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푼이 아쉬운 여행자에게 단비 같은 일
인도 여행 보단 발리우드 영화에 관심이 컸다.
부산 국제영화제에 가면 꼭 보게 되는 것이 인도영화다.
사람들은 말한다. 인도영화는 난대 없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별 내용 없는 영화 아니야?
뮤지컬을 워낙 좋아해서 그런지 노래나 춤 장면이 어색하진 않다.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세 얼간이>다. 우리랑 비슷한 교육열과 가정환경이 비슷한지 너무 공감하며 보았다. (TMI 실제로 인도에선 아빠를 아빠라고 부른다.)
블루시티라는 별명을 가진 <조드푸르>
우리에겐 영화 <김종욱 찾기> 촬영지로 유명한 곳이다. 푸른 집들과 중세시대에 온 듯한 메헤르 가르 성이 있다.
뮤지컬은 보아서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영화는 본 적이 없어 조드푸르에 도착하기 전에 느리고 느린 인터넷 환경에서 영화를 보았다. 주인공 공유와 임수정이 여행하는 조드푸르는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그래서 조드푸르가 너무 기대되었다.
자이푸르에서 조드푸르로 넘어오니 또 다른 매력으로 느낌이 좋았다. 거리를 돌아다녀도 무섭지가 않았다. 여행자들이 많이 가는 토스트 파는 가게에 매일 아침마다 가서 식사를 했다. 매일 마주치니 사장은 친근하게 대해줬는데 이때 “내일 여기에서 영화 촬영을 한대. 샤룩 칸도 온다던데?” 정말? “샤룩 칸이 여기에 온다고?”
*샤룩 칸은 인도의 국민 배우다.
이게 여행 중 무슨 횡재인가?
이때 일본 여행자들이 와서 촬영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제안을 했다.
“우리 내일 촬영하는 데에 가는데 너도 같이 할래?”
“돈 벌 수 있어.”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정신이 몽롱했다.
“촬영 관계자와 미팅이 있으니 너도 시간 되면 같이 가자.”
이 말들을 모두 진실로 믿기에는 나는 의심 많은 여행자였다. 속으로 계속 설마 사실이겠어??
속는 셈 치고 구경이라도 해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들과 함께 미팅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 가니 우리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있었다. 각자 숙소 위치와 정보를 남기고 내일 새벽 6시에 숙소로 픽업을 갈 테니 준비하고 나오라고 했다. 그리고 촬영은 영화가 아니라 화장품 관련 광고고 나와 일본인 친구를 클로즈업하겠다고 했다. 왜? 나를...
그리고 스무 명가량 있던 여행자들에게 현금 500루피를 선불로 받았다. (*당시 한화로 12,500원)
이 돈이면 인도에서 삼시 세 끼를 사 먹고 간식도 먹을 수 있다. 돈을 받았으니 진짜 촬영하나 보다.
돈도 받았겠다 들뜬 마음에 오후 일정을 어떻게 할까 일본 여행자들과 이야기하던 중에 그들은 인도 맥도널드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마하라자 맥>이 있다며 먹으러 같이 가자고 했다. 버거를 먹고 그곳에 멀티플렉스가 있어서 인도 영화를 봤다. 내용은 지금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처음 느껴 본 잔잔한 영화였다.
숙소로 돌아오니 숙소 주인도 내일 이곳에서 촬영한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다. 나도 내일 촬영하러 간다고 했더니 “이제 너도 스타가 될 거야.”라며 기분을 업시켜줬다. 묵었던 숙소는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임수정이 인도 옷을 산 가게와 같은 건물에 있었다.
촬영하러 가는 새벽부터 아직도 의심의 끈은 놓지 않았다. 사기가 워낙 많은 인도여서 사기당하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영상으로 많이 남겨둘걸 하는 후회가 막심하다. 화장도 하지 않고 정말 추리한 모습으로 메헤르 가르 성에 도착했을 때 놀랬다.
거대한 지미집 카메라와 거기에 말과 낙타가 있고 백여 명이 넘는 현지인들과 촬영 스태프들이 모여있었다.
현지인과 외국인 엑스트라는 대우부터 남달랐다. 우린 배우들과 같은 공간에서 동등한 대접을 받았다. 수시로 짜이를 따라주고 물도 생수병으로 주고 점심도 따로 챙겨주었다. 어린 엑스트라 아이들은 생수병이 탐났는지 가져가려 했지만 스탭이 가져가지 못하게 막았다.
우리들의 역할은 여행자였다. 그저 촬영하는 거 구경만 하고 있으면 된다. 광고는 멘톨 성분이 있어서 몸에 바르면 시원해지는 파우더 <진조라>였다. 불길 속에서 배우가 발을 내딛고 파우더를 바르는 순간 “진조라, 진조라” 노래 부르며 몸이 시원해진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병맛에 가까웠는데 다들 너무 진지하다. 인도 광고 스케일이 엄청나구나.
촬영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고 지칠 만할 때쯤 마무리가 되었다. 광고 담당자는 현지인 엑스트라를 따돌리고 나머지 출연료 500루피를 주었다. 알고 보니 현지인은 100 루피를 주고 우리에겐 1,000루피를 주었으니 10배나 많은 돈을 우린 받은 거였다. 비록 그 돈이 한화로 25,000원밖에 안되지만 인도에선 하루 일정을 보낼 수 있는 큰돈이었다.
여행하며 길에서 돈 주운 일은 있어도 노동으로 돈을 벌다니 인생 정말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구나. “이렇게 돈 벌며 여행하면 집에 돌아가는 날이 더 멀어질 수 있겠다.”라며 남은 여행 날들의 상상 나래를 펼쳤었다.
이후 완성된 광고는 확인을 못해서 아직까지도 너무 아쉽다. 내 모습이 나왔을까?
몰골이 엉망진창이었던 그때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