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다시 쓰는 인생의 동행
30년 전 처음 만났던 그때의 우리에게, 잘 나이 들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서로의 서툴음을 가장 잘 알던 사회 초년생 시절이었습니다.
같은 직장에서 매일 아침 안부를 묻고,
산더미 같은 업무 속에서 눈빛만으로 서로를 지탱하던 두 여자가
어느덧 서른 해의 계절을 함께 통과했습니다.
그사이 우리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고,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가 되었으며,
각자의 영역에서 뿌리 내린 중견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남편들과 아이들이 서로 형제처럼 자라는 동안 우리의 우정은 단순히 '친함'을 넘어 삶의 배경이 되었습니다.
"30년 전 그날처럼,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뒷모습을 응원하며 걷고 있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참 고마운 인연입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 곁에 머물러야 한다는
삶의 이정표를 제게 처음 세워준 이가 바로 이 친구였으니까요.
자신의 남편에게 지극정성인 친구의 뒷모습을 보며,
저 역시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고 덕분에 제 가정에도 온기가 돌았습니다.
제가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캐나다에 머물 때도,
친구가 보내준 정성 어린 한복 한 벌은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녹여주는 고국 소식 같았습니다.
그런 우리가 이번에 처음으로, 단둘이 여행을 떠납니다.
사실 제가 가진 제주도행 티켓으로 근사하게 대접하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그간의 고마움을 갚고 싶은 욕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행 베테랑인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제안하더군요.
"가원아, 이번엔 그냥 내가 짜는 대로 따라와 줄래?"
그렇게 친구가 수줍게 내민 예약 확정 문자에는 고성의 '르네블루 바이 쏠비치'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친구의 세심한 안목으로 골라준 파란 방,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좋은 사람의 온기를 배웁니다.
송지호 해변의 푸른 바다가 통창 가득 담기는 그곳.
혼자 글을 쓰러 다니던 익숙한 호텔이건만,
친구가 "너 여기서 푹 쉬게 해주고 싶어"라며 골라준 그 파란 방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수요일 제 수업 일정을 듣고는 "그럼 무리하지 말고 1박 2일로 굵고 깊게 쉬다 오자"며
설악산 자락까지 일정에 넣어주는 세심함.
30년 지기만이 건넬 수 있는 이 무해하고 따스한 배려가 제 마음을 벌써 속초 바다 앞에 가져다 놓습니다.
거창한 맛집을 찾기보다 속초 어시장에서 주전부리를 사 와 숙소에서 도란도란 나누어 먹고,
아침 바다를 보며 우리가 걸어온 30년과 앞으로 걸어갈 시간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친구가 내어준 '파란 방' 하나.
그곳에서 저는 다시 한번 배울 것 같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 걷는 길이 얼마나 평온한지,
그리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30년을 지켜온 이 관계가 얼마나 단단한 축복인지를 말입니다.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푸른 물결을 향해 달리고 있겠지요.
30년 지기, 우리들의 '첫' 단둘 여행이 이제 막 시작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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