귀여워졌다T^T" 라는 말을 들었다. 나의 모습을 숨기고 얻은 말이 고작 그거였는데, 고작 누군가의 가벼운 말 한마디인데, 그 당시에 나는 그게 좋았나보다. 그때부터 점점 '척'을 배워갔던 것 같다.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도 수긍하고 맞추게 되었고 담대했던 나는 점점 옅어져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내가 아닌 이를 흉내내기 위해서.


마음이라는 건 잠시 숨겨둘 수는 있어도 영영 사라지지는 않는 것이었다. 그게 나의 본성이었고 여전히 내 안에서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때의 내 마음을 어렴풋이 되찾았다고 느낀다. 꽤 긴 시간 다른 이가 원하는 모습으로 흉내내며 살던 어른이었지만 더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


1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알게 된 것.

생긴대로 살면 되는 거였어. '척'을 하는 순간 모든 건 더 복잡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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