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혹은 이별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몇 번을 봐도 볼 때마다 다른 감상을 주는 영화가 있다. 내게는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가 바로 그런 영화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느껴졌던 것이 눈과 첫 사랑의 풋풋함이었다면, 이 후에는 계속해서 영화 속에 있는 죽음과 우울감이 눈에 밟혔다. 이 영화의 매력은 수도 없이 많다. 감촉이 느껴질 것만 같은 생생한 소품들, 홋카이도의 풍경,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 영화를 가장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이 영화가 '첫 사랑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테마를 다루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러브레터>는 가장 동떨어져 있을 것만 같은 이 둘의 상관관계를 가장 촘촘하게 엮어낸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가 기존의 로맨스 영화와는 다른 묘한 느낌을 준다.
죽음에서 삶으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다른 영화가 선택하는 방식과는 반대로 흘러간다. 보통의 멜로 영화가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을 이용해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보여준다면, 이 영화는 거꾸로 죽음에서 시작해 삶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는 주인공인 히로코가 눈밭에서 검은 옷을 입고 숨을 참는 장면이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 역시 히로코의 약혼자인 이츠키의 2주기 추도식이다. 이는 이 영화가 누군가의 죽음으로써 시작한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과거 이츠키가 자신의 첫 사랑에게 보낸 그림(일종의 러브레터)가 여자 이츠키에게 도착하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죽음에서 시작해, 결국 사랑으로 끝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죽음은 이 영화에서 사랑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약혼자의 죽음으로 인해 히로코가 편지를 쓰게 됨으로써, 이츠키(여)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하는 것은 '기억'이다. 이츠키는 그 남자에 관한 어린 시절 기억을 하나 둘 씩 떠올리며, 여태까지는 알지 못했던 그 남자의 자신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그 '기억'으로 인해서 이 영화는 죽음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해피엔딩으로 다가올 수 있게 된다.
편지
인물들을 죽음의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매개는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편지'다. 약혼자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은 '편지'로 인해 조금씩 삶으로 걸어나오게 된다. 편지는 한 쪽으로만 통하는 편도행 열차다. 그렇기에 편지를 먼저 쓴 사람인 히로코는 편지를 통해 자신에게 남아있는 옛 약혼자의 기억들을 떠내려 보내고, 편지를 받게 된 이츠키는 알지 못했던 사랑의 기억을 받게 된다. 그렇게 서로의 기억들을 주고, 받으며 그들은 죽음의 영향력에서 조금씩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또 한가지, 편지라는 매체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차다. 편지는 바로 그 편지의 대상에게 닿지 못한다. 이츠키(남)이 이츠키(여)에게 보낸 편지는 당사자에게 바로 닿지 못하고, 돌고 돌아 아주 긴 시간이 지나 후배들에 의해 발견되어 수신자에게 도착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차 덕에 두 사람을 둘러싼 수많은 추억들이 채워질 수 있었다.이츠키(남)은 편지가 도착하는 시간 동안 히로코를 만났고, 이츠키(여) 역시 학창시절 그녀에게선 찾을 수 없는 여유를 보여준다. 이처럼 편지가 낭만적인 매체인 이유는 그 시간 차 속에서 감정이든, 기억이든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별과 기억
너무 오그라들어서 이제는 밈으로 사용되는 원피스의 명대사가 있다. "사람이 죽는 건 바로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 때다."라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러브레터>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야 말로 저 대사와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죽음은 사실상 완전한 이별에 가깝다. 다시는 볼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는 것이 이별이라면 죽음이야 말로 진정한 이별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억'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속에서 사랑은 죽음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기억을 통해 다시금 우리를 찾아오고야 만다. 이는 이와이 슌지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보여주는 한 가지 테마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기억이 남아있는 한 완전한 이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