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무암 Jun 01. 2024

여전히 표류 중인 '나'

기분쓰기클럽 1일차 - 표류하는 포즈

아주 오랫동안 나는 부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알지 못하는 기분. 머릿속에 안개가 자욱하고, 내 몸에서 내가 떠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길을 걷다가도 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도 나는 자주 '나'를 쫓아다녔다. 동시에 내 육신을 떠난 '나'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부유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부유하는 '나'를 쫓는 일을 잊었다. 가족과 사회로부터 주어진 역할은 나를 바삐 움직이게 했고, 그저 가끔 내가 왜 움직이고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작년 가을, 나를 그려 보라던 심리상담 선생님의 말씀에 내가 그리고 싶었던 것은 부유하던 '나'였나보다. 그때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눈, 코, 입, 귀, 손가락, 발가락 없이 서 있는 그림자를 그렸고, 내 의도를 한참 설명해야 했다. 그 후로 너무 오래 쫓지 않아서 잃어버렸던 '나'를 만나기 위해, 긴 시간 동안 천천히 안개 속을 걸었고 아주 가끔 만날 수 있었다.


한 달 전 기분쓰기클럽 첫 시간에 이 포즈를 배우면서, 어느 때보다도 선명하게 '나'를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그리려고 해도 그릴 수 없었던 눈, 코, 입, 귀를 그렸던 날이니까. '너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며 한참 들여다봤다.

아직 '나'는 어딘가 단단히 딛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때보다는 실재하다고 느낀다.



작가의 이전글 모든 아침은 기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