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잃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쉼
요즘 우리는 ‘멈춘다’는 것에 대한 불안을 품고 살아갑니다.
달리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잠시 쉬면 세상이 나를 잊을 것만 같습니다.
SNS에는 언제나 누군가의 성취가 쏟아지고,
‘하루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법’이라는 문장이 마치 정답처럼 떠다니죠.
그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조급해지고,
몸이 쉬어도 마음은 쉬지 못합니다.
이유 없이 피곤하고, 이유 없이 마음이 허전한 날들.
그건 게으름이 아니라, 과속으로 달린 삶이 보내는 신호였습니다.
저는 한동안 쉼에 죄책감을 느끼는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없으면 불안했고, 일기를 쓰다 멈추면
‘시간 낭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울 속 제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눈 밑에는 짙은 그늘이 있고, 표정에는 여유가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내가 너무 오래 달려왔구나.”
그날 이후로 저는 멈추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단 5분이었어요.
휴대폰을 멀리 두고, 창문을 열어 바람을 느끼는 것부터.
그 짧은 시간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니
처음엔 오히려 불편했어요.
하지만 멈춤의 불편함 속에서
조금씩 내 안의 소음이 사라지는 순간을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쉬는 것도 실력”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쉴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쉬어야 하는 이유를 머리로는 알아도,
몸과 마음이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멈춤의 진짜 의미는 ‘아무것도 안 하기’가 아니라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입니다.
멈출 때 우리는 지금의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고,
해야 할 일보다 소중한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매일 저녁 10분씩 ‘무의미한 시간’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음악도, 휴대폰도, 말도 없는 시간.
그 시간에 생각이 정리되고,
쌓여 있던 감정이 조금씩 녹아내렸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다음 날의 집중력은 오히려 높아졌습니다.
멈춤이 곧 생산성의 반대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배웠습니다.
하루의 끝에서 잠시 숨을 고르면,
그동안 놓쳤던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창가에 피어난 화분의 새잎,
늦은 밤 나를 기다려주는 불빛,
조용히 흘러나오는 라디오 소리.
그 모든 순간이 나를 다시 현실로 붙잡아주는 끈이었습니다.
멈춤의 시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다음엔 잘해야지”가 아니라
“지금도 괜찮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건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짧은 위로 한마디가 다음 하루를 버티게 해주는 가장 큰 에너지였습니다.
이제는 누군가 “요즘 뭐 해?”라고 물으면
“잠깐 쉬고 있어요.”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말이 예전에는 두려웠지만,
지금은 제일 나다운 문장이 되었습니다.
멈춘다는 건 포기가 아니라, 다시 나아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기계도 과열되면 식혀야 돌아가듯,
우리의 마음도 식힐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 시간을 허락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단단해집니다.
오늘 하루, 단 10분이라도 괜찮아요.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다시 나를 찾습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