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실수를 견디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내 아이가 내 앞에서 더 이상 울지 않게 된 이유

실수는 깨진 조각이 아니라, 다시 맞추어 나가는 과정일 뿐이었음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30년 넘게 특수교사로 일하며 수많은 아이의 성장을 지켜봤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느린 아이들, 수천 번을 반복해야 겨우 한 발을 떼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늘 '기다림'을 말하는 전문가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내 자식의 실수와 뒤처짐 앞에서는 나 역시 한없이 작고 조급한 엄마일 뿐이었습니다.


캐나다 이민 초창기,

낯선 땅에서 내 아이들이 뒤처질까 봐 전전긍긍하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영어가 빨리 늘지 않는 아이를 앉혀두고 직접 가르치다 보면,

어느새 내 목소리는 높아져 있었습니다.

"왜 이걸 아직도 몰라?"라는 말속에는 아이를 향한 걱정보다,

이민 생활의 불안감을 아이에게 투사했던 나의 부끄러운 민낯이 숨어 있었습니다.


mirna-rivalta-4IiRByTJNQs-unsplash.jpg "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무게를 나는 왜 '성적'이라는 잣대로만 재려 했을까요."


공부의 압박감을 견디다 못한 딸아이가 머리카락을 뜯어내어 원형탈모가 생긴 것을 보았을 때도,

나는 아이의 아픔을 먼저 보듬지 못했습니다.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며 펑펑 우는 딸에게 위로 대신 화를 냈던 기억이 납니다.

"너만 힘드냐, 엄마 아빠는 더 힘들다"는 날 선 말들이 아이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혔겠지요.

그날 이후, 딸아이는 내 앞에서 다시는 울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가 강해진 줄 알았습니다.

이제야 철이 들어 감정을 다스릴 줄 알게 된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달았습니다.

아이는 강해진 것이 아니라,

엄마라는 '안전기지'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었습니다.

내 화가 아이의 눈물을 닦아준 게 아니라,

엄마에게는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슬픈 다짐을 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unnamed (14).jpg "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무게를 나는 왜 '성적'이라는 잣대로만 재려 했을까요."


부모가 아이의 실수를 견디지 못할 때,

아이는 두 가지 길을 선택합니다.

완벽해지기 위해 자신을 학대하거나,

아니면 실수를 숨기기 위해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후자의 문턱까지 갔던 딸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뒤늦게 후회했습니다.

"엄마, 나 실수했어. 나 너무 힘들어." 아이가 이 말을 건넬 수 있다는 건, 부모가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부모가 나의 실수를 포용해 줄 만큼 '안전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아이의 실수나 성적표 앞에서 화가 치밀어 오르시나요?

그때 잠시만 숨을 고르고 나 자신에게 물어봐 주세요.

'지금 내가 화를 내면, 이 아이가 나중에 힘들 때 다시 나를 찾아올까?'


pexels-patuur-35284592.jpg "아이가 다시 내 앞에서 마음 놓고 울 수 있을 때까지, 저는 이 자리를 지키려 합니다."


완벽한 부모가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는 품을 가진 부모는 되어야 합니다.

아이가 내 앞에서 눈물을 거두는 순간,

우리는 아이의 성적을 얻는 대신 아이의 마음을 잃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전문가인 저도 제 아이에게는 참 서툰 엄마였습니다.

저의 아픈 기억이 여러분에게는 위로와 멈춤의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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