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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다 Sep 08. 2024

여학생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미묘한 친구 관계

  고1 담임을 맡고 있다. 고3 담임을 하다가 고1 담임을 맡으니 말년병장 같은 고3 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풋풋함이 느껴졌다. 수업을 힘들어하긴 하지만 어딘가 조금은 활기가 넘쳤고, 열심히만 공부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는 듯했다. 물론 아직은 어딘가 어리숙하고 본능에 충실한 날 것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학생들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코로나 시기를 겪었다. 한창 예민한 사춘기 시기에 온라인으로 수업하다 보니 친구들과의 갈등과 그 해결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었다. 몇십 년을 배워 온 어른도 관계가 힘든데 아이들은 오죽할까. 그래서 이제야 친구들 사이에서 갈등을 겪고, 자기 마음처럼 되지 않아 자주 담임을 찾는다.


  개학을 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A라는 여학생이 울먹이며 나를 찾아왔다. 자기를 포함해 같이 놀던 3명 중에 B라는 친구와 틀어지면서 혼자 그룹에서 떨어지게 된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표정이었다. 이 경우 나는 학교 폭력이 아닌 이상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아이들 사이에 개입할 수가 없다. B학생에게 억지로 그 친구와 잘 풀고 같이 다니라고 붙여 줄 수도 없고, 다른 친구를 동원해 일방적으로 A학생을 챙기라고 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일단은 아이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준다. 아이는 해결을 원하기도 하지만 단지 자신의 상황을 담임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편해질 수 있다. 요는 이랬다.

   

“선생님. 그 친구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룹을 리드하는 성격이잖아요. 그래서 모둠활동 시간에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서 조금 언성이 높아졌어요. 그 이후에 그 친구가 좋게 풀자며 대화를 해왔는데 결국 저한테 서운한 게 많았더라고요. 저는 하나하나 오해를 풀고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제가 무슨 얘기를 해도 시큰둥하고 리액션이 없어요. 저도 처음엔 기분 탓인가 했는데 점점 그게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하죠?” 

 

  이 상황에서 가장 문제는 이 학생이 B라는 친구에게 느낀 서운함을 너무 여러 명에게 이야기한 것이었다. 바로 그 며칠 사이에. 중간에 낀 C라는 친구는 자기가 B에게 잘 얘기해 보겠다고 했단다. 누구나 궁지에 몰리면 아군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최대한 아군이 될 친구들을 모으기 위해 여기저기에 B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결국 이 말들은 모두 자신을 향한 화살이 되어 돌아온다. 특히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첫째도 말조심, 둘째도 말조심, 셋째도 말조심이라는 것을 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깨달았다. 친구가 하는 타인의 험담에는 적당히 맞장구만 치고, 내가 누군가의 욕은 하지 않는 게 좋다. 나는 솔직하게 조언했다.


“니가 벌써 B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많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했구나. 이러면 니가 한 이야기가 와전될 수 있어.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니 이야기를 들은 B는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어. 특히 C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니가 C를 너무 믿고 B에 대해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거든. 서운한 일이 있을 때는 당사자들끼리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최고야. 오해가 없게. 최대한 빨리 니가 직접 B와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최대한 기분 나쁘지 않게, 목적은 그 친구와 잘 지내는 거니까.”


  A는 결국 다음날 B와 직접 이야기했고, 이야기는 잘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전보다 더 수척해진 얼굴과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다시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2주가 흘렀고, A는 결국 혼자 다니며 급식도 먹지 않고 도시락을 싸 오고 있다. 담임인 나는 이럴 때 가장 신경이 쓰인다. 나는 결국 B와 C 모두와 상담을 했다. 여러 명이 같이 놀 때 꼭 같은 정도로 친할 필요는 없고, 때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그냥 잘 지내는 관계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이해시키고 싶었지만 쉽지는 않았다.


  이런 일은 남학생들보다 여학생들 사이에 더 많이 일어난다. 작은 말에도 기분이 상하고, 집에서 계속 그 말을 곱씹고, 그러다가 친구들 사이에서 관계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고 불안한 마음이 들고 결국 학교에도 나오기 싫어지는 것이다. 간혹 여학생들 중에서도 마이웨이가 가능한 애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도 잘 다니는데 흔치는 않다. 그래서 간혹 학부모들은 자식들의 성적보다도 학교 안에서의 친구 관계를 더 걱정하시기도 한다.


  2주마다 랜덤으로 자리를 바꾸자 또 다른 학생들이 나를 찾아왔다. 짝을 지어주지도 않고 따로 한 명씩 앉혔는데도 근처에 있는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리를 바꿔 달라고 한다. 과목에 따라서 근처에 앉은 친구들과 모둠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어 신경 쓰인다는 것이다. 이때 나는 자리를 바꿔 주지 않는다. 항상 마음에 드는 학생으로만 주위를 구성할 수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누군가의 자리를 바꿔 주면 다른 학생들까지 본인들이 원하는 아이들 근처에 앉게 해달라고 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을 인내하지 못하고 관계를 쉽게 포기하거나 타인의 힘으로 쉽게 해결하려는 학생들을 보며 나는 조금 놀랐다.


  확실히 학교 안에서는 아예 공부를 잘하거나, 아주 재미있거나, 특별히 잘하는 것이 있거나, 눈치가 빠른 학생들이 관계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운동을 잘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마이웨이 스타일이든지. 하지만 이 모든 것에 해당 사항이 없는 학생들도 많기 때문에 학교에서 관계 맺기를 배워 가야 한다.




  <당신이 몰랐던 K>에서 저자 박노자는 지금 한국이 ‘관계 빈곤’에 시달린다고 말한다. 타인을 존중하려면 ‘동등’이 기본 이념이 되어야 하는데 위계가 기본 이념인 사회에서 존중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학벌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는 학생들끼리도 지나친 경쟁 속에 생활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소속감을 느끼기도 어렵다. 게다가 우리 사회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안에서도 권력관계가 형성되기에 친구들 사이의 위계도 보이지 않게 자리를 잡는다. 내 눈에 B는 보이지 않는 위계의 조금 높은 곳에서 A를 쳐냈다. A의 다소 현명하지 못했던 행동들을 핑계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꽤나 씁쓸했다.



  요즘 나는 매일 A가 급식을 먹는지 안 먹는지 확인하며 여러 번 말을 거는 것으로 관심을 표현한다. 교실 속 A의 어깨가 유독 축 처진 것이 신경 쓰이지만 나는 적절한 관심으로 그 학생이 스스로 관계 맺기에 단련이 되기를 바라며 지켜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이 조금 편안한 마음으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게 하려면 내가 어떡해야 할까. 처진 학생의 어깨만큼 내 어깨도 조금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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