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와 <빅 피쉬>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는 소수에 불과했던 현생 인류 '사피엔스'종이 지구 상에서 가장 번영한 종이 된 데에는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가장 주효했다고 말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에 대해 거짓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여러 집단을 하나로 묶고 거대한 문명을 건설케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종교 역시도 하나의 거대한 거짓말이다. 진실이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믿는다는 지점에서 허구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허구를 함께 공유하며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유대감을 형성했다는 것이 하라리의 주장이다.
진실을 위한 날은 없어도, 거짓말의 날인 만우절은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까. 어쨌거나 거짓말이 인류의 승리에 기여했다는 주장은 살아오며 꽤나 많은 거짓말을 해왔던 내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나의 행동은 종족의 특성, 그야말로 '종특'이었던 것이다. 물론 나의 거짓말은 그런 거국적인 의미를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상황모면의 기술에 가깝긴 했다. 학창시절 숙제를 안한 벌을 모면하기 위해 집에 두고 왔다고 뻥을 친다거나, 화난 여자친구를 달래려 습관처럼 으레 '사랑한다'고 말했던 일들이 그랬다. 이쯤되면 인류의 강력한 무기인 '거짓말'을 내가 너무 개인적인 용도로 악용한 걸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찮아도 팍팍한 인생에서 그 정도 무기 하나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긴 하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주인공 '귀도'의 거짓말은 사실 우리가 대개 하는 거짓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거짓말 역시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그가 피하려 하는 것이 개인적인 실수에 의한 상황이 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 중 하나라는 사실은 그의 거짓말을 숭고하게 만든다. 그는 "개와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인종차별적 문구에 아이가 상처받지 않도록 누구나 싫어하는 사람을 금지할 수 있다고 거짓말 하고, 수용소에 끌려가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는 지금 게임을 하러 온 거야"라며 아이에게 태연하게 말한다. 그에게는 히틀러나 무솔리니에게 대항할 수 있는 힘이 없다. 다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짓말을 통해 소중한 가족이 받게 될 상처를 조금 덜어주는 일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거짓말은 생존투쟁에 가깝다. 그가 처한 현실은 그런 거짓말이 아니고서는 배겨낼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빅 피쉬> 역시 거짓말을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늘 아들에게 허무맹랑한 젊은 시절의 영웅담을 늘어놓았는데,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지긋지긋해져 그의 거짓말을 증명할 증거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아들은 진실을 찾는 도중에 깨닫고야 만다. 아버지의 거짓말은 대부분 실제로 겪은 일에서 조금 과장을 보탠 것이었으며, 그 모든 것의 바탕에는 자신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진실과 거짓의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거짓말로써 한 사람이 전달하려고 하는 감정에 있다. 때로 그것은 누군가를 진심으로 배려하는 마음이고, 때로는 진심어린 사랑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가며 무수히 많은 거짓말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거짓말은 현실을 회피하는 수단이며, 현실이란 늘 우리의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어 피하고 싶어지기 일쑤니까. 하지만 나는 멋진 거짓말에는 다만 현실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바꾸어내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숙제를 했다고 선생님께 거짓말 했을때, 나는 그걸 현실로 만들기 위해 그날 밤을 꼴딱 새어 숙제를 해갔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다신 사랑따위 안할거라 다짐했을 때 나를 구원해주었던 건 로맨틱코미디 속 커플의 진심어린 연애였다. 현실은 그와는 절대로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런 멋진 거짓말을 통해 나는 다시 사랑을 믿고 싶어지게 됐다. 빅 피쉬 속 대사처럼, 때로는 초라한 진실보다 환상적인 거짓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