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코미디 찬양론
어울리지 않게 나는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한다. 어디가서 이야기하면 '으악'하는 반응이 나올 때도 있지만, 이 취향은 사뭇 확고하다. 주인공 두 사람이 온갖 역경을 헤쳐 나와 결국엔 사랑에 골인하고야 마는 이 장르가 뻔하다면 뻔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사실 스릴러는 그저 살인범을 잡는 이야기이고, 누아르는 쉰내 나는 아저씨들의 영역다툼일 뿐이다. 반면 로맨스는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하는 장르다. 거의 최초의 서사라는 <일리아드> 역시 크게 보자면 헬레네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한 파리스의 투쟁이 아닌가. 사랑만큼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인간의 욕망은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결국에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장면은 언제봐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로맨스라는 장르의 의미는 여기에 있다. 나 하나뿐이라고 생각되던 인생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이가 한 사람 더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나보다 더 나를 생각해주고, 너보다 더 너를 생각함으로써 인생의 주어가 복수형이 될 때. 우리는 더할나위 없는 위로를 받게 된다. 연애를 시작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이 우주 속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또 오해영'은 그런 의미에서 로맨틱 코미디의 본령에 충실한 드라마다. 결혼식 당일에 차인 남자와, 결혼 전날 이별 통보를 받은 여자. 이 둘은 그 '하나가 둘이 되는 세계'의 문턱에서 쫓겨난 사람들이다. 두 사람의 이별은 일방적인 문전박대였다. 그렇기에 이들이 가진 상처는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극 중 도경은 아래와 같은 말을 한다. 사랑의 환상은 깨지고, 결국에 다시 혼자라는 사실이 와닿는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빠지게 된다. 나와 같이 누군가에게 버림받고, 혼자 된 사람이 있다는 것. 나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 그렇게 그들은 서로에게 있어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어준다. 앞서 말했듯이 연애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행위라면, 두 사람의 사랑은 그 본래의 의미에 무엇보다도 충실한 사랑이다.
"별 일 아니라는 말보다, 괜찮을 거라는 말보다, 나랑 똑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게 백 배 천 배 위로가 된다." - <또 오해영 3회>
그러나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었던 그 사람이, 사실은 자신의 상처를 유발했던 사람이라면? 또는 그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입힌 사람이 나였다면? 이 드라마의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다.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것은 다른 어떤 외부의 사람이 아닌 그들의 마음이다. 이 지점이 이 드라마를 특별한 로맨틱 코미디로 만든다. 남자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여자는 혼란에 휩싸인다. 운명의 장난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을 그들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많이 극화되긴 했지만, 이런 상황은 우리가 실제로 연애할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완벽하지 않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줄 수밖에 없다. '전쟁 같은 사랑'이라고 했던가. 사랑이란 어쩌면 서로를 상처입히는 전쟁일 지도 모른다. 연애를 하며 우리가 대답해야 하는 질문은, 또 오해영에서 주인공 두 사람이 마주한 질문과 같다. 그것은 '이 모든 상처를 떠안으면서도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가?'라는 이 땅의 모든 연인들이 풀어가야만 하는 난제다. 그렇기에 '사랑한다'는 말 앞에는 늘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생략되어 있는 지도 모르겠다.
로맨틱 코미디는 그 자체로 일종의 판타지다. 현실에서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이별을 택할 때도 있지만, 그런 걸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이별은 현실로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그렇기에 또 오해영의 결말은 모든 연인들이 바라는 해피엔딩이다. 미래를 볼 수 있는 남자는 자신의 '마음의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여자는 과거를 훌훌 털어버리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을만큼 용기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 우주에서 다시금 혼자되는 일이 죽기보다도 무서운 사람들이다.
죽기 전에 서로의 손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기어가는 이 장면. 수많은 영화에 나오는 이 장면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안다. 왜 그렇게 상대의 손을 잡기 위해서 힘들게 움직였는지. 곧 어디로 갈 거 같은데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 공포. 완전히 혼자가 된다는 공포. 그 공포의 순간에 애타게 갈망하는 누군가의 손. 혼자가 아니라고 확인받고 싶어 하는 손. 손만 잡아주면 그 공포는 사라진다. 모든 공포를 사라지게 하는 손의 힘. <또 오해영 18화>
"인간은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떠난다."는 이 말을 종종 누군가는 "인간은 홀로 태어나, 홀로 떠난다."고 바꾸어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전자에는 동의하면서도 후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간은 두 사람의 사랑이 있어야만 태어날 수 있으며, 떠날 때에 홀로이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나를 제외한 '단 한 사람'이다. 로맨틱 코미디의 서사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