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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하면둘 Jun 15. 2019

<붉은 돼지> 리뷰

순수한 캐릭터, 매력적인 판타지 세계, 주인공의 성장스토리. 미야자키 하야오 애니메이션은 이러한 매력들로 수많은 팬덤을 이끌고 있다. 나 역시도 어린 시절부터 그의 동화같은 상상력에 매료되어 그의 작품 대부분을 사랑해왔다. 헌데, 내가 본 영화 <붉은 돼지>는 이런 부분을 감안할 때 결코 그의 대표작이 될 수 없다. 이 영화에는 미야자키의 작품을 대표하는 요소들이 모조리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는 매력적인 판타지의 세계도 없고, 중년의 돼지 아저씨는 다른 작품에서의 소녀 캐릭터와 같이 그다지 순수하지도 않다. 그러나 지브리 영화의 매력 포인트가 모두 빠져있음에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영화가 그의 작품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국채를 사서 애국하라는 은행원에게 포르코의 대답.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질문은 아마도 '그는 왜 돼지가 되어야 했을'일 것이다. 변신의 서사에서 그 중심은 필연적으로 변신에 관한 내용일 수밖에 없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감독이 할머니가 된 소피가 '어떻게'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것인지 그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영화에서는 '왜' 그가 돼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가 중요하다. 그는 본인의 선택으로 돼지가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이 미야자키 하야오 영화에서 드물게 현실의 공간인 1920년대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그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소크라테스는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인간으로 살겠다"고 했다. 단순히 말하긴 어렵겠지만, 돼지는 이처럼 생각없이 살아가는 많은 존재의 대표적인 메타포다. 그러나 어떤 시대는 생각이 있는 인간으로 사는 것을 더욱 힘들게 한다. 작품이 그리고 있는 시대가 그렇다.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급속도로 퍼지던 시대. 인간으로 살아가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분별있는 이는 국가 폭력에 희생당해야 했을 것이고, 소신껏 한 쪽 편에 서는 일은 곧 다른 쪽을 죽인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주인공 마르코 역시 인간으로서 그러한 일을 겪어왔다. 그렇기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돼지로 살아가기를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상황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돼지로 변한 주인공 '마르코'는 작품 속에서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된다.


"날지 못하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

주인공인 마르코가 지브리 영화의 다른 캐릭터들과 가장 다른 점은 그가 자신을 맞서고 있는 세계를 정면돌파하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브리 영화의 소녀 캐릭터들은 순수한 마음과 용기를 무기로 소위 말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정면돌파해나간다. <원령공주>의 공주는 자연을 해치는 사람들과 맞서 싸우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역시 위선이 가득한 마녀의 세계를 깨어 나간다. 그런데 <붉은 돼지>의 마르코는 파시즘이 퍼지고 있는 세상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럴 능력도 없어 보이긴 하지만, 맞설 의지 자체가 없다. 그는 자진해 돼지가 되면서 현실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돼지에겐 국가도, 법도 없다"는 말은 그의 이러한 태도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이 돼지는 지브리의 다른 어떤 캐릭터들보다 다 커버린 우리들을 닮아있다. 그의 다른 영화가 어린이들이 바꾸어 나갈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 한다면, 이 영화는 현실을 바꿀 수 없는 어른들이 지키고 싶은 다만 몇 가지를 이야기 한다. 마르코에게는 세상을 바꿀 의지는 없어도, 꼭 지키고 싶은 것들이 있다. 에게 그것은 자유롭게 '비행'하는 행위이다. "날지 못하는 돼지는 그냥 돼지일 뿐이야"라는 그의 말은 그가 이 비행을 단순한 비행이 아닌 자신의 존재 의미로서 생각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시즘을 위해, 국가의 스폰서로 비행하는 옛 친구는 취미로 하는 비행이 무의미하다 비난하지만, 그 무의미한 비행이야말로 그의 말 그대로 돼지를 단순한 돼지가 아니게 한다. 나를 '나'이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런 무의미한 일들이다. 그렇기에 그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이를 지켜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돼지의 모습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소확행' , '취미'로 나 자신을 지켜나가려 노력하는 지금의 우리와 매우 닮아있다.


자신의 '과거' 역시 이런 소중한 것들 중 하나다. 마르코가 느끼고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에게 가장 큰 힘이 되어주는 것은 과거의 친구 마담 '지나'다. 그가 그녀의 술집 찾아가는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함께 과거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다 커버린 어른에게 아마도 그것만큼 큰 위안은 아마 없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결국에 그를 늘 지켜주는 사람이 '지나'인 것은 그가 그토록 부정하는 자신의 인간시절 과거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미야자키 하야오는 평소 애니메이션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철학을 인터뷰를 통해 밝힌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만큼은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라며 단언했다. 나 역시도 이에 동의한다. 이 영화는 미래를 향하는 영화라기보다 과거의 향수에 대한 영화이며, 바꾸어 나갈 것들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지켜야할 것에 대한 영화다. 과거를 자꾸만 돌아보게 되고, 지켜야할 것만 늘어나가는 것. 그것이 '어른이 된다'는 말의 다른 의미라면, 이 영화를 어른들을 위한 유일한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이라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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