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가 내 앞에서 더 이상 울지 않게 된 이유
실수는 깨진 조각이 아니라, 다시 맞추어 나가는 과정일 뿐이었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30년 넘게 특수교사로 일하며 수많은 아이의 성장을 지켜봤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린 아이들, 수천 번을 반복해야 겨우 한 발을 떼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늘 '기다림'을 말하는 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 자식의 실수와 뒤처짐 앞에서는 나 역시 한없이 작고 조급한 엄마일 뿐이었습니다.
캐나다 이민 초창기,
낯선 땅에서 내 아이들이 뒤처질까 봐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영어가 빨리 늘지 않는 아이를 앉혀두고 직접 가르치다 보면,
어느새 내 목소리는 높아져 있었습니다.
"왜 이걸 아직도 몰라?"라는 말속에는 아이를 향한 걱정보다,
이민 생활의 불안감을 아이에게 투사했던 나의 부끄러운 민낯이 숨어 있었습니다.
공부의 압박감을 견디다 못한 딸아이가 머리카락을 뜯어내어 원형탈모가 생긴 것을 보았을 때도,
나는 아이의 아픔을 먼저 보듬지 못했습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며 펑펑 우는 딸에게 위로 대신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너만 힘드냐, 엄마 아빠는 더 힘들다"는 날 선 말들이 아이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겠지요.
그날 이후, 딸아이는 내 앞에서 다시는 울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강해진 줄 알았습니다.
이제야 철이 들어 감정을 다스릴 줄 알게 된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강해진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안전기지'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었습니다.
내 화가 아이의 눈물을 닦아준 게 아니라,
엄마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슬픈 다짐을 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실수를 견디지 못할 때,
아이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합니다.
완벽해지기 위해 자신을 학대하거나,
아니면 실수를 숨기기 위해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후자의 문턱까지 갔던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엄마, 나 실수했어. 나 너무 힘들어." 아이가 이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건,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부모가 나의 실수를 포용해 줄 만큼 '안전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이의 실수나 성적표 앞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시나요?
그때 잠시만 숨을 고르고 나 자신에게 물어봐 주세요.
'지금 내가 화를 내면, 이 아이가 나중에 힘들 때 다시 나를 찾아올까?'
완벽한 부모가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는 품을 가진 부모는 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내 앞에서 눈물을 거두는 순간,
우리는 아이의 성적을 얻는 대신 아이의 마음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전문가인 저도 제 아이에게는 참 서툰 엄마였습니다.
저의 아픈 기억이 여러분에게는 위로와 멈춤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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