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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무암 Dec 24. 2023

모든 아침은 기적

출근길, 여느 때처럼 바쁘게 달려가는데 문득 내 다리가 상체를 겨우 쫓아가고 있다고 느껴진다. 마치 누군가가 내 뒷덜미를 잡고 앞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쏟아지는 모양새로. 지각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가면서도 마음이 급해서 상체가 자꾸만 앞으로 기울어진다. 내 다리는 머리로부터 너무 멀어서 다급한 마음을 따라주지 못한 걸까. 다리가 “오늘 하루만 쉬자!”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날은 머리가 다리를 이겼고, 무사히 출근했다.

가방을 최대한 아래로 내려서 잡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잰걸음으로 자리에 간다. 마치 잠깐 화장실에 다녀온 것처럼. 최대한 작은 소리로 호흡을 가다듬는데 갑작스럽게 허탈감이 몰려온다. '내 시간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라고 할 수 있나?' 근무 시간을 중심으로 하루가 계획되는 직장인 특성상 오늘 하루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은 회사에 출근하는 것. 퇴근 후에는 밤의 끝을 붙잡고 지금부터 자면 몇 시간 잘 수 있는지 계산하고, 아침에는 10분에 한 번씩 울리는 알람을 대여섯 번씩 끄면서 지각하지 않을 수 있는 마지노선에 맞추어 일어난다. 즉 내 시간은 모두 회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내 시간의 주인은 회사인가?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기에, 나의 하루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방법을 찾기로 한다. 바로 일상 속 챌린지를 통해서! 그때 만난 어플은 챌린저스. 기상, 운동, 물 마시기 등 좋은 습관을 만드는 챌린지가 1주~1달 단위로 열리고, 각 챌린지를 원하는 만큼 돈을 걸고 도전하는 어플이다. 나는 보통 오천 원에서 만 원 정도 걸었다. 100% 성공하면 상금을 주고, 85%만 성공해도 참여비를 전액 환급해 주니까 안 할 이유가 없잖아?

친구들이 나를 챌린저스 마니아라고 부를 만큼 많은 챌린지를 시도했다. 아침 6시 일어나기, 밤 12시 이전에 잠들기, 하루에 20층 계단 걷기, 주 3일 만 보 걷기, 주 3일 30분 달리기, 필사하기, 책 읽기, 스쾃하기 등등 2년 동안 참여했던 챌린지는 198개. 그렇다면 달성률은? 2021년 평균은 77.2%, 2022년 평균은 54.2% 점점 떨어졌다. 좋은 습관을 하나씩 길러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초반에 비해, 나중에는 챌린지 참여비를 깎아 먹어도 커피 한 잔 덜 마신다 생각하며 포기하길 반복했다. 달성률이 점점 떨어질수록 ‘역시 나는 인내심이 부족하고 이런 간단한 습관을 만드는 챌린지도 해내지 못해.’라며 자책하다가, 2주 동안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챌린지가 생겼을 때 드디어 챌린지 신청을 멈췄다.

내 시간의 주인이 되고 싶어서 도전을 시작했건만, 챌린지라는 또 하나의 주인님을 모셔 온 것뿐이었다. 온전한 나의 시간에 가장 엄격하고 혹독하게 나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생각한 ‘내 시간의 주인이 되는 방법’은 의미 있는 일들로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차근차근히 해내는 것이었는데, 나중에는 왜 그것도 못 해내냐며 울고 있었다. 오래된 우울함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잠시 멈춤. 나는 나 자신과 화해의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를 다독여 본다. 원하는 만큼 게으르게 나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괜찮아."를 입에 달고 살면서 내가 하는 모든 실수와 실패를 용서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위로했다. 괜찮아, 괜찮다, 다 괜찮아질거야 하고.

다섯 달쯤 지났을까. 오랜만에 하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 사실 이것은 오랜 로망이었는데, 바로 새벽에 일어나서 강변을 달리는 것.―참고로 나는 달리기를 잘 못 한다.―내 주변에는 오랜 기간 새벽 기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아침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내는 것을 보면서 저것이야말로 내 시간의 주인이 된 모습이라고 느꼈다. 미라클 모닝! 언뜻 보면 2년간 내가 수많은 챌린지를 신청한 것과 비슷해 보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나는 챌린지 목록을 만들고 그것을 하루 중 어느 때라도 해내려고 노력했다.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을 챌린지로 정해두었으나 성공한 적이 거의 없으므로 어느 시간에 무엇을 한다는 계획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라클 모닝을 하는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자신을 돌보고 있었다.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각자의 호흡으로 시간을 사용하는 것. 바로 내가 원하는 것이었다. 지난 2년간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아주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다섯 시 반에 일어나 보자. 그런데 이번에는 어디에 인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 혼자 하는 거야. 분명 못 일어나는 날이 생기겠지만 절대 나를 탓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 지금 나는 제법 잘 해내고 있다. 제일 맛있는 아침잠이라는 난관을 뚫기 위해 첫날은 거의 눈을 감고만 있는 수준으로 긴장했지만 갈수록 일어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도 매일 그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지인들과 함께하는 저녁 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미라클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는 날은 일주일에 네 번 정도?

그렇다면 새벽 러닝을 하고 있느냐? 그렇지 않다. 내가 러너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을 뿐. 새벽에 일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주로 따듯한 물을 천천히 마시며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일이었다. 주제도 틀도 없이 마구 쏟아내고 나면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일 생각이 떠올라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회사 밖에서 일 생각이 나면 대체로 화가 나는 편이다.―하지만 그것이 나의 루틴이라 말하지 않는 이유는 가끔 잠이 깨서 정신이 말짱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저 누워있기 때문이다. 몸이 지쳤는지 마음이 지쳤는지 어느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는 날은 나를 좀 내버려 둬도 괜찮다. 어떤 날은 온 집의 창문을 열고 화분들에 물을 주며 얼른 분갈이를 해야 한다고 반성도 하고, 미뤄뒀던 책상 정리도 한다.

누군가는 확신의 말도 없고 시각화할 비전도 없고 무엇보다 인증샷도 없는 이 노력이 무슨 미라클 모닝이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수많은 동기부여 문구가 내가 원하는 힘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인증샷을 올리면서 함께하는 동료들과 서로 힘을 주고받는 것보다는 너그럽게 불완전함을 수용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특정 시간에 일어나 루틴대로 움직여야만 미라클은 아니다. 나의 기적은 하루의 시작을 내가 원하는 호흡으로 하는 것. 그러니까 그날 아침에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면서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이다. 동동거리지 않고 잔잔하게 시작하는 아침이면 된다.

그렇게 나의 모든 아침은 기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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