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과목을 가르치다 보면 한 학년에 보통 3명의 선생님이 반을 나눠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혼자 가르치고 평가할 때는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명확히 이해하고, 평가 방식도 취향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여러 명이 함께 가르치면 상황이 달라진다. 같은 학습지를 사용해야 하고, 각자 강조하는 포인트도 미세하게 다를 수 있어 이 점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내신 점수가 대학 입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험 시즌마다 신경이 곤두서기 마련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험 문제 출제다. 선생님들 모두 전공자들이니 서로의 문제를 날카롭게 평가한다. 문제의 수준이 낮거나, 중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면 아무리 열심히 만든 문제라도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 특히 ‘국어’ 과목은 문학이나 긴 지문을 다루기 때문에 내용에 대한 다른 견해가 있는지, 달리 해석될 여지는 없는지 꼼꼼하게 따진다. 이런 협의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흔하다.
최근 복직한 나는 문제 출제에 특히 신경을 썼다. 정해진 날짜까지 세 명의 교사가 각자 문제를 제출하면, 편집 담당 선생님이 이를 합쳐 각자에게 배포한다. 그럼 우리는 문제를 풀어보며 오류를 확인한다. 그런데, 그날 집에서 시험지를 풀어보던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망했다. 이런 문제 처음 보는데.. 다 뜯어고쳐야겠는데.. 어떡하지. 어떻게 이런 문제가 나올 수 있지?’
화가 치밀었다. 어떤 한 분의 문제가 완전히 엉망이었다. 형식부터 내용까지. 전혀 수능에 준하지 않은 형식에다 내용도 지엽적이고, 수업 중에 중요하게 다루었던 부분들은 빠져있었다. 외부 문학 지문은 인터넷에서 긁어왔는지 원문도 확인 안 한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협의해야 할지 막막했다. 앞으로 펼쳐질 협의를 통해 이 문제들의 질이 좋아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성의 없이 문제를 낸 듯한 그분에게는 분노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출근길, 나는 전쟁터에 나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도 막 복직했기에 연배가 있으신 친한 선생님께 조언을 구했다. 그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선생님, 나이는 있어도 우리 학교가 첫 기간제 경력이야. 애 둘 키우다가 처음 해보는 거라 그럴 거야. 이제 겨우 2년 반째거든. 작년에도 시험문제가 그랬나 봐. 그런데 선배들이 가르쳐주진 않고 혼내기만 했어. 그래서 작년에 그 선생님이 엄청 힘들어했어. 그런데 또 조언은 엄청 잘 받아들이거든? 자기가 차근차근 잘 가르쳐줘 봐. 반년으로는 좀 부족하겠지만 그래도 가르쳐 주면 오히려 좋아할 거야. 같이 문제 만들면서 하나하나 얘기해 줘 봐. 그래야 그 선생님도 성장을 하지.”
항상 씩씩하고 재밌으시고 학년부의 일에도 열심이셔서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시험 문제 내온 걸 보고서는 사이가 틀어지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선배교사의 얘기를 들으니 ‘그래 얼마나 힘들겠나. 애 둘도 육아해야 하고 새 환경에 적응도 해야 하고.’ 싶다가 또 ‘내가 뭔데 누굴 가르치나. 나도 아직 나이만 먹은 햇병아리 같은데.’ 싶다가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내신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데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신규 교사 시절, 처음 내신 문제를 출제하던 때가 떠올랐다. 푸하하. 감춰진 흑역사를 몰래 훔쳐보는 기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문제였고, 하필 사수 선생님이 유명한 문학 자습서의 집필진인 데다가 교무부장님이라 제대로 걸렸었다.
“선생님. 주말에 시간 있어요?”
“네. 있는데..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시험 문제가.. 지금 얘기하긴 길고.. 토요일 9시까지 나올 수 있어요? 협의실에서 얘기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선생님 교무실에 국어과 담당 선생님들도 다 같이요.”
“아. 네. 나올 수 있어요. 그럼 토요일에 뵐게요!”
그때 나는 협의는 주말에도 으레 하는 거겠거니 했다. 그때는 한 학년에 4명의 선생님이 출제를 했고, 교무부장님을 제외하고 나포함 3명은 전부 학년부에 있었기 때문에 이 얘기를 전했더니 나이가 많으신 남자선생님이 노발대발하며 불만을 터뜨렸다.
“아니 뭐 이따위 학교가 다 있어? 주말 아침에 나오라니! 무슨 일이래요?”
“글쎄요. 그냥 시험문제 협의해야 한다고 하시던데요..”
“협의는 공강시간에 하면 되지. 무슨 얘기를 하려고 주말에 나오라는 거야!?”
토요일 9시. 협의실에 집합한 우리는 교무부장님의 말을 기다렸다. 교무부장님은 내 문제를 하나부터 열까지 하나하나 지적하시고는 일일이 가르쳐주며 바로바로 문제를 고쳐주셨다. 그러자 문제의 질도 올라갔다. 문제는 그날의 컨설팅이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식사는 점심때 샌드위치를 사다 먹은 것이 다였다. 남자 선생님은 화가 나 표정을 구기시며 담배를 피우러 나가셨고,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자리를 지켰다. 나 때문에 모두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 민망해 옆에 있던 친한 여자 선생님을 볼 면목도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교무부장님은 쇠뿔도 단김에 뺄 듯이 한마디를 보태셨다.
“내일도 9시에 모이죠.”
그리고 다음날, 화가 난 남자 선생님은 오시지 않고 우리 셋은 일요일 협의를 이어갔다. 그때는 멋도 모르고 수락한 그 협의가 지금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누구의 권리로 주말을 송두리째 앗아간단 말인가. 그때는 그분이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자신의 주말을 버려가면서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도 말도 안 되는 문제를 그럴듯하다고 느끼며 내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그때 컨설팅받은 내용을 적은 교무수첩은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 이후에도 그분과 같이 근무하면서 참 많이 배웠다. 내게는 엄청난 기회였던 것이다.
그랬으면서. 너는 더 심했으면서! 지금 누구한테 화가 나 있는 거냐! 이 올챙이 적 생각 못하는 애송이 개구리야!!
라고 누군가 내게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남은 건 나의 조언을 그분이 얼마나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다행히 그분은 예상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이렇게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분이 없어서 많이 힘들었거든요. 계속 다들 화만 내시고, 눈치도 많이 봤어요. 저도 잘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답답했어요. 그리고 제가 아직 그렇게 조언해 주셔도 어떻게 문제를 바로 수정해야 할지 감이 잘 안 오거든요. 많이 도와주세요.”
그날 이후로 우리는 함께 문제를 만들었다. 좋은 자료를 찾아 공유하고, 선지를 수정하고, 외부 지문도 추천했다. 어떤 책을 보면 좋을지 얘기했고, ebs 교사지원센터에서 어떻게 기출문제를 활용할 수 있는지도 공유했다. 그 과정에서 나 역시 많은 것을 배웠다. 협의는 더 이상 부담이 아닌, 새로운 도전이 되었고, 문제의 질도 점점 나아졌다.
다음 주면 최종 시험 문제가 제출된다. 우리는 매일 협의하며 ‘문제없는 문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그분의 열린 마음에 감사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 역시 새로운 열정을 다시 찾고 있다. 짬짬이 이루어지는 협의는 유쾌했고 문제의 질은 계속 좋아지고 있다. 그리고 다행히 우리 사이는 틀어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오히려 돈독해지고 있는 중이다.