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C를 만났다. 더 일찍 연락하지 못해서 미안했던 마음을 전하고 하나 둘 근황을 이야기 하다보니 우리의 어떤 부분은 닮아있었다. 스스로를 억누르는데 익숙했던 과거와 끝없는 검열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노력하는 현재.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축하와 응원을 보냈다.
마음이 아픈 것을 타인에게 털어놓을 때는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 나는 오래 곁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들에게 그걸 털어놓는 중인데, 그럴 때 마다 무거운 주제를 꺼내서 상대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그래서 되도록 밝은 얼굴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C 앞에서는 어째서인지 다른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때보다 훨씬 마음 편히 이야기 할 수 있었다. 비슷한 결의 사람이라는 걸 서로 알았기 때문일까. 자세히 알지 못해도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중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일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C도 나와 비슷한 힘듦을 겪었다. 가족과의 관계에서 스스로의 감정을 억제당한 경험이 많았고, 분리가 힘들었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를 감정적으로 억누르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C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노력을 20대 때 시작했고, 긴 시간이 지난 지금 부모님이 드디어 C를 알아줬다고 한다.
“그 때 너 참 많이 힘들었겠네.“
그 어떤 말보다 강력한 사과였다. 알아준다는 것만으로 긴 시간 쌓인 억울함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내가 그 말을 들은 것 처럼 울컥했다. 감동적이었다. 사실 나는 지금 이 노력을 시작하면서 저런 결말을 기대한 적이 없다. 어쩌면 영영 평행선을 달리게 될거라고, 엄마에게 이해받을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뭐랄까, 그런 상황은 내 예상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은 예측 같은 걸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타인의 희망편을 봤어도 내 이야기는 절망편 일 수 있다. C도 본인의 결말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으니. 지금은 더 늦지 않게 시작한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오히려 저런 부모도 있는데 엄마는 왜 그러냐고 원망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기대를 버리는 연습을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