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선물 받은 책 ‘가족을 끊어내기로 했다’를 이제 읽기 시작했다. 사실 선물 받자마자 책을 펼쳤다가 머리말을 읽으면서 숨 고르기를 하기로 했다. 나와 같은 사람을 ‘학대 생존자’라고 표현한다는 것을 보며 분명히 단단한 힘을 기르게 해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시에 너무나 많은 나를 마주하게 될 것 같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단숨에 읽어낼 수 없고, 대충 읽어선 안 되는 책이라서 조금씩 천천히 읽어보기로 했다. 오늘 읽은 부분에서는 학대 생존자에게 ‘해로운 가족’이 어떤 사람인지 분명히 정의하고, 그들과 관계를 끊으면서 학대 생존자가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이 설명되어 있었다. 머리말의 제목처럼 책에서는 내내 ‘그래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학대 생존자가 가족과 관계를 단절하는 것은 정서적 학대 가해자를 배신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자신의 결정을 의심하지 말자. 다만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욕구가 가족으로부터의 안정감을 원하기 때문에 내가 끊어낸 가족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어서 혼란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탑에서 탈출한 라푼젤이 겪는 마음의 동요를 학대 생존자는 아주 긴 시간 겪을 것이고, 내면의 힘을 길러서 가족으로부터 얻어야 했던 안정감을 대신하더라도 순간순간 자신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혼란과 의심 때문에 ‘나를 지키겠다’는 결정을 뒤집지만 않는다면, 어떤 감정을 느끼든 당연하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도 된다.
생각보다 힘들지 않게 읽어 내려갔다. 어제 좀 울었던 것이 도움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겪은 학대는 나의 경우와 매우 달랐지만, 책의 모든 문장이 내 마음을 옮겨둔 것 같았다. 이 모든 것이 결국 내 책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순전히 이기적인 마음으로 한 결정일지 걱정하는 마음에 대해 그 어느 곳에서도 답을 주지 않아서 자신이 쓰기로 했다는 저자에게 마음 깊이 감사했다.
나처럼 이 책을 눌러 읽고 있을 그 사람은 어떤 고통을 견뎌내고 있을까. 우리는 그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우리에게 그런 힘이 있으면 좋겠다. 이야기하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나는 항상 여기에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정말 힘든 순간에는 누구도 만날 수 없으니까. 내 속에 들끓는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듣는 사람에게 그 고통이 조금이라도 전이될까 봐. 그 사람이 들어줄 힘이 없다고 나에게 말하지 못할까 봐. 나는 꺼낼 수 없다. 그가 나에게 힘이 되는 것처럼, 나도 그에게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할 뿐이다.
나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